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W: 하이파이브

꾸꾸일기 / 10. 17 - 23

by HYO

볼록 나온 배를 안고, 임신을 하고 처음으로 먼 거리 여행을 떠났다. 두 손 잡고 느리게 천천히 걸으며, 한 도시에 담긴 서로 다른 지난 기억을 나눴고, 다시 한 도시에 서로 같은 기억을 담았다. 그리고 미래에 이 도시에 꾸꾸와 함께 올 것도 약속했다. 하룻밤 묵었던 고택은 '고즈넉'이란 말을 현실에서 가장 잘 표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만큼 좋았다. 이 곳도 꾸꾸와 함께 다시 와야지. 그리고 이곳에서 우리가 했던 이야기와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 다 말해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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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아침풍경




태동을 느꼈다

어느 날 밤, 배에 손을 얹고 대답 없는 꾸꾸의 이름을 부르며 이런저런 말을 하다가 배를 꾹 눌렀는데, 쑥 하고 미는 느낌이 났다. 임신 사실을 알았던 날 만큼 놀랐다. 그리고 정말 신기했다. 그래서 몇 번 더 시도했으나 다시 반응은 없었다. 아직 자유의지가 없어서 나의 손에 반응한 것은 아니고, 어쩌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거란다. 아 이런 기분이구나. 이런 느낌을 아내는 매일 같이 느끼겠구나. 힘들지만 조금은 좋겠다... 자주자주 쑥 하고 하이파이브해줘- 손인지 발인지 알 수 없지만.




책을 읽어주기 시작했다

밖에서 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책을 읽어주기로 했다. 동화책도 태교를 위한 책도 없어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상상력 사전을 읽어주고 있는데, 어렵고, 복잡하고, 이상한 내용들이 많다. 사실 꾸꾸보다 책을 읽으며 우리가 더 신기하고 흥미로워하고 있다. 엄마가 즐거워하고, 나의 목소리도 듣고 그러면 된 거지 뭐... 바깥세상에서 나의 목소리가 익숙해지도록 매일 밤 잘 읽어줘야지




열심히 살고 있는 꾸꾸.

정밀검사를 했다. 꽤 오랜 시간 초음파로 이것저것을 확인하는 검사였다. 심장이 뛰는 모습을 오랫동안 볼 수 있었는데, 그 순간이 제일 찡했다. 매일 ‘너는 뭐하니?’, ‘뭘 하긴 하는 거니?’라고 물었는데, 정말 열심히 살아가고 있구나. 280days라는 어플에 익숙해져서, 뱃속의 꾸꾸가 그렇게 생겼다고 믿고 있었는데, 오늘 꾸꾸의 실체를 보고는 조금 깜짝 놀랐다. 물론 턱과 콧구멍이 얼굴이 전부이긴 했지만. 그런데 아내는 ‘귀엽다’라고 말했다. 역시 이길 수 없는 모성애인가. 정밀 검사의 결과 꾸꾸의 머리는 주수보다 조금 크고, 배는 조금 더 크고, 허벅지 길은 조금 짧다고 한다.ㅋㅋㅋㅋ 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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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 그녀의 콧구멍, 내 콧구멍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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