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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Dec 25. 2023

역시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오랜만에 인사 올립니다. 잘 지내셨나요?

 내가 싫어하는 걸 애써 찾아 헤매던 때가 있다. 또한 그것을 왜 싫어하는지에 대해 타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논리정연하게 의견을 피력할 수 있기 위해 갖은 애를 썼던 때가 있다. 이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모든 걸 극복할 수 있다는 낙천적인 가치관의 소유자인 외할머니 아래에서 성장한 탓이었다.


 불안정하고 불행한 가정사로 인해 청소년기에 우울증을 심각히 앓았다. 브런치에 이미 게재한 글만 가볍게 훑어도 내가 어떤 사연을 지녔는지 쉽게 알 수 있으니 더 길게 설명하진 않겠다. 오죽하면 학교에서 집으로 연락해 이 학생은 심리 상담이 절실히 필요하다 했고-물론 외할머니는 긍정적인 생각과 노력, 의지로 극복할 수 있는 부분이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어떤 선생은 나를 학교 상담실로 끌고 가 상담받을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기도 했다. 물론 약물 치료가 필요한 정도의 중증 상태였기에 상담 정도로는 어림도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타고나길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였는데 외할머니는 나의 그런 성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내가 꺼리는 어떤 것, 또한 싫어하는 어떠한 걸 마주했을 때 내가 왜 그것 때문에 힘들어하는지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지 않으면 그에 대한 배려를 전혀 받지 못했다. 오히려 그것과 더 가까이 지내게끔 만든 횟수가 훨씬 많다. 일명 극약 처방이었다. 그것과 가까이 지내면 억지로라도 적응하고 받아들여 친밀해질 수 있다는 판단하에 이루어진 훈육이었으나 나에게는 정말로 끔찍한 시간이었다. 무뎌지기는커녕 예민함이 극도로 악화하여 보기만 해도 공황에 빠질 정도로 무서워진 것들도 더러 있다.


 어쨌거나 그런 환경에서 오래 지낸 탓에 나는 타인에게 내 감정을 증명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고, 여전히 그랬다. 내가 그걸 왜 싫어하는지, 그걸 마주하면 어째서 불쾌한지, 왜 나에게 그것을 들이미는 게 날 상처입히는 일인지 끊임없이 설명했고 주위 사람들은 나를 굉장히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으로 보았다. 하지만 적어도 외할머니처럼 나를 대하진 않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으로 만족했다. 둥글둥글하고 모든 걸 좋게 넘어가는 사람으로 남아 상처투성이가 되는 것보단 까다로운 사람이 되어 배려받는 게 나았다. 그걸로 나의 심적 에너지를 아껴 다른 사람에게보다 친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내가 꺼리는 이유를 나 자신조차 설명할 수 없는 순간이 종종 있었기에-그건 아마 유년기나 청소년기 시절에 겪은 어떤 상처 때문에, 무의식이 거부한다고 예측하고는 있다-나는 그런 순간이 너무나 답답했다. 그래서 싫어하는 것과 싫어하는 이유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잘 설명하는 사람이 내 우상이었다.



 그렇다, 그렇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이다. 나는 지금껏 타인의 배려와 애정으로 인간관계로 크게 골머리 앓는 일 없이 운 좋게 살아왔으나 운이 나쁜 순간이 걸리고 말았다. 사실 운이 나쁘다고 표현해도 괜찮은지 모르겠다. 내 태도를 고치게 된 기회가 되었으니, 운이 좋았다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본론을 말하자면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로부터 핀잔을 들었다. 왜 그리 싫어하는 게 많냐, 일일이 챙겨주는 것도 피곤할뿐더러 네가 애써 주장하는 걸 듣는 것도 피곤하다, 나는 좋은 얘기만 보고 싶은데 네 SNS에서 그런 이야기만 올라오는 게 보기 싫다, 때로 너를 이해할 수 없다 하는 이야기였고 나는 충격 속에서도 시인할 수밖에 없었다. 억울한 마음이 들지 않은 건 아니었으나 나는 그 자리에서 사과했다. 가장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이리 말한다면 멀리에서 보기에도 나는 그런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싫어하는 게 많았고 좋아하는 걸 얘기하기보다 싫어하는 걸 얘기하는 순간이 곱절의 곱절은 더 많았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충격에 대한 피해를 호소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나는 어느 순간 깨닫고 말았다. 외할머니가 입이 닳도록 말씀하신 긍정적인 생각과 의지, 노력에 대한 긴 훈육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그래도 힘든 인생이 더욱더 지치고 마니까 조금이라도 인생을 무난하게 보내자’하는 취지였다는 걸. 물론 극약 처방은 심했다고 쳐도 외할머니의 말씀이 드디어 와닿는 순간이었다.


 좋아하기에도 벅차고 부족한 인생이다. 더구나 나 역시 그렇듯이 대부분 사람은 타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더 궁금해한다. 뒷담이나 하소연은 순간의 시원함을 남기지만 뒤끝이 텁텁하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을 얘기하고 그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일은 언제 해도 즐겁고 끝이 개운하다. 스물여덟, 많은 것을 배워 가는 나이. 나는 이렇게 또 하나 새로운 것을 배웠고 그날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나는 매장을 예쁘게 꾸미고 정리 정돈하는 걸 좋아한다. 내 능력을 자신하고 때로는 허풍 떠는 것도 재미있어한다. 실없는 농담이나 말장난을 좋아한다. 그림 그리기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타인의 칭찬을 좋아한다. 사색에 잠기는 걸 즐기고 겨울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걸 좋아한다. 여름에 느낄 수 있는 비에 젖은 땅 냄새를 좋아하고 백합 향기를 좋아한다. 내가 가진 재능과 지식을 십분 이용해 누군가를 가르치는 걸 좋아한다. 치킨이나 곱창이나 닭발이나 닭똥집, 연어나 새우, 양념게장 같은 걸 너무 좋아해서 돈만 있으면 항상 먹고 싶어 할 정도다. 맛있는 음식을 소중한 사람과 같이 먹는 걸 좋아한다. 사람이 많은 장소는 꺼리지만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는 건 밤새 달리고 싶을 만큼 좋아한다. 엄마나 외할머니와 함께 옛날에 행복했던 이야기를 추억하는 걸 좋아한다. 간혹 모교에 몰래 방문해 학창 시절에 계셨던 선생님들이 여전히 계신 지 살펴보고 오는 걸 좋아한다. 세탁기 물이 하수구 구멍을 통해 빠져나가며 소용돌이를 그리는 걸 멍하니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샤워볼에 거품을 냈을 때 풍성하게 보글보글한 상태를 보는 걸 좋아한다. 매출은 안 나올지라도 휴일에 한산한 매장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를 좋아한다. 인공눈물을 넣은 후에 눈이 개운해지는 감각을 좋아한다. 타인의 글을 읽고 더 그럴듯하게 교정하고 교열해 주는 걸 아주 좋아한다.


 그런데, 사실 글을 쓰는 일은 아직 잘 모르겠다. 좋아한다고 생각해 왔고 적성에 맞다 생각했건만 요즈음 들어 영 재미가 없다. 하지만 좋아하려고 노력하기로 결심했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잘하려고 노력하기보다 적성에 맞는 일을 더욱 발전시키고 좋아하려 노력하는 게 빠르다는 것 정도는 이제 알고 있으니까.


 당장 생각나는 것만 두서없이 적었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아마 훨씬 더 많을 것이다. 나는 그걸 천천히 찾아가려고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말해주어야지. 내가 느낀 감상과 감정을 나누어야지. 싫어하는 것하고 씨름하기보다 좋아하는 것과 더욱 친하게 지내고 나를 더 알아가야지.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도 영향을 받아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볼 수 있게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 또 하나 찾았다.

 나는, 나의 글로 인해 타인의 인생이 조금이라도 위로받는 걸 좋아한다.     


 역시 나는 글 쓰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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