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비밀이야
고통스럽게 살면서 용기 내지 못하는 자보다 좋은 삶을 살고자 용기 낸 사람들에게
잘했다, 훌륭하다, 잘 살았으면 좋겠다, 이야기해 주세요.
이호선 상담소 11화 오프닝
"이호선 상담소"라는 프로그램을 좋아한다. 꼭 챙겨보는 프로는 아니지만, 우연히 채널을 돌리다가 재방송을 하고 있으면 리모컨을 내려놓고 빠져들어 본다.
어젯밤, 몇 주째 우울감이 지속되던 와중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TV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친한 친구로 오래 유지하고 싶다면 비밀 이야기는 하지 마세요.
이 이야기는 나의 비밀 이야기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말하지 않는 이야기.
내 안에 쌓여 있던 걱정들이 가장 크게 흔들리던 지점을 품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고, 어쩌면 나의 치부처럼 느껴지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래서 묻지 않으면 말하지 않았다.
먼저 꺼내지 않는 쪽을 선택하며 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한편으로 나름의 걱정을 한 아름 떠안고, 나의 이야기를 적어 내려가기로 했다.
이야기 끝에 해방감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내 나이 스물한 살.
전기요금을 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목이 졸렸다.
그리고 나는 그 집에서의 탈출로로 삼은 것이 바로 결혼이었다.
나는 대학교 1학년 1학기 만에 휴학계를 내고 그 해 겨울에 결혼을 했다.
그리고 스물여섯 겨울에 이혼을 했다.
그 결혼 생활 중에 나와 전남편 사이에는 딸을 하나 두었다.
나와 닮았지만, 닮지 않은 아이.
내가 다섯 살까지 밖에 키우지 못한 그 아이가 벌써 스물넷이 되었다.
이혼 후의 나의 삶은 고됨의 연속이었다.
남자를 믿지 못하고, 사람을 믿지 못하고, 가족을 믿지 못하는 삶이었다.
아니,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삶이라는 게 더 맞는 말일 것이다.
언니와 서울에서 자취를 하고 복학과 휴학을 반복하며 학업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것은 말할 나위도 없었을뿐더러, 아르바이트를 해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하루하루에 어떤 것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살아내는 순간순간이 고통이었다.
그 사이에도 나는 불나방처럼 여러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했다.
"널 좋아해. 내가 지켜줄게."
라는 달콤한 말들에서 시작된 연애는 나의 변덕에 관계를 지속하기 쉽지는 않았다.
짧게는 2달, 길게는 3년.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았다.
내 남편은 같은 대학 동아리 후배다.
"형, 좋아해요."
스물일곱의 나에게 당돌하게 고백하고 기습뽀뽀 후 따귀를 맞은 남자.
아주 특이한 녀석이다.
아주 이상한 녀석이 매번 내가 힘들 때마다 내가 어디에 있든 마치 영웅처럼 구하러 달려와준 녀석이다.
말은 영웅 어쩌고 하지만, 사실은 찌질함의 극치를 달리던 시절이다. 나나 그 녀석이나.
몇 년을 그렇게 내 옆에서 맴돌던 그 아이를 받아들인 건 내 나이 서른두 살의 12월이다.
그렇게 서른셋의 나이에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그 녀석의 리드에 빠른 결혼이 이루어졌다.
나는 재혼이고 연상에 집안 형편도 많이 기우는 사람.
그 녀석은 초혼에 집안도 꽤나 안정적이었기에 반대에 부딪힐 수밖에 없었던 일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결혼을 하게 되었고, 그 녀석과 나 사이에 아이가 한 명 태어났는데,
그 아이가 바로 욱이다.
이렇게 적고 보니 내 인생의 한 부분이 참 단정하게 정리된다.
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시간들은 결코 단순하지 않았다.
이 짧은 글로 하여금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그림책《걱정 유리병》속 프리다처럼 "걱정 조약돌"을 꺼내 유리병에 담아 놓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어쩌면 아무것도 아닌 일,
어쩌면 누구에게도 중요치 않는 일.
그렇지만,
나에게는 커다란 용기가 필요한 일이기에 무수한 걱정을 안고,
그러나 가벼워지고 싶은 마음으로
나는 이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