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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선 May 21. 2018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저는 이상한 사람입니다(?) 왜 이렇게 상황을 객관적으로 못 보고 과민 반응을 할까요. 그래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에 관심이 갔습니다. 그에게도 저처럼 어려움이 있을 것 같아서요.


그는 검사가 다 끝났다고 여겼는지 모자를 찾기 시작했다. 그는 손을 뻗어 아내의 머리를 잡고서 자기의 머리에 쓰려고 했다.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것일까? 그런데도 그의 아내는 늘 있어온 일이라는 듯 태연한 모습이었다. /p.31
1985년에 출간된 베스트셀러

임상보고서: 주체성의 신경학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신경학 의사 올리버 색스가 쓴 임상보고서입니다. 뇌신경에 문제가 생기면 이상한 증상이 나타납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거나(인지 장애), 지나가는 사람들을 거울처럼 흉내내고(투렛 증후군), 30년 전에서 기억이 멈추기도(기억상실) 합니다. 이러한 실제 사례 24편을 상실, 과잉, 이행, 단순함이란 4가지 주제로 엮었습니다. 소설보다 소설 같은 실화가 흡입력 있습니다. 처음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다니, 하며 흥미로 읽었지만 점점 작가처럼 진지해집니다. 실제로 병 때문에 고통스럽게 애쓰는 삶이 안쓰럽거든요.


'주체성의 신경학'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새로운 방법은 어떤 사람을 '바로 그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근본적인 신경의 세계를 다루고, 옛부터 제기되어온 머리와 마음의 문제를 다루기 때문이다.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둘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다루고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시켜 실행하는 연구가 가능하다면 범주가 서로 다른 그 두 영역을 접근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바로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특별히 관심을 기울이며 추구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p.11


 저자는 환자들을, 그들 영혼을 따뜻하게 봅니다. 편견 없이 인격체로 존중합니다. '의사는 역경 속에서 자신의 주체성을 지키려고 애쓰는 하나의 개체, 즉 주체성을 지닌 한 인간에 마음을 둔다’는 인용문처럼요. 숫자와 지식만으로 차갑게 검사하지 않는 모습이라 좋았습니다. 이처럼 보이지 않는 영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뇌과학, 신경의학에서 '주체성의 신경학'을 발전시켰습니다.



"뭔가 무서운 일이 생긴 거예요. 몸에 감각이 없어요. 정말 이상한 기분이에요. 몸이 없어진 것 같아요." /p.88


 사례를 소개합니다. '몸이 없는 크리스티너'는 자신의 몸에 대한 '고유감각'을 잃었습니다. 느낌이 아예 없기 때문에 눈으로 봐야만 제어할 수 있습니다. 차렷 자세로 뻣뻣하게 누워있거나 눈으로 손발을 살피며 삐걱대듯 걷습니다. 몸에 대한 인식이 없어지니 정신적으로도 혼란입니다. 육체와 정신을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몸을 인식하며 자아감을 갖습니다. 저자는 보이지 않는 제6감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육감第六感이란 근육, 힘줄, 관절 등 우리 몸의 움직이는 부분에 의해 전달되는, 연속적이면서도 의식되지 않는 감각의 흐름을 말한다. 우리 몸의 위치, 긴장, 움직임은 이 제육감을 통해서 끊임없이 감지되고 수정된다. 그러나 무의식 중에 자동적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이다. /p.84




치료: 마음과 영혼에 대하여


 올리버 색스는 치료하며 신경심리학의 한계에 종종 마주합니다. 그때 동료 의사는 환자 '마음'에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냐고 조언합니다. 감정, 의지, 감수성, 윤리, 마음 등은 보이지 않는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요.


인간은 기억만으로 이루어진 존재는 아닙니다. 인간은 감정, 의지, 감수성을 갖고 있는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신경심리학은 이런 것에 대해서 언급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심리학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이 영역에서 당신은 그의 마음에 영향을 미쳐 그를 변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p.76


 그 말을 듣고 저자는 영혼에 대해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1965년에 기억이 멈춘 환자는 기억의 연속성이 없으니까 과연 그 사람이라 볼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하지만 병이 있어도 그 사람이고, 병이 없어져도 그 사람입니다. 병과 분리된 별개의 존재가 아닐까요.

 저자는 예술, 교감, 영적인 활동으로 환자가 나아지는 과정을 목격합니다. 몇 초 후에는 기억을 잊어버리지만 성당 미사만큼은 온전히 집중하는 지미, 지적 장애가 있지만 무대에서 빛나며 연기하는 리베카, 자폐증이 있지만 식물을 그리는 호세. 그러한 활동이 마음과 영혼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재통합이 가능하다고 믿습니다.   


 경험 과학 즉 경험주의는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는다. 개인의 인격을 형성하고 결정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여기에는 어쩌면 진료와 관련된 경험뿐만 아니라 철학적인 교훈도 포함되어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코르사코프 증후군이나 치매, 아니 그보다 더 심각한 질병에 걸렸더라도, 혹은 심각한 기질적인 장애나 흄이 말하는 식의 용해 상태에 빠져있더라도, 예술이나 교감, 영혼의 접촉을 통한 재통합의 가능성은 아직 완전히 파괴되지 않은 채 조금이나마 남아 있지 않을까? p.78



 작년부터 ADHD, 감정조절장애, 뇌장애가 있는 아이들을 만나왔습니다. 간혹 감정이 격해지면 순간 다른 사람처럼 돌변하더군요. 제게 욕을 한다거나 친구와 싸우다 의자를 던질 때면 솔직히 힘듭니다. 병적인 행동을 사람과 분리하며 맘이 좀 나아졌습니다만.. 아직 갈 길이 멉니다. 그래서 다음 구절이 와 닿았습니다.


 모츠기는 이 지능 낮은 예술가를 집으로 데려와서 함께 살기로 했다. 상대를 위해서 몸을 내던지는 헌신, 비밀은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모츠기는 이렇게 말했다. "야나무라의 재능을 키우기 위해서 내가 한 일은, 그의 영혼을 내 영혼으로 여기는 일이었다. 교사는 아름답고 순수한 뒤처진 이들을 사랑하고, 그들의 정제된 세계와 더불어 살아야 한다." /p.382




 혐오에서 받아들임으로


 그 누구의 동정과 도움도 받을 수 없다는 것. 이것 또한 가혹한 시련이다. 그녀는 장애인이지만 그것이 겉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녀는 시각장애인도 아니고 신체가 마비되지도 않았다. 겉으로 나타나는 장애는 아무것도 없다. 따라서 종종 거짓말쟁이나 얼간이로 취급된다. 우리 사회에서는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숨은 감각에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취급을 받는다. /p.16


 먼저 나와 남의 부족한 모습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겠습니다. 국가에서 장애인이라 명명하는 기준과 다를지라도 누구에게나 어느 정도 몸과 마음의 장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는 건 개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다른 차원 일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닙니다. 나름 최선을 다해서 애쓰는 삶이니까 스스로 그리고 타인을 차갑게 미워하지 말아요. 올리버 색스가 말하듯 누구나 내면 깊은 곳에는 스스로 온전하길 바라는 마음과 영혼이 있을 테니까요.


기존 문화에 동화될 수 없는 인간이 (...) 본래의 자기 자신을 그대로 유지하고, 나아가 그것을 살려나갈 수 있는 무대가 이 사회에 있을까? 호세는 식물을 대단히 좋아하고 식물에 대해 빼어난 안목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식물이나 약초의 연구용 삽화를 그리는 일을 맡을 수는 없을까? (...) 그는 능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해심이 아주 깊은 사람이 그를 고용해서 정성스럽게 지도하지 않으면,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면 그는 다른 많은 자폐증 환자와 마찬가지로 주립병원의 구석진 병동에서 무의미한 나날을 보낼 것이다. /p.380


 나아가 사회에서는 인식 개선을 위한 교육과 일자리 제공이 방법입니다. 예를 들면 BBC 어린이 방송 쎄서미 스트리트에서 몇 년 전부터 자폐아 캐릭터 줄리아가 나옵니다. 미국에서는 장애 아동 모습을 한 인형도 출시되었고요. 장애인 일자리 사업으로 몸 혹은 정신적으로 불편한 분들이 일하며 가치를 느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문장으로 본문에서 나온 표현이 잘 어울립니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노동과 사랑이야말로 궁극적인 치료법'입니다.





참고: 독서모임에서 얘기 나온 다양성 존중 사례

http://www.yonhapnews.co.kr/bulletin/2017/03/20/0200000000AKR20170320097500009.HTML

https://www.tumblbug.com/justfinecookie_2

https://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3067078

http://news.joins.com/article/21281456




+그 외 인상 깊었던 구절.


쇼스타코비치의 비밀이란 그의 왼쪽 뇌실 관자 뿔 부분에 금속 파편인 탄환 부스러기가 있다는 것이다.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 제거하는 것을 몹시 꺼렸던 것 같다. 뢴트겐 검사 결과 쇼스타코비치의 머리가 움직이면 파편이 움직여서 관자엽의 음악 영역을 압박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파편이 거기에 있기 때문에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이면 반드시 음악이 들려왔다고 그는 말했다. 그때마다 새로운 선율이 머릿속에 가득 차 그것을 작곡에 이용한 듯하다. /p.218


"병원에 가서 마치 개처럼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았어요. 그렇게 냄새를 맡아보니 눈으로 보기도 전에 그곳에 있는 스무 명의 환자들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어요. 사람은 모두 각자의 얼굴 냄새가 있었어요. (...)" 그는 사람의 감정도 냄새로 알 수 있었다. 두려워하는지, 만족하는지 그리고 여자인지 남자인지까지... 마치 개처럼 말이다. 그는 거리와 가게도 냄새로 구별해낼 수 있었다. /p.267


"사물의 가장 중요한 측면은 그것이 너무도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우리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기본적으로 탐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스쳐 지나가는 법이다." 비트겐슈타인이 인식론에 대해 쓴 이 구절은 생리학과 심리학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셔링턴이 '우리의 비밀스러운 감각 즉 제육감第六感'이라고 부른 것에는 딱 들어맞는다.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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