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힘은 변함없이 미래의 등을 밀어준다

친애하는 나의 다정함들에게

by 효심연



오래도록 묵혀둔 브런치의 먼지를 털었다. 서른 살을 먹으니, 과거 이십 대 후반의 청춘을 보냈던 내가 그 시절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을 되짚어 보고 싶어서였다. 이런 욕구를 지닌 건 꽤 오래된 일이었으나 이제야 실행에 옮긴 이유는, 나의 아침이 늘 이른 시간에 시작했기 때문이리라. 꼭두새벽부터 출근하는 내게는 ‘브런치’를 떠올릴 나날이 얼마 되지 않았다. 아침은 간소하게 여덟 시 이전에, 점심은 오후 중 적당한 시간에, 저녁은 퇴근 후 헬스장에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면 바로. 아침 겸 점심이 인생에 없도록 산 지가 너무 오래였다.


그러던 중, 불가피하게 며칠간 야간 근무를 서게 되었다. 아침 해가 한창이고, 온 직장인이 그들의 생계를 위해 대거 이동하는 그 시간에 퇴근하게 된 것이다. 도대체 며칠간 잠을 설친 지 기억도 안 난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하면, 그제야 늦은 아침을 먹게 되는 게 유일하게 정착한 생활 방식이었다.


시각은 오전 열 시를 웃돌았다. 건강을 위해 조정한 식단은 미각의 즐거움조차 선사해 주지 못했다. 나는 얼마간 양배추를 씹어 삼키다가 ‘브런치’에 생각이 닿았다. 미각이 즐겁지 못하다면 뇌의 신경이라도 자극받았으면 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내가 쓰는 글이 서툴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나의 브런치를 정독하면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내용에 대한 즐거움보단, ‘과거에도 글을 꽤 정갈하게 잘 썼네’ 같은,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고 싶었다. 나는 스마트폰 액정 속에 오래 갇혀 있던 내 서랍을 열었다.


그런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분노와 회한으로 얼룩진 기록이었다. 이토록 아픈 고함과 슬픈 절규가 묻어나는 글은 참으로 오랜만에 본다. 한창 청춘을 누려야 할 나이에 엄습한 삶의 고난을 향해 ‘나는 절대 쓰러지지 않겠다’라고, 악을 쓰고 있는 글들. 지금 내가 보기엔 우습기도 하고, 온갖 날카로운 감정이 똘똘 뭉쳐 있어 읽기에 부담이 되는 그런 글들.


나는 그것들을 글이라고 정의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수많은 익명에게 하소연하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따뜻하게 지켜보고 응원해 준 이들의 존재가 나로 하여금 서랍 속에 글을 열일곱 개나 채울 수 있도록 이끌었다. 기꺼이 나의 독자가 되어준 이들이 내게 남긴 한 마디 한 마디는, 그때로부터 2년이나 흐른 현재의 나에게도 동력을 부여했다. 그 동력은 내가 이렇게 18번째 글을 쓸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랑의 힘은 이렇게 변함없이 미래의 등을 밀어주는 것이다.


나는 2년 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엄마의 빚을 갚고 있고, 여전히 때때로 글과 그림을 쓰고 그리며, 둘째 이모를 그리워하고, 정신병에 시달리고 있었다. 달라진 점이라면 ‘미워함을 미워하는 연습’을 하고 있다는 것.


직장 상사가 미운가? 아니, 그 사람은 평생 볼 사람도 아니다. 일터에서 등을 돌리면 모르는 아저씨일 뿐이다.

엄마가 미운가? 아니, 엄마를 미워한다고 빚이 탕감되는 건 아니다. 나만 괴로울 뿐.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미운가? 아니, 그들이 나를 미워한다고 내 인생이 망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모든 미워함의 감정을 떨쳐내지 못하는 내가 미운가? 아니, 나는 내가 밉지 않다. 미운 것은 ‘미움’이라는 본질적인 감정에 불과하지, 나 자신을 정의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렇게 끊임없이 내 안에 내재한 뾰족한 감정을 다스리고 있다. 무언가를 미워할 힘으로 더 나은 것을 할 수 있을 테니까. 사랑은 크기를 막론하고 미움을 희석한다. 어쩌면 더 좋은 데에 쓸 수도 있었던 그 마음을 내게 보내준 고마운 사람들을 위해, 나는 오늘도 미워하는 마음을 미워해 없앤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도록.


사랑의 힘은, 변함없이 미래의 등을 밀어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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