식지 않는 두테르테 인기의 이유, 다바오
(※이 글은 '딴지일보'에 투고한 글로 개인적 의견이 무척 강함)
“형, 나 세부 돌아왔어요.”
“으잉, 언제 왔어?”
“어젯밤에 도착했어요. 근데 그거 알아요? 나 울뻔했잖아.”
“뭔 소리여?”
“세부는 택시 기사가 거스름돈을 줘.”
“그게 뭐?”
“마닐라에서 거스름돈을 어떻게 받아, 웃돈 달라고만 안 해도 감사하지.”
얼마 전 마닐라에서 온 후배와 했던 대화다.
간혹 영화에서 지저분하고 위험한 도시가 배경일 때 단골로 등장하는 곳이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다. 요즘은 멕시코나 다른 남미 도시들도 많이 등장하지만, 여전히 여러 영화에서 마닐라는 험악한 도시의 대명사로 표현될 때가 많다.
마닐라에서 온 후배가 이런 걸 물었다.
“형, 카지노라는 최민식 나오는 드라마 봤어요?”
“못 봤는데... 왜?”
“카지노 사람들이 우리 이야기 나온다고 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
그 친구는 세부에 오기 전 마닐라 카지노에서 일했었다.
며칠 뒤 드라마를 본 친구는 이런 말을 했다.
“형, 카지노 그거 과장이 좀 심하더라.”
필리핀 인구는 1억이 넘는다. 그 인구가 필리핀에서 일상을 영위하며 살아가고 있다. 많은 미디어가 필리핀이라는 나라 전역이 범죄가 판치고 동네마다 마약이 굴러다니는 사회인 것처럼 묘사하지만, 15년 동안 필리핀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미디어에서 나오는 정도로 필리핀 치안이 험악하진 않다고 말하고 싶다(물론 영화나 드라마는 극적 긴장감을 위해 허구 요소가 많으니 그걸 뭐라 하는 건 아니다!).
필리핀은 ‘치안(혹은 범죄율)’에 관해서 지역 차가 심한 나라다. 마닐라나 세부 같은 유명한 대도시는 치안 상태가 좋지 않지만, 시골로 가면 범죄가 거의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곳도 많다.
치안이 안 좋은 곳들도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되었다는 이야기들이 많다. 필리핀의 대통령 “로드리고 두테르테” 때문이다.
여기서 이 글을 쓴 목적을 말해야 할 듯하다. 많은 미디어에서 필리핀의 치안 상황이 담긴 콘텐츠를 많이 만들지만, 과장이 섞인 점이 있다는 것과 미디어 속 모습만이 필리핀 치안의 모든 것이 아니라는 걸 말하려 한다. 이런 부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마음과 함께.
두테르테, '범죄와의 전쟁'
이를 말하기 위해선 ‘두테르테’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두테르테는 대통령 임기 중 ‘범죄와의 전쟁’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많은 국가, 그것도 권력이 한곳에 집중되어 많은 부패가 있는 독재 국가에서 정치적 인기몰이의 수단 중 하나로 ‘범죄와의 전쟁’을 추진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테르테는 그 경우와 달랐다.
그는 처음 정치를 시작할 때부터 20년 이상 시종일관 이 정책을 추진해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약과 부패 척결을 사명처럼 생각했던 사람이다.
두테르테는 “2016년 6월 30일부터 2022년 6월 30일”까지 6년간 재임한 필리핀의 제16대 대통령이다. 필리핀의 대통령 임기는 6년 단임이다. 연임이나 중임은 불가능하다. 한국만큼 이상한 대통령 임기지만 혼자 20년 이상을 해먹은 독재자 덕에 필리핀도 이런 이상한 임기가 생겼다.
한국에서 두테르테는 막말이나 일삼고 비상식적 행동이나 하는 포악한 정신병자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듯하다. 실제 그런 점만 있다면 그리 높은 지지율을 가질 수 있을까? 그는 비상한 머리를 가진 뛰어난 행정가이자 유능한 정치인이라는 면도 가지고 있다.
두테르테는 6년의 대통령 임기 동안 언제나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었다. 그가 이렇게 높은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국민이 좋아할 정책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범죄와의 전쟁’이다.
외부에서는 성공하지 못한 비윤리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가 실시한 ‘범죄와의 전쟁’을 싫어한 필리핀 국민은 범죄자 외엔 거의 없다. 그리고 실제로 효과도 꽤 있었다. 일시적 효과에 불과하다고 회의적인 시선으로 보는 사람도 많지만, 지금까지 필리핀 대통령 중 이 정도로 자국의 치안을 안정시키려고 노력했던 사람이 있었던가? 없다.
모두 아는 바와 같이, 필리핀의 고정된 이미지는 위험과 부패이다. 이런 나쁜 이미지를 6년 임기의 대통령이 바꾸려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아마도 그 어떤 정책도 필리핀의 이미지를 단기간 바꾸는 건 불가능할 것이다.
그랬기에 그는 자신의 임기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물론, 임기가 끝난 후 범죄율이 원상복구 된다면 의미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뭔가 시도했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시간이 좀 더 흐른 뒤, 역사가 그에 대해 평가하게 될 때 적어도 필리핀 내에선 긍정적일 것이다.
나는 필리핀에서 약 15년 동안 살고 있다. 대부분을 세부(Cebu, Philippines)에서 생활했지만 딱 두 달간 다른 지역에 살았었다. 필리핀 남부의 섬이자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에 있는 ‘제너럴 산토스’라는 도시이다.
필리핀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민다나오는 문제가 많은 지역이다. 필리핀에서조차 가장 위험한 곳으로 분류되는 이곳은 50년 이상 무슬림 반군들과 정부군이 대치하고 있고 공산 반군들도 간혹 나타난다. 또한 가난한 지역이라 생계형 범죄가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내가 처음 민다나오에 갈 때 그곳에 사는 친구의 조언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거였다.
“형, 만약에 외곽도로에서 운전하다가 길에 나무 같은 게 쓰러져 있으면 절대 차에서 내리지 말고 바로 차 돌려서 다른 길로 가요. 여긴 아직 산적들 있어요. 그러니 외곽도로나 산길에서 절대 차에서 내리면 안 돼. 알았지?”
민다나오의 산길에는 아직도 지나가는 도로를 막고 통행세를 받는 산적들이 존재한다는 거였다. 게다가 그들 중에는 범죄조직이나 정치인의 청부 폭력을 대행하는 유명한 가문이 있다는 이야기도 했다. 민다나오에서는 매년 한 번쯤 무슬림 반군과 정부군의 충돌이 일어나는데, 이럴 때는 꽤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다.
이러니 필리핀 대통령에게 민다나오의 치안 상황은 매우 골칫거리다. 신임 대통령들은 매번 무슬림 반군들과 평화협정을 체결해 문제를 해결해 보려 하지만 번번이 실패한다. 그건 두테르테도 마찬가지였다
한국 외교부에서는 당연히 ‘민다나오’를 한국인 여행금지 구역으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외교부에서 나온 위 지도를 보면 민다나오 내에서도 두 지역만 색깔이 조금 다르게 표시된 것을 알 수 있다.
한 곳은 ‘카가얀데오로’라는 민다나오 북쪽 작은 항구도시이고, 다른 한 곳은 ‘다바오’이다. 다바오는 내가 머물던 ‘제너럴 산토스’와 약 3시간 거리에 있는 민다나오에서 제일 큰 광역도시이다. 이곳은 두테르테가 정치인으로서의 입지를 닦은 정치적 고향이기도 하다.
두테르테는 다바오에서 1988년부터 22년간 시장을 했다. 필리핀에서 가장 문제가 많은 지역에서 정치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이곳에서 검사로 공직 생활을 시작해서 부시장을 거처 시장까지 됐다.
어떻게 검사가 부시장에 올라가고, 시장까지 됐냐. 검사 시절 ‘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다바오의 범죄·부패를 적극적으로 소탕했는데, 이것이 시민들에게 큰 신망을 얻은 계기였다. 시장이 되어서도 그는, 범죄자 소탕을 최일선에서 지휘했다.
그의 이런 치안 정책은 다바오 부흥의 초석이 됐다. 불과 몇 년 사이에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가장 안전하고 살기 좋은 도시로 탈바꿈한다. 소위 말해서 치안 확보에 성공하면서 사회적 안정과 경제적 부흥도 함께 찾아온 것이다.
나는 2014년 제너럴 산토스에 머물 때 다바오를 자주 드나들었었다. 그 당시 이미 다바오는 공개된 장소에서 흡연이 금지되어 있었고, 택시는 매우 친절해 웃돈을 받거나 거스름돈을 안 주는 일이 없었다. 도로에는 경찰들이 스피드건으로 교통 법규 위반을 단속해서인지 차량들이 매우 질서 있게 운행하고 있었다. 거리는 깨끗했고, 마닐라나 세부에서처럼 사람을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부랑자나 어린이 소매치기도 찾아볼 수 없었다. 농산물과 과일이 풍부한 지역이어서인지 물가는 세부에 비해서 쌌으며, 항만이 발달해 도시의 기반 시설도 다른 필리핀 도시보다 훨씬 잘 정비되어 있었다.
세부에 살 때는 평소에도 버릇처럼 범죄에 대한 긴장감을 가지고 살았었다. 그런데 다바오에 있는 동안은 그런 강박감을 느끼기 힘들었다. 평범한 한국의 중소도시에 와 있는 느낌이라면 딱 맞을 것이다.
다바오에서 내가 묵던 숙소의 주인은 전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 3위에 ‘다바오’가 뽑혔다며 서울보다 자기 도시가 더 안전하다고 내게 자랑을 늘어놓곤 했다. 도대체 어디서 뽑은 통계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다바오 사람들은 누구나 그 통계 이야기를 했다. 다바오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들도 세계에서 3등 했다는 그놈의 치안 이야기를 늘 입에 달고 다녔다.
그 때문인지 다바오 주민들은 자신들의 도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이 자부심은 당시 시장인 두테르테에 대한 믿음이기도 했다. 그들은 두테르테가 다바오를 떠나면 도시가 다른 필리핀의 대도시처럼 험악해질 것을 우려했기에 16대 대통령 선거에 두테르테가 나가지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그곳에 살고 있던 한국인도 마찬가지였다.
민다나오섬의 다바오가 살기 좋은 곳이라는 소문이 나자 필리핀의 부자들이 교육이나 휴양을 위해 다바오를 찾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 도시는 필리핀 사람들의 ‘세컨드 하우스’가 가장 많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다바오는 필리핀에서 거의 외국과 다름없는 곳이다.
필리핀에는 중앙 정치를 장악하고 있는 몇몇 귀족 가문이 있다. 모두가 따갈로그어를 쓰는 루손섬 출신으로 이 가문들이 돌아가면서 대통령을 한다. 이런 가문 출신도 아닌 지방 시장에 불과했던 두테르테가 압도적 지지로 전례 없이 대통령이 된 것은 그 이면에 이런 다바오의 전설적 치안 정책이 있었다.
두테르테의 대통령 임기가 끝난 지금, 그에 대한 평가는 여러모로 갈리지만 내가 만났던 대부분 현지인은 그를 좋은 대통령으로 평가했다. 위기의 팬데믹 시대에도 나라가 무너지지 않게 잘 방어했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려운 외교 문제를 주권국의 자존심을 잃지 않으면서 열심히 버텨냈다(우리는 알게 모르게 '미국'만의 입장에서 뉴스를 보는 동시에, 대부분의 기자들이 깊이 있게 발언의 의미를 다루지 않기에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그는 필리핀 표준어인 따갈로그어를 ‘주 언어’로 쓰지 않는(그는 세부어를 쓴다) 지방 출신의 대통령이었음에도 전 국민의 고른 지지를 얻었다. 그의 정책을 두고 외부에서 포퓰리즘이라느니 인권유린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겠지만, 어쨌든 두테르테를 직접 뽑은 필리핀인들에겐 6년간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다.
많은 필리핀인이 개선된 치안에 대해 칭송하지만, 두테르테 이전부터도 평범한 일상을 살아온 나는 내 생활에서 크게 치안이 달라진 걸 체감하진 못했고 모든 객관적 데이터를 살펴본 것이 아니기에 두테르테로 인해 필리핀 치안이 그 이전보다 더 나아졌는지 확실하게 말할 순 없다.
또 두테르테가 시장 시절, 다바오시를 완전 탈바꿈 했다고는 하나, 1억이 넘는 인구와 7천 개가 넘는 섬으로 이루어진 나라를 운영하는 것과 200만이 안 되는 인구에 불과한 도시를 운영하는 것은 차원이 다르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악명 높은 필리핀의 치안을 바로잡기 위해 이만큼 노력한 대통령이 이전에는 없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임기 말 선거가 다가오면서 여러 가지 구설에 휘말렸지만, 그는 굳건히 지지율을 유지하면서 임기를 마무리했다. 내 일상에는 큰 변화가 없지만, 나는 두테르테 덕분에 필리핀의 치안이 조금은 나아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의 “범죄자 인권 무시” 전략이 옳았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범죄자든 피해자든 인권은 소중하다.
하지만 그는 대통령으로서 어려운 치안 상황에 빠져있는 나라를 위해서 무언가 선택해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여러 비판도 받았지만, 그가 6년의 임기를 다 마쳐갈 때에도 그의 지지율(72%)은 결국 국민은 끝까지 그의 손을 들어준 것을 의미한다(출처 링크).
바다 건너 민주주의와 인권이 보장된 나라에서 보는 시선과 현지에서 늘 범죄의 두려움에 떨며 사는 사람들이 보는 시선은 다르다. 나는 가끔 한국의 언론이나 유튜버들이 두테르테를 비아냥대는 것을 볼 때면 헛웃음이 난다. “그 나라의 정치인은 그 나라 국민의 수준을 대표하고, 그 나라의 언론은 그 나라 지식인의 수준을 대표한다.”라고 했다. 만약 이 말이 맞는다면 2023년 한국의 정치인이나 언론인의 수준이 필리핀에 비해 그리 낫다고 하기도 힘들 것이다.
두테르테는 따갈로그어나 영어로 말할 때 직접적 표현을 자주 했다. 원래 그의 어투가 그런 것도 있지만 그 이면에 따갈로그어나 영어가 그의 “모태어”가 아닌 것도 큰 이유였다.
그가 태어나서 자라고 정치를 시작한 곳은 비사야어를 쓰는 지역이다. 즉 ‘비사야어(세부어)’가 그의 “모태어”이다. 그래서 ‘따갈로그어’나 ‘영어’ 표현이 거친 점도 존재한다. 물론, 정치인이라면 이런 점을 극복해야 하지만, 그는 이런 단점을 숨기지 않았다. 솔직히 더 이용한 측면이 있다.
지금도 필리핀 사람들은 민다나오의 다바오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도시로 생각한다. 다바오는 분명 필리핀의 보물 같은 도시다. 그들은 이 도시를 만들어낸 사람이 ‘로드리고 두테르테’라고 믿는다. 그러니 ‘다바오’가 앞으로도 계속해서 살기 좋은 도시로 유지된다면 ‘로드리고 두테르테’는 필리핀에서 영원히 사랑받는 대통령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당분간 그의 지지율을 넘는 대통령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싶다.
끝.
(글: 벼랑끝, 편집: 딴지일보 임권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