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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벼랑끝 Apr 24. 2021

낯 익은 얼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낯 익은 얼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처음 보는 얼굴이 무척 낯익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처음 보고 그렇게 느꼈다.
“분명 어디서 본 것 같은데?”
사진을 보고 내가 했던 말이다.

왜 그렇게 낯익다고 느꼈을까?

내 삶과 접점이 전혀 없는 사람인데 이렇게 가깝게 느껴질 수가 있을까?

참으로 신기했다. 온종일 그녀의 사진이 언뜻언뜻 떠올랐다.

어릴 때 친구가 내게 이런 충고를 한 적이 있다.

나  : “야! 저 여자 봐봐. 어디서 본 거 같지 않냐?”
친구: “누구? 저기 저 예쁜 여자?”
나  : “응”
친구: “야! 너 저 여자 몰라”
나  : “아냐, 분명 어디서 본 사람인데?”
친구: “야! 원래 예쁜 여자는 다 낯이 익는 거야,

저 여자하고 뭔가 엮이고 싶어서 아는 사람처럼 느끼는 거야, 너 저 여자 몰라..”


사진의 주인공은 장영희 선생이다.

고(故) 장영희 선생은 1952년생이다. 나하고 어떤 교차점이 있을 리 없는 사람인데

선생의 사진을 처음 봤을 때 꼭 아는 사람을 보는 느낌이었다. 친구의 말처럼 나의

무의식이 그녀를 미인으로 받아들여서인지 어쨌든 그녀의 얼굴은 내게 무척 익숙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손가락 끝에 뭐가 걸렸는지 글쓰기가 잘 안됐다. 베껴 쓰는 글을

제외하면 내가 쓴 모든 글이 이상해 보였고 쓴 글은 앞뒤가 안 맞고 허전해서

게시판에도 올렸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지적 허영에 빠져 잘난 척이 거의 병적 수준이

되어 글이라고 쓴 것들은 전부 산으로 가 버렸다.


이럴 땐 책 읽기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독서를 좀 해 보려고 소설도 읽어보고

자기계발서도 읽어보고, 바이블처럼 들고 다니던 글쓰기 관련 책도 다시 읽어 봤다.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러다 하루는 필사를 한번 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구글에

“수필 추천”이라고 검색어를 쳐봤다.

그랬더니 이런 제목의 책이 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100쇄 기념 에디션”

“으잉?” 도대체 어떤 책이 그것도 수필집이 ‘100쇄’를 찍었을까? 궁금증이 일었다.

웬만큼 유명한 책은 제목 정도는 기억한다고 생각했는데 ‘100쇄’나 찍은 책의 제목을

처음 본다는 게 약간은 의아했다. 게다가 지은이의 이름이 생소하다는 건 더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다.

“이런 책이 있었네, 역시, 세상은 넓구나. 도대체 작가가 누구야?” 이런 혼잣말을 하며

“장영희”라는 이름을 검색해 봤다. 그리고 그녀의 사진을 보며,

“어? 아는 사람 같은데? 어디서 본 거지?” 하는 혼잣말을 하게 된 것이다.


내 눈에 그녀는 분명히 낯이 익었다. 하지만 선생의 약력을 본 순간 내가 모르는

사람이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삶의 어떤 부분도 교차하는 곳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나와 있는 선생에 대한 소개를 요약해 보면.
장영희 선생은 한국전쟁이 끝난 1952년에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장왕록’ 서울대학교 영문과 교수이다. 태어나서 1년도 안 되어 소아마비

증상이 나타나 양쪽 다리를 쓸 수 없어 평생 목발을 짚고 다녔고, 오른손도 불편해서

잘 쓰지 못한다.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심하던 5~60년대에 학교를 다닌 덕에 성적이 좋았지만,

매번 학교에 입학할 때마다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대학에 들어갈 때의 일화는

유명하다. 아랫글은 ‘나무위키’에서 발췌한 부분이다.

1971년, 당시 개교한 지 11년밖에 안 되었던 신생 서강대학교의 영문과에 입학했다.

이것마저도 당시 서강대학교가 예외적으로 장애인 학생의 입학시험 기회를 허가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장왕록(아버지) 씨가 당시 서강대학교 영문과

학과장이었던 미국인 브루닉 신부를 찾아가 사정했더니, 브루닉 신부는 너무나

의아하다는 듯이 “무슨 그런 질문이 있는가. 시험을 머리로 보지 다리로 보는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험 보지 말라는 법이 어디 있는가?”고 반문했다고 한다.


장영희 교수에 의하면 아버지가 두고두고 그때 일에 대해

“마치 내가 말도 안 되는 것을 물어본 바보처럼 말이야.

그렇지만 그렇게 행복한 바보가 어디 있겠냐”고 했다고...

1977년까지 서강대학교에서 학사, 석사 학위를 받았는데,

당시 서강대학교에 영문학 박사 과정이 없어서 연세대학교 박사 과정에 응시했다.

하지만 면접장에서 "우린 학부생도 장애인은 안 받는다"는 냉담한 반응을 받고,

곧장 그 자리를 떠나야 했다. 결국 1년 동안의 TOEFL 준비를 거쳐 1978년

뉴욕주립대학(SUNY)에 유학했으며, 1985년에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나무위키, 장영희, 발췌)

장영희 선생은 살아생전 세 번의 암 투병을 했다.

2001년 최초의 암이 발견된 후 치료와 재발이 거듭됐는데, 그 기간에도 늘 글을 썼다.

2008년 1학기까지 서강대학교에서 강의했으며, 2009년 5월 어머니에게 유언 같은

글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엄마 미안해. 이렇게 엄마를 먼저 떠나게 돼서.

내가 먼저 가서 아버지 찾아서 기다리고 있을게.

엄마 딸로 태어나서 지지리 속도 썩였는데,

그래도 난 엄마 딸이라서 참 좋았어.

엄마, 엄마는 이 아름다운 세상 더 보고 오래오래 더 기다리면서 나중에 다시 만나.”

(고 장영희 선생이 어머니에게 쓴 마지막 편지)

그녀가 떠난 일주일 후 마지막 수필집 “살아온 기적, 살아간 기적”이 발표됐다.

이 책의 100쇄 기념 판을 내가 본 것이었고, 이 책은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수필집 중 하나로 꼽힌다.

얼마 전 친구에게 “계절이 바뀌면서 뭔가 기분이 뒤숭숭하고 눈물이 많아진다.”고 했더니,

“나이가 들어서 여성호르몬이 증가해서 그래.”라고 한다. 그 말이 사실인지 요즘 들어

여성 작가들의 글이 눈에 잘 들어온다. 특히 장영희 선생의 글은 읽는 내내 베껴 쓰고

싶은 충동을 느낄 정도로 맘에 들었다.

처음 읽었던 “내가 살아보니까”라는 수필의 전문을 필사해서 '딴지 블로그'에 올렸다.

요즘 시대에는 이질감이 드는 내용이지만 내게는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장영희 선생의 글에는 뭔가 삐딱함이 있다. 그래서 좋다.

느낌상으로는 세상을 착하고 아름답고 똑 부러지게 살았을 것 같은 분인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덤벙대고 실수 잦고 아무 데서나 잘 웃고 잘 우는 그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글에서 작가는 자신을 ‘삼치(三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말하는 ‘삼치(三痴)’는 방향치, 기계치, 수(數)치이다.

길을 잘 못 찾는 방향치(길치)에다, 기계를 잘 못 다루는 기계치에다,

숫자를 잘 못 다루는 수(數)치라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모두 가지고 있으니 이걸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편을 구하는 길밖에 없다”는 글은 너무나 재밌는 글이었다.

그녀는 이 삼치(三痴)를 해결해 줄 남편을 끝내 만나지 못하고 저 하늘의 별이 되었다.

그녀의 이런 말랑(?)함 때문인지 학교에서는 타과의 학생들까지도 신변 상담을 하러 자주

찾아왔었다고 한다. 그녀와 상담 했던 학생 중에 우울증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학생이 있었는데,

그 일로 몹시 큰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당연할 것이다. 어젯밤 찾아온 학생에게 좋은 말로

어른스러운 충고를 해 줬는데 그 친구가 지하철역에서 뛰어내린 것이 오늘 아침뉴스에 나온 것이다.

이런 일을 겪는다면 누군들 충격을 받지 않겠는가?


그 일이 있고 난 뒤 많은 후회를 했고, 자신을 찾는 제자들에게 더 좋은 선생이 되려고

최선을 다했다고 한다. 책에는 학생들과의 대화를 인용한 부분과 제자들에게

보낸 정성스런 편지가 많이 실려 있다. 

반면 강의실에서 영문학 수업은 너무 빡세서 장영희 교수의 수업은 지옥의 수업으로

서강대학교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강의실에서는 혹독한 수업을 하는 선생님,

강의실 밖에서는 옆집 사는 약간 맹한 누나.  학생들이 어떻게 이런 사람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사후 장영희 교수가 사용했던 서강대학교 ‘국제인문관 315호’는 [장영희 강의실]이라는

이름이 부여됐다. 프로 스포츠에서 ‘영구 결번’을 두는 것과 비슷한 의미인 것 같다.

장영희 선생의 글은 내면의 감춰진 부분을 솔직하고 유머러스하게 표현해서

읽다가 미소 짓게 되는 부분이 많다. 천편일률적인 희망과 사랑을 전하는 글이 아니라는 뜻이다.

그래서 더 공감이 된다. 또한 현실에서 겪을 만한 내용이 많아서인지 재밌고 가독성이 좋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들이다.

(전략)
친구가 간 후 볼 일이 있어 백화점에 들렀다가 배가 고파 지하 식품매장에 갔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1층을 가로질러 가는데 얼핏 화장품 진열대에 놓인

거울에 내 얼굴이 비쳤다. 오후가 되니 화장이 들떠 입가의 팔자 주름은 가뭄에

논 갈라지듯이 깊은 골짜기를 이루었고 눈 밑 주름은 더욱 자글자글해 보였다.

나잇살인지 청승 살인지, 젊을 때보다 더 많이 먹는 것도 아닌데 날이 갈수록

몸무게가 늘어 이제는 아예 얼굴이 어깨에 딱 붙은 듯, 목이 없어 보였다.

게다가 나이 들수록 식탐이 더 심해지는지, 무얼 먹을까 생각하는 일은

늘 행복한 고민이다. 냉면을 먹을까, 칼국수를 먹을까, 아니면 비빔밥?

이리저리 음식 부스를 기웃거리는데 마침 유리 케이스 안에 진열된

먹음직스러운 일본식 김밥들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다가가자 젊은 여종업원이 반갑게 인사했다.


‘무슨 마끼를 먹을까. 레인보우? 크런치?’

여러 가지 색깔의 날치알과 야채로 화려하게 장식된 김밥 중

‘레인보우’라고 쓰인 마끼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것 맛있어요?”
“그럼요, 맛있어요. 근데 그건요. 젊은 분들이 좋아하는 거예요.

나이 드신 분들은 그냥 프라이드 마끼를 많이들 드세요.”
그냥 프라이드 마끼? 괜히 새로운 것 먹으려는 당치 않은 생각 말고

먹던 것이나 먹으라는 말로 들렸다.

“늙으면 먹는 것도 다른가요?”

반기를 들려고 눈을 든 순간 나는 금방 꼬리를 내렸다.

야들야들하고 투명한 피부, 윤기 나는 검고 싱싱한 생머리, 탱탱한 가슴 그리고

그렇게 작은 공간에 내장이 다 들어 있을지 의심이 갈 정도의 가늘고 납작한 허리 -

아니 그보다 온몸으로 발산하고 있는 당당한 젊음의 위력에 주눅 들었기 때문이다.

이 늘어진 뺨으로, 군살 붙은 아랫배로 언감생심 내가 젊은이들이 먹는

레인보우 마끼를 먹는 새로운 모험을 하려고 했다니…….
“그럼 그냥 프라이드 마끼 주세요.”
나는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는 프라이드 마끼 한 봉지를 사 들고 나오면서

그래도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후략)

(스물과 쉰,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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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책상에 쌓인 일을 시작하려는데, 같은 학회에서 일하는 정 교수가

다음 회의 날짜를 알리는 이메일을 보내왔다. 아직 새 학기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벌써 회의라니…….

불평 가득한 마음으로 메시지를 읽는데 정 교수는 끝에

‘마음이 맑아지는 글’이라는 짤막한 글을 소개하고 있었다.

요즘 인터넷 종교 사이트에 보면 예쁘고 도덕적인 글이 많이 떠도는데,

그중 하나를 퍼온 것 같았다.

그런 글들이 다 그렇듯이 내용은 좋고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이 너무 흐려서인지 마음이 맑아지기는커녕 오히려 슬그머니

반감이 일었다. 오늘처럼 날씨도 기분도 찌뿌드드하고 할 일이 많을 때는

안 그래도 이것저것 세상이 내게 요구하는 게 너무 많다 싶은데

‘착함’까지도 강요당하는 느낌이었다. 나의 삐뚤어진 마음은 정 교수가

보낸 ‘마음이 맑아지는 글’에 조목조목 반항의 사족을 달았다.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그리던 내일이다.

(그래, 나는 오늘도 헛되이 보냈다. 아니 오늘뿐인가, 어제도 그제도 계속

헛되이 보냈다.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 어제 죽은 사람 대신 내가 살아

있어 미안해하라는 말인가)

*열광하는 삶보다 한결같은 삶이 더 아름답다.

(이 말은 거꾸로 뒤집으면 한결같은 삶이 별 볼 일 없다는 뜻 아닌지?)

*남을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이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말이다. 우산을 들어 주면 둘 다 조금씩이라도 비를

피할 텐데 왜 멀쩡한 우산을 두고 함께 비를 맞아야 하지?)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릴 때가 있다. 그러나 그것이 오래가지는 않는다.

살다 보면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다. 이것도 오래가지 않는다.

(이론적으로 그렇다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은 일이 늘 잘 풀리고,

그건 오래간다. 내 삶은 잘 풀리지 않는다. 그것도 오래간다.)

*사람은 누구에게서나 배운다. 부족한 사람에게서는 부족함을,

넘치는 사람에게서는 넘침을 배운다.

(‘부족함’ ‘넘침’을 배워서 무엇 하는가,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은 딱 ‘알맞음’을 배워야 하는 것 아닌가.)

*스스로를 신뢰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성실할 수 있다.

(이 말은 정말 꼭 날 두고 하는 말 같다. 난 기분파이고, 걸핏하면

내 말을 내가 어기고, 어떤 때는 똑똑하고 어떤 때는 바보고,

절대 나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성실할 수 없단 말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구구절절이 맞는 말인데, 순전히 반항을 위한

반항을 하고 있는 꼴이다. 가끔 내 마음속에는 이렇게 평화를

싫어하고 오히려 분란 일으키기를 좋아하는 도깨비 같은 게

살고 있는 것 같다. 겉으로는 자타가 공인하는 평화와 질서,

화해 찬미론자이지만, 내 속 어딘가에는 분명히 질서에 반항하고,

완벽한 조화를 불편해하고 일탈을 꿈꾸는, 나도 모르는 내가 있다.


어른이기 때문에, 사회적 체면 때문에, 남들의 기대와 요구 때문에

입고 있는 옷을 다 벗어 버리고 싶은 충동, ‘착함’을 거부하는 존재가

분명 어딘가에서 심심찮게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후략)

<마음속의 도깨비,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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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녀의 책을 접한 날은 비가 오고 있었다.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이 봄비와 함께 아스팔트 바닥을 하얗게 물들이던  때

창밖을 보면서 마지막 장을 읽었다. 항암치료로 두 번의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특이한 케이스인 세 번째 전이를 이겨내지는 못했다.


평생을 불편한 몸으로 생활했고 마지막 8년은 병마와 싸우는 처절한 시간이었다.

나는 그녀의 삶을 상상도 할 수 없다. 입에 올리는 것마저도 죄를 짓는 기분이다.

하지만 그녀의 글 속에는 절망보다는 희망이, 고통보다는 사랑이 숨 쉬고 있다.

"나보다 일이 안 풀리는 사람이 있을까?"

"나보다 재수 없는 사람이 있을까?"

"남들은 도대체 왜 저렇게 잘 풀릴까?"

"나는 왜 이따위로 밖에 살 수 없을까?"

하는 생각들을 하루에 수십 번도 더 한다.

지금도 내 머리 한쪽 구석에서는 이런 생각들이 인공지능처럼 자동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장영희 선생의 글을 읽는 동안은 뇌 속의 인공지능이 잠깐 멈추는 느낌이다.

책을 덮으면 일상의 괴물로 돌아오지만, 글을 읽는 동안은 존재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니 쓸데없는 절망 같은 걸로 고민하지 말라는 외침이 들리는 것 같다.


“그래 봐야 네가 나보다 더 절망적이야?”

선생의 마지막 수필집을 읽고 내가 느낀 점은 뜬금없지만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이었다. 장영희 선생의 글은 편지 같다.

도란도란 떠드는 수다 같은 편지.

나도 예전에는 편지를 자주 썼었다. 볼펜을 꾹꾹 눌러 검은색 줄이 쳐진

편지지에 한껏 과장된 문장으로 글을 써서 누군가에게 보내곤 했다.

그런데 지금은 편지라는 걸 써 본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내가 편지 쓰기를 멈춘 첫 번째 이유는, 돌아오는 답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혹 전화로 답이 오기는 했지만, 전화를 받자고 편지를 쓴 건 아니었다.

둘째는, 내가 쓴 글이 어디론가 사라지는 허무함 때문이었다. 

글이 우표와 함께 사라진다는 느낌을 받고부터 편지를 끊게 됐다.

“끊는다.”는 표현이 좀 웃기지만 어쨌든 그런 생각이 든 후 더는 편지를 쓰지 않았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글과 사진이 영원히 보관되는 세상이 됐다.

이런 영구성이 진정성을 상실시키기도 한다지만,

적어도 사랑하는 이에게 보냈던 편지가 사라지는 것은 막는다.

과학기술은 자신이 썼던 글을 10년이나 20년 후에도 볼 수 있게 해준다.

이건 아날로그적 멋진 감성은 부족하지만 정성껏 글을 써야하는 충분한 이유가 된다.


많은 것이 변해가는 2021년이다.

그녀를 너무 늦게 알게 되어 안타깝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되어 행복하다.

내가 선생을 ‘그녀’라 부르는 것은 그녀가 사랑스러운 여자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만날 수 없어 아쉽다. 부디 평안하시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전략)
마침내 의사가 들어왔다. 의사의 일거수일투족이 의미심장해 보였다.

의사가 내 목발만 힐끗 봐도 ‘이 여자는 다리가 이런데 또 암까지 걸렸네,

참 불쌍하군! 하고 동정하는 것 같았고, 친절하게 미소를 띠면

‘어차피 죽을 사람인데 웃음이나 지어주자’ 하고 선심을 쓰는 것 같았다. 


의사는 초음파 검사로 발견한 돌기는 한 개가 아니라 세 개이고,

확신할 수는 없어도 “암이 의심스럽다”는 표현을 썼다.

조직 검사를 하고 결과를 통고받는 날까지 나는 학교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평상시와 똑같은 생활을 했다. 내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양극으로 내달았다. 아마 괜찮을 거야. 설마 하고많은 사람 중에 내가......


살아오면서 난 불운보다는 훨씬 많은 행운을 누리며 살았고 틀림없이

행운이 내 편이 될 거야 하는 믿음과 그러면서도 어쩌면 이제는 모든

것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자포자기 같은 것이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조직 검사 결과 세 개의 돌기는 모두 악성이 아닌 양성으로 판명되었다.

‘앞으로는 철저하게 1년에 한 번씩 검사를 받으라’는 경고로 나의 열흘간의

고독이 끝나던 날,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학교 앞 선물 가게에 들렀다.

다시 삶의 무대에 올라선 나를 자축하고 싶었다. 선물 가게에는 벌써

크리스마스 카드가 가득 진열되어 있었다. 그 가운데 작가들의 명언 시리즈

카드가 있었는데 마크 트웨인의 말이 적힌 카드가 눈에 띄었다.


‘오늘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There's nothing that cannot happen today)'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 - 갑자기 하늘에서 돈벼락을 맞을

수도 있고, 떠나간 애인이 “내가 잘못했어.” 하고 다시 돌아올 수도 있고,

드디어 한반도가 통일되었다는 저녁 뉴스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무심히 길을 가다 고층 건물에서 떨어진 벽돌에 맞을 수도 있고,

아무리 믿기지 않아도 눈앞에서 110층짜리 고층 건물이 삽시간에 무너질

수도 있고, ‘암’은 남의 이야기라는 듯,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도 있음은 물론이다.

이렇게 <샘터> 2001년 12월호에 ‘열흘간의 고독’이라는 제목으로

쓴 글은 계속되고 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철저하게 혼자였던

‘열흘간의 고독’이 끝났다는 안도감과 비싼 검사비를 내지 않았으니

보험료 밑천을 뽑아 다행이라는 말과 함께 해피엔딩으로 글은 끝났다.

물론 이것은 가증스러운 거짓말이다.

그때 나는 조직 검사 결과 왼쪽 유방에 2~3기 정도의 암이 있고,

곧 수술해야 한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야말로 하고많은 사람 중에

내가 암에 걸렸고, 암 환자가 된 것이다. 마감일 때문에 글을 중간

정도까지 써놓고 검사 결과를 기다려 마무리를 지으려던 나는 이 글을

앞에 놓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검사 결과 솔직하게 암에 걸렸다고

고백하면서 글을 끝낼까, 아니면 거짓으로 결국 암이 아니었다고 글을

끝낼까. 둘 중 나는 후자를 택했다.

‘왜?’라는 물음에 나는 별로 논리적인 답을 할 수 없다.

그냥 내 마음이 시켜서 한 일이지만, 지금 생각하면 난 그때 무척 자존심이

상했던 것 같다. 신에게 내가 불운의 대상으로 선택되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고,

내 자유의지와 노력만으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불공평하게 느껴졌고, 오로지 건강하다는 이유로 나에게 우월감을

느낄 사람들이 미웠고, 무엇보다 내가 동정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이

너무나 자존심 상했다. 그래서 내 병은 나와 가족만의 비밀로 하고

몰래 투병하기로 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8년 전의 이 글의 마무리가 완전히 거짓은 아니다.

‘오늘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이라는 시간의

무한한 가능성 - 잘난 척하며 살던 장영희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

죽을 수 있다. 하지만 병을 통해 조금 더 겸손해지고, 조금 더 사랑을

배우고, 조금 더 착해진 장영희가 바로 오늘 성공적으로 항암 치료를

끝내고 병을 훌훌 털고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면 헛되지 않으리라는 믿음을 갖고,

늘 반반의 가능성으로 다가오는 오늘이라는 시간을 열심히 살아간다.

<오늘이라는 가능성, 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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