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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선 May 22. 2018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

20대 암환자의 인생 표류기

 저는 솔직하지 못합니다. 솔직하게 나를 다 보여주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이라고 배웠거든요. 어두운 마음, 안 좋은 부분은 슬쩍 숨기곤 합니다. 좋은 모습이어야 인정받을 테니까요. 있는 그대로 표현할 용기가 없어서 책을 읽습니다. 나와 비슷하면 '나만 그런 게 아니구나'하고 안심합니다. 그렇게 변태처럼(?) 남의 일기장 같은 글에 관심 있습니다.


 유난히 솔직한 글을 읽었습니다. 작가는 속마음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부끄러운 굴욕도 서슴없이 공개합니다. 할아버지 장례식 장면에서, 여자 친구와 의견을 동의하지 않는 장면에서.. 삶의 여러 장면에서 제 감정을 만났습니다. 그래서 작가님 글을 좋아합니다. 덕분에 저도 조금 솔직해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위로하겠단 생각 없지만 약간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다니.. 프롤로그부터 츤데레(?) 같습니다
 저는 이 글로 누군가를 위로하겠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22살에 혈액암이 코 부근에 발병한 뒤로, 투병과 재발 그리고 항암으로 망가진 얼굴에 수차례 성형수술을 통해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 채로(원래 가지고 있었냐고 물어보신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만) 정신없는 20대를 보내야 했으니까요. 위로는커녕 제 자신을 살피기에도 벅찬 사람입니다. (...) 인생을 살다 보면 문득 해결하지 못한 슬픔을 깨닫고는 울적해질 때가 있습니다. (...) 그런 울적함이 찾아올 때, 이 책이 여러분에게 아주 약간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p.5-7 프롤로그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는 김태균 작가의 에세이입니다. 부제처럼 '20대 암환자의 인생 표류기'입니다. 저자는 피난처로서 글쓰기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꾸밈없는 진심이 가득합니다. 항암 치료를 받을 때 에피소드, 죽음에 관한 생각 등을 편하게 풀어냅니다. 잘생김을 포기한 민낯을, 내면의 날 것을 본 기분입니다. 이석원 작가가 쓴 <보통의 존재>처럼 사람냄새가 납니다. 사람 사는 얘기가 그리울 때마다 조금씩 아껴읽기를 추천합니다.




프로아픔러가 사는 법


 항암 치료를 받고 두 달 정도 후에는 완전히 대머리가 되었다. 아니 의사 양반 이게 무슨 소리요. 내가 대머리라니. (...) 세상 모든 일에 백 프로 나쁜 일은 없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찬찬히 살펴보면 좋은 점도 보이기 마련이다. 나 또한 새로운 장점을 찾았다. 반들반들한 민머리라서 '아차!!'같은 리액션을 할 때, 손바닥으로 머리를 "탁!"하고 치면 "착!"하고 감기는 느낌이 발군이다. /p.20 거울 앞에 선 동양인 볼드모트


 '잘생김은 이번 생에 과감히 포기한다'는 제목이 책 성격을 잘 나타냅니다. 재밌는 표현에 풉, 웃었는데 알고 보니 슬픈 상황입니다(난감). 프로답게 아픔을 찰진 비유와 유쾌한 유머로 승화해서, 분위기가 무겁지 않습니다. '양배추샐러드 관계', '달빛에 빛나는 모래알들이 마치 별들 위를 걷는 것처럼 아름답다'처럼 말랑한 표현들도 있고요. 그렇지만 읽다보면 가끔 먹먹합니다. 달콤씁쓸한 '아포가토'처럼 웃음과 눈물이 공존합니다.


 지구가 항상 항암제로 녹아내리는 기분이 들었다. 울렁거리고 역겨워서 시도 때도 없이 토를 했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눈알을 누른 상태로 빙글빙글 돌리고 있는 것 같이 시공간이 휘어졌다. 사랑과 재채기는 감출 수 없다고 하는데 나 같은 경우는 토였다. 아침에 흉부 엑스레이를 찍으러 가는 20미터 정도의 거리에서조차 항상 서너 번씩 토를 했다. 그러면서도 매일 같이 새벽 5시 반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상태로 토를 하면서 엑스레이를 찍으로 갔다. 마치 성실한 좀비처럼. (...) 내 몸은 마치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들처럼 상식을 벗어났고 기묘했다. 어느 날은 뼛속의 골수까지 시려서 이불을 두 겹이나 덮고서도 벌벌 떨다가, 다음 날이면 혼자 사막 한가운데 던져진 것처럼 얼굴이 벌게져서는 식은땀을 흘렸다. /p.23 징징이를 받아주는 세상은 없다


 


살아간다는 건 대체로 슬픈 일


식품 포장지의 '제품은 사진 속 이미지와 다를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처럼 상상 속에 빛나던 모든 것들은 항상 현실에서는 약간의 씁쓸함을 남겼다. /p.83

 

 저자가 씁쓸함과 슬픔을 말할 때 전 위로를 받았습니다. 어쩐지 슬픔을 알아주는 슬픔선배(?) 같달까요. 그게 참 신기합니다. 위로를 주고받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거든요. 저 스스로도 언제 위로받는다고 정의하지 못할 정도로요. 무조건 들어주고 공감한다고 위로는 아니었어요. 오히려 별 일 아니라는 듯이 '세상에 더 괜찮은 남자 많아!'라는 말에 희망 찬 깨달음을 얻고 툴툴 털고 일어나기도 했고요, 따뜻한 말에도 '잘 알 지도 못 하면서..'하는 반감을 갖기도 했습니다. 물론 마음은 고맙지만 무슨 일 생겨도 알리지 않고 가만히 혼자 있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적중하기 어려운 일을 이 책이 해냅니다. 저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게도 힘이 될 겁니다. 저에게는 '살아간다는 건 대체로 슬픈 일입니다'가 최애 문장입니다.


 살아간다는 건 대체로 슬픈 일입니다. 저에게도 매일 "괜찮아! 행복해질 거야!"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내가 무너지지 않게. 울면서도 한걸음 내디딜 수 있게. 그런 말을 해주는 아르바이트생이라도 있다면 고용하고 싶을 정도였으니까요.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하루하루 언제나 다양한 방식으로 상처받는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이틀이 기쁘다면 5일이 상처받는 그런 일상이 꽤나 많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복되는 일상은 마치 고요한 늪처럼 모든 감정을 스르르 집어삼킵니다. 그것이 커다란 기쁨이건, 물에 젖은 모래성이 무너지듯 절망적인 슬픔이건 말이죠. 결국은 시간에 휩쓸리고 무뎌지다가 '상기'해야 할 과거의 일상이 되어버립니다. 일상을 살아간다는 건 그런 것일지도 모릅니다. 크게 생각해보면 인생에서 그렇게 심각한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죠. /p.241 에필로그




소소한 일기 #책 후기 편


1. 사실 후기를 어떻게 쓸지 고민했는데.. 책 뒤표지 문구를 보고 마음이 편해졌습니다. “어떤 고난이 닥쳐오더라도 '이 지구의 운명이 너에게 달려있어'라는 말을 들을 정도의 일은 아닐 것이다.“ 이처럼 책의 운명은 이 글에 달려있지 않은 겁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렇게 생각하니 부담이 적어졌습니다. 제 글을 읽는 사람도 몇 명 없을 테고요. 현실을 직시하게 도와주는 실용 조언 감사합니당. 한편 여전히 '가족의 운명이 나에게 달려있어'라고 믿습니다. 그럴 땐 이어지는, "당신이 충분히 이겨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를 적용해야겠습니다.


2. 아무래도 가족 입장에 감정이입이 됩니다. 투병 생활에 대한 자세한 묘사와 생각을 읽고 가족분들이 우시지 않았을까, 오지랖 넓은 생각도 들었습니다. 먼저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 자신을 잊길 바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남은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잊어가면서도 그 사실에 죄책감을 가지니까요. 꺼져가는 조명처럼 '기억해줘요'라는 표현이 절묘합니다.

 내가 병을 이기지 못하고 죽었다면 가족들은 분명 슬퍼했을 것이다. (...) 아무래도 가장 슬퍼할 사람은 어머니일 것이다. 매일 같이 울면서 살다가 지쳐 쓰러질 수도 있다. (...) 나는 그저 꺼져가는 조명처럼 이따금 깜빡거리며 추억하고 그리워해 주다 차차 희미하게 잊힌다면 만족할 것 같다.
 물론 가끔씩, 그러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기억날 때가 있는 법이다. 식어버린 북엇국을 볼 때나, 노란색 햇빛이 비치는 방구석을 보면서, 가로등마저 외면한 구석진 골목길을 걸으면서도.
 하지만 세월이 가면 저절로 잊힐 것이다. 그것이 자연스러운 거니까. 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아마도. /p.35-37 꺼져가는 조명처럼 나를 기억해줘요

 

3. "충격을 받으면 아파하는 게 건강한 거예요. 내가 힘든 걸 인정하고 표현하고 소통해야죠."라는 얘기를 코칭 수업에서 들었습니다. 본인 마음에 상처가 있는데 자꾸 이 정도는 아픈 거 아니라면서 힘들어하는 사람을 걱정한 말이었습니다. 아프고 절망스러울 때 그대로 마주하는 일이 얼마나 건강하고 용기 있는 일인가요. 본문처럼 '그저 고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통제하려는 마음을 버리'고 싶습니다. 책에서 인상 깊은 부분을 기록하며 마칩니다.

 무균실을 퇴원하고 항암 치료가 끝난 뒤, 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완전히 쪼그라들었던 코의 재건 성형수술을 했다. 코에 갈비뼈를 심고 이마의 피부와 혈관을 이식하는 8시간 이상의 대수술을 견뎌냈다.
 그리고 수술 후 이주일 뒤, 진료실의 침대 위에 누워있는 나의 눈앞에서 생착에 실패한 코 주변의 절망적인, 살아있다는 붉은색의 증거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검은색 피부들이 가위로 거침없이 잘리고 있었다. 감각세포는 이식되지 않아 육체적 고통은 없었지만, 눈앞에서 잘려나가는 피부 그리고 생살을 자를 때 들리는 특유의 서걱거리는 소리, 알코올 솜과 코를 뒤덮은 연고의 역한 냄새가 불편했다.
 실은, 내심 아팠으면 했다.
 눈앞에서 피부가 가위질당하고 있는데도 마치 양파의 썩은 부분을 도려내는 주부처럼 '아까운걸...' 따위 같은 생각만 드는 무덤덤한 내 마음이 싫었다.
 "빠른 시간 안에 또 다른 피부이식을 해야 돼요."
 무덤덤한 목소리로 의사가 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문득 친구들과의 술자리가 떠올랐다. 친구들과 술집에 가면 500cc 맥주에 빈 소주잔을 띄우고 돌아가면서 잔에 소주를 따라 잔을 가라앉힌 사람이 벌주를 마시곤 했다. 내 마음도 그 게임과 같이 몇 년 전부터 조금씩 절망과 낙담을 따라왔고 피부이식을 해야 한다는 의사의 말, 그 작은 한 방울이 나를 침몰시켰다. 억지로 들이킨 벌주는 독해서 한 잔으로도 지나칠 만큼 어지러웠다.

 진료가 끝난 후 성형외과의 계단을 내려가고 다음 외래를 접수한 뒤, 발렛된 차를 돌려받아서 집으로 가는 길에도 취한 듯 떨리는 다리와 쿵쾅거리는 가슴의 울먹거림을 멈출 수 없었다. 집에서 얼버무리듯 상황을 설명하고 도망가듯 짐을 챙겨 독서실로 향했다. 가족의 얼굴을 차마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아픈 사람은 피해자가 아니라 되려 폭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같다'고 다시 한번 떠올렸다.
 햇살이 너무 밝았다. 그리고 이마의 수술 자국은 참을 수 없이 가려웠다. 가는 길목에 있는 커피집에서 망고 아이스티를 주문했다. 아메리카노보다는 달달한 음료를 마셔 마음을 조금이라도 진정시키고 싶었다. 차가운 아이스티를 손에 쥐고 있으니까 조금은 마음이 풀어지는 듯도 했었다. 그런데 그때, 저 앞에서 커플 한 쌍이 서로에 기대 걷는 것을 보았다.
 푸른 하늘, 햇살은 눈부시고 학교 옆 돌담에 막 새싹이 돋아나는 잎들이 바람에 기분 좋게 흔들리고 있었다. 남자는 부드러운 컬이 있는 머리에 하늘색 셔츠, 흰색 면바지에 유행을 할 것 같은 파란색 스니커즈를 신고 있었다. 긴 생머리의 여자는 분홍색 셔츠에 여자를 닮은 꽃이 수 놓여있는 흰색 스커트와 가느다란 발목에 어울리는 오렌지색 웨지 힐을 신고 있었다. 남자의 넓은 어깨와 탄탄한 팔이 여자의 가녀린 쇄골을 감싸고 있다.
 그 아름답고 빛나는 수채화에 나는 어울리지 못하는 수묵화였다. 어쩐지 그들에게 미안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이고서 독서실로 도망치듯 달려갔다. 서둘러 자리에 앉아 숨을 고른 후 아이스티 한 모금을 마신다. 너무 달아서 입안이 씁쓸하다. 고개를 숙이니 수많은 주사 바늘로 탄력을 잃어 혈관이 너덜거리는 팔이 보였다.
 한 모금 더 쭉...
 달달한 아이스티가 서서히 스며든다. 입으로 마시는 아이스티에 붕대로 둘둘 감은 코가 시큰한 건 왜일까. 힘을 내라고 조용히 중얼거려본다. 참고 견디면 이겨낼 수 있다, 아픔은 영원하지 않다고.
'왜 이겨내야 하는데?'
 내 안의 누군가가 묻는다. 하지만 대답할 수 없었다. 나도 알고 있으니까. 어떤 희망차고 도덕적인 말을 중얼거려도 결국 중요한 사실은 바로 내가 지금 당장 아프다는 것뿐. 나는 잡지에 나오는 강인한 사람들, 위기를 극복한 위인들 같이 대단하고 의연한 사람이 아니다. 이제는 괜찮다고, 괜찮아질 거라고 날 다독이는 것도 지친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찾아 들으면서 '그래... 그래도 나는 행복한 편이야'같은 비겁한 위로를 하는 것도 더는 하고 싶지 않다.
 무의미하고 허무하다.
 잘 버티어 오다가, 어째서 '고작'이런 일에 무너지는 걸까? 여태까지 더 큰일들도 담담한 척하며 꾸역꾸역 소화해왔는데, 이런 느낌이 드는 날은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초점이 풀린 채로 몇 시간씩 허공을 응시한다. 마치 색맹 테스트를 하는 것만 같다.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그림 안의 숫자를 대답하지만, 나는 아무리 인상을 쓰고 바라보아도 기묘한 빛깔의 원형뿐이다. 애써도 보이지 않으니 그저 포기할 수밖에. 내 한계를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밖에.
 애써 외면하던 내 본심과 나약함을 마주하는 날. 그런 날은 절망이 눈앞의 망고 아이스티처럼 진하게,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퍼져간다. /p.90-93 왜 이겨내야 하는 걸까   




https://youtu.be/_jbpeqPEGF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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