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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oseol May 29. 2024

주말농장 말고 주말 가드너

엄마의 정원에서 발견한 아름다움 

평소 주변 사람들한테 언젠가 마당과 테라스가 있는 집을 짓고 살겠다고 말하곤 했다. 다만 나에겐 아직 너무 먼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본가에는 이미 둘 다 있었다(!) 사택인지라 마당과 주차장이 노출되어 있는데, 자꾸 마당에 쓰레기를 버리고 가는 사람들 때문에 본격적으로 시작한 엄마의 가드닝.


평소에도 식물을 좋아하는 나는 올해 봄 여름에는 엄마와 아빠를 따라 주말 가드너 놀이를 하며 잔뜩 대리만족했다. 화원과 나무시장에 가서 얘는 이름이 뭔지, 노지월동은 되는지 이것저것 물어보며 꽃과 나무를 사는 게 재밌었고 꽃 이름을 많이 알게 됐다.


주말 가드너 생활을 하면서 달라진 점이라면 지나다니면서 만나는 식물들이 궁금해졌다는 것이다. 정원을 꾸려 놓은 식당이나 카페에 가면 어떤 식물을 심었나, 배치는 어떻게 했나 세심하게 살펴보게 된다. 그러곤 사진을 찍어두고 엄마에게 보낸다. ‘우리도 이렇게 해볼까?’ 누군가에게 선보이기 위해 마련된 공간의 정원들은 화려하고 티없이 아름다워 보인다. 그에 비해 우리가 가꾸는 정원은 군데군데 빈 곳도 많고 잡초와 돌도 많지만, 그 과정을 직접 보고 겪었기에 정원 가꾸기는 얼마나 많은 손길이 필요한 일인지 그리고 우리 정원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날이 좋은 계절엔 카페를 가는 대신 테이블과 의자를 가져다 놓고 각자 할 일을 할 때도 있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벚꽃잎이 떨어지는 걸 구경하고, 들려오는 새소리에 집중하다보면 일을 끝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무렴 어떤가. 


어릴 때부터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란 엄마는 코끼리 바위가 있는 계곡에서, 숲이 울창한 곳에서 놀았다고 한다. 그땐 주변에 있는 자연이 너무 당연해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정작 식물들의 이름은 잘 몰랐다고 한다. 중년이 된 엄마는 주변을 다시 자연으로 채우고 가꾸게 되었다. 밭일하러 가듯이 장화며 쪼그리 방석이며 도구들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체력이 부칠텐데도 부지런히 정원을 가꾸는 일이 엄마에게 활력소가 됨을 느낀다. 


세월이 흐른만큼 이름은 들어도 종종 까먹고, 여기 저기 심어 보며 옮기느라고 식물들은 좀 고생이겠지만, 잡초를 솎아내고 또 여기저기 심어보느라고 끝이 없지만, 그래도 매일 참참이 돌보며 너네 거기 있구나- 알아차려주는 엄마 스타일 가드닝을 보면서 중요한 건 이름 숙지나 완벽한 정원이 아니라 세심하게 들여다 보고 가꾸는 손과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book
○ 이맘때면 여러분이 세상과 맺는 관계가 딴판으로 달라져 있습니다. 이제 비가 오면 정원에 비가 내리는 게 됩니다. 해가 나면 아무렇게나 햇살이 빛나는 게 아니라 정원을 비춘다고 말하게 되고요. 저녁이 되면 이제 정원이 휴식을 취할 수 있다고 기뻐합니다.
○ 쉬지 않고 꽃밭을 갈아엎고 재배열하고 색 조합을 궁리하고 관목을 옮겨 심고 똑바로 서 있거나 자라는 것이라면 가만히 놓아두질 못하는데, 이게 다 예술적 불만족 때문입니다. 정원 가꾸기가 목가적이고 명상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면 착각입니다. 인간이 마음을 쏟는 모든 일이 그러하듯, 정원 일 또한 부단이 채워지지 않는 격정의 발로니까요.
- <정원 가꾸는 사람의 열두 달>, 카렐 차페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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