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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심연 Jan 03. 2023

3을 곱한 시간

친애하는 S에게

우리는 서로를 모르고 살아온 시간보다 알고 지내온 시간이 세 배로 많았다. 여덟 살, 초등학교 1학년. 우리가 그때부터 친하게 지냈다는 건 외조모가 촬영해준 사진으로 전부 남아있다. 나는 두꺼운 앨범을 한 장 한 장 넘긴다. 사진속의 어린 나는 단발머리고 S는 말괄량이 삐삐 머리다. 한없이 귀엽기도 촌스럽기도 한 그 흔적을 손끝으로 훑어본다. 여덟 살은 너무 어릴 적이라 그런지 기억에 남아있는 사건은 거의 없다. 그래도 흐리멍덩한 머릿속을 파헤치고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밥 먹는 속도가 유독 느리고 편식이 심했던 나는 텅 빈 교실에 홀로 남아 급식을 끝까지 먹고 있었다. 창문 밖으로는 하굣길에 오르는 친구들의 모습이 보였다.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왜 급식을 남기지 말고 전부 먹으라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눈물 섞인 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는데 드르륵, 교실 뒷문이 열렸다. 그 너머에 S의 모습이 보였다. S는 고개를 빼꼼 내밀고 바라보다가 내게로 다가왔다.


“뭐해? 집에 안 가?”


누구는 집에 가기 싫어서 이러고 있을까. 어린 마음에 서운함이 더 크게 느껴졌다. 내 입에서는 모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선생님이 남기지 말고 다 먹으래서 못 가.”


S는 내 주변을 기웃거렸다. 내 눈시울이 발개진 걸 발견했는지, “울어?”하고 물었다. 대답하고 싶어도 목이 컥컥 막히는 기분이라 대답할 수 없었다. S는 대답 없는 내 옆으로 앉았다. 그때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더는 기억이 안 난다. 하지만 그 기억을 떠올렸을 때 이토록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걸 보면, 아마 그녀는 내게 위로의 말을 건네지 않았을까. 이것이 내가 기억하는 S와의 최초의 기억이다.


우리는 특이하게도 홀수 학년일 때마다 같은 반이었다. 1학년 1반, 3학년 5반, 5학년 3반. 다른 학년일 때의 반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유독 S와 같은 반이었던 학년만 기억하는 건 그만큼 S와 함께 한 학창시절이 그리도 좋았다는 것이려니 한다. 실제로도 어렴풋이 떠오르는 초등학생 때의 기억에는 반절 이상 S가 등장했다.


더 특이한 것은 또 있었다. 우리는 중학생과 고등학생 때도 같은 학교였다. 지금이야 우스갯소리로 징그럽다, 어쩌다 말하지만 같은 중학교와 고등학교로 배정받았을 때의 기쁨은 아직까지도 가슴께를 간지럽게 만든다. 나는 S와 지내는 게 당연했고 S 역시 나와 지내는 걸 당연히 여겼다.


우리는 중학생이 되어서도 3년 중 2년을 같은 반으로 지냈다. 취미를 같이 공유했고, 늘 붙어 다녔다. 좋은 노래가 있으면 같이 듣고, 좋은 것이 있으면 같이 봤으며, 좋은 음식이 있으면 나눠먹었다. 나는 그녀가 있으면 두려운 게 없었다. 우리는 고등학교 지원서도 1지망, 2지망, 3지망을 똑같이 적어 냈다. 꼭 같은 학교에 배정되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그 기도를 들어준 것인지 우리는 같은 여고로 진학할 수 있었다.


고등학생 때는 단 한 번도 같은 반이 못 됐다. 그래도 우리는 꼭 같이 하교했다. 종례가 늦게 끝날 적이면 우리는 항상 서로를 기다려줬다. 우울증에 시달려 야간자율학습을 빠진 날에는 S도 똑같이 땡땡이를 쳤다. 그리고 나를 PC방으로 데리고 갔다. S는 내게 라면을 사주고 나와 함께 같은 게임을 했다. 내 얼굴에 웃음이 떠오를 때서야 S는 안심한 듯 웃었다.


성인이 되고난 후의 3월 23일, 내 생일이었다. “생일이 뭐 대수라고 내가 딸자식한테 못된 소리 하나 못 하냐”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죽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는 집 근처 놀이터 벤치에 앉아 울면서 S에게 전화했다. S는 하염없이 울기만 하는 나를 찾아왔다. 그런 나를 데리고 S는 애슐리에 가서 밥을 사줬다. 내가 접시를 비우는 걸 보고서야 S는, 고등학생 때처럼 안심한 듯 웃었다. 나는 그 얼굴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얼굴이며 내가 오래도록 간직하며 살아가야하는 얼굴이라는 걸 그 자리에서 깨달을 수 있었다.


성인이 되어서는 연락이 뜸해졌지만 우리는 간간이 소식을 전한다. 나는 S와 연락하지 않을 때에도 늘 마음속에서 S와 시간을 떠올리며 살아간다. 죽고 싶은 날이면 더욱이 더. 나는 항상 그렇게 각오를 다진다. 더 살아가겠노라고. 우리가 모르고 살아온 시간이 10배, 아니 그 이상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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