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

긴 터널을 통과하는 이들을 위한

by 송새벽



벌거벗겨지는 일의 용기


얼마 전, 최정은 작가님의 《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을 다 읽었다.

책을 덮는 순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그림책을 만든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의 민낯을 그리는 일이라는 것.

겉으로는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이야기 같지만, 실은 나의 가장 깊은 곳에서 끌어올린 기억, 감정, 결핍, 바람, 상처를 색과 형태와 문장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일까.
그릴수록, 쓸수록, 나는 내 내부를 더 들여다보게 된다.
감추고 싶던 마음의 결이 번져 나오고, 방치해 두었던 감정의 구석이 빛을 받아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그 민낯이 세상 앞으로 나가는 순간...
나는 늘 조금 두렵고, 동시에 조금은 시원하다.


내가 들키는 기분.
내가 드러나는 감각.


나를 모르는 누군가가 내 안쪽을 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떨림.
그 모든 것이 글쓰기의 본질이라는 걸 나는 그림책을 만들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림책은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은 내가 나를 그리는 일이다.


그렇게 벌거벗겨지고도 다시 또 한 장면을 그리고, 다시 또 한 문장을 적어 넣는다.

왜 그런지 아직은 정확히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꾸 들키고 싶은 마음.
더 솔직해지고 싶은 마음.


그것이 나를 계속 쓰게 한다.

오늘의 나는, 민낯을 보여주기로 결정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림책은, 그 선택을 도와주는 가장 아름다운 창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최근 읽은 최정은 작가님의 《마흔에게 그림책이 들려준 말》이 큰 몫을 했다.

이 책은 그림책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감정의 흔적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작가가 그림책을 읽고, 그 속에서 자신의 마음을 발견하고, 다시 그 마음을 독자에게 건네는 과정이 놀랍도록 투명하고, 다정하고, 단단하다.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그림책이란 이런 것이구나’보다 ‘작가란 이런 존재구나’를 더 많이 생각했다.

그림책을 만드는 사람은 어쩌면 누군가에게 말을 건네기보다 먼저 자기 마음에게 말을 걸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래서 좋은 그림책은 결국, 잘 가려진 이야기가 아니라 잘 들여다본 마음에서 온다는 것을 이 책은 아주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일깨워준다.


이 책을 읽고 난 후,

내가 만든 이야기들이 어떤 방식으로 나를 드러내고 있었는지, 나는 어떤 감정의 언어로 이야기를 써왔는지 고요하게 돌아보게 된다.

그림책을 쓰는 사람이라면, 혹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반드시 마주해야 할 문장들이 이 책에는 곳곳에 놓여 있다.

결국 나는, 이 책을 덮고 다시 펜을 들었다.
그리고 속삭이듯 이렇게 적었다.


“나는 나의 민낯으로 쓰겠다.”


나의 일기장엔 그동안 적어 내려온 적나라한 밑바닥의 감정들이 참 많다.
그래서 누가 혹시라도 읽게 될까 두려운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오기도 했다.

몇 번이나 ‘지울까?’ 그 앞에서 망설이며 손가락을 멈춘 적도 있다.

그런데 오늘, 댕— 하고 바람 냄새가 깃든 작은 종소리가 울리는 것만 같다.

그때의 그 감정들은 그 순간의 내가 느낀 가장 거짓 없는 민낯이고, 숨기고 싶지만 결국 마주해야만 하는 나의 깊은 결을 드러낸 기록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지워버리는 대신, 그저 조심스럽게 한 줄 더 적어본다.
‘그때의 나’를 잃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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