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W: 행복할 것. 아프지 말고.

꾸꾸일기 / 2. 14 - 20

by HYO

갑자기 진통이 찾아온다. 식은땀이 흐르고, 나는 어쩔 줄을 몰라하며 허둥지둥한다. 아내는 나의 머리채 잡고서, 천하의 원수처럼 험한 말을 내뱉는다. 잠시 살만한 순간이 왔다가, 진일보를 위한 후퇴처럼 전 보다 더한 고통이 찾아오고 소리를 지른다. 몇 시간을 반복하다가, 응애 소리가 들리고 우리는 감격의 눈물을 흘린다. 여기까지가 내가 미디어를 통해 배운 출산의 과정. 그리고 내가 겪은 현실은 머리채를 잡히는 일 없이 극도의 초조와 긴장 상태를 보낸 것이 전부.




2월 18일 12시 44분

예정일보다 열흘 정도 빨리 꾸꾸는 태어났다. 정확히는 밖으로 꺼내어졌다. 예상보다 너무 빨리 자랐기 때문이다. 예고 없는 고통만큼, 예고된 고통도 무섭긴 매한가지였다. 남은 시간 동안 마음을 다잡아봐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수능, 입대, 면접, 수많은 사람 앞에서의 발표, 결혼... 지금까지 겪은 어떤 긴장과 떨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한 시간이 이렇게 긴 시간임을 분만실 앞에서 다시 한번 알았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상황을 생각했다. 한시가 다 되어갈 때 즈음 간호사분이 나의 이름을 불렀고, 이제 막 밖으로 나온 작은 꾸꾸를 만났다.

12시 44분, 3.8킬로그램의 무게로 건강하게 태어난 꾸꾸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서럽게 울면서 떨고 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처럼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벅찬 감정도 없었다. 그냥 다른 세계에 잠시 와서, 그 세계의 독특한 의식을 치르는 기분이었다. 탯줄을 자르고, 손가락 발가락 개수를 세고, 귀와 입 그리고 척추의 상태를 확인하고, 발도장을 쾅 찍는 의식. (탯줄을 자르는 것은 많이 떨렸다. 피가 막 나는데, 안 아프다고 괜찮다고 어서 자르라고. 아기의 의견은 물어보지도 않았으면서) 그리고 마지막 초록색 천에 아기를 감싸서 내 품에 안겨줬다. 아주 따뜻하고, 잠시 울음이 잦아들었다. 그때서야 조금 실감이 났다. 심장이 매우 빨리 뛰었다. 아내는 모든 과정을 다 기록하라고 했는데, 그제야 생각이 나서, 사진을 몇 컷 남기고, 분만실을 나왔다. 그리고 집에 전화를 하는데 울컥한 마음이 밀려왔다. 발리에서 생긴 일에서 조인성 통화하듯 가족들에게 출산 소식을 알렸다.

꾸꾸를 만나고 한 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아내는 병실로 돌아왔다. 아마도 태어나 가장 큰 수술이었을 것이다. 꾸꾸가 생겨남과 동시에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애틋한 마음도 같이 생겨났다. 지금도 아주 더디고 고통스러운 회복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진짜 아빠가 되었다

세상에 없던, 처음 만나는 새로운 존재를 품에 안으며 진짜로 아빠가 되었다. 숨을 쉬는 것도, 밥을 먹는 것도, 사람의 온기를 느끼는 것도, 바깥공기를 마시는 것도, 계절의 변화를 아는 것도, 모두 처음인 아기와 함께 우는 아기를 달래는 것도, 재우는 것도, 안는 것도, 그리고 똥을 치우는 것도 모두 처음인 아무것도 모르는 아빠와 엄마가 한 집에 살게 되었다. 감격의 크기만큼 걱정의 크기가 크지만. 뭐 셋이 같이 지지고 볶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행복할 것. 아프지 말고.

열 달. 나이 먹는 속도에 따르면 눈 깜짝하고 지나가는 시간이지만, 뱃속에 꾸꾸를 담고 지낸 열 달은 아주 길었고, 꽤 의미 있던 시간이었다.

별 거 아니었던 일들, 밥을 먹고, 잠을 자고, 길을 걷는 일에도 새로운 노력이 필요했다. 처음 겪는 변화들에 적응하느라 몸과 마음이 힘든 순간이 많았고, 모든 순간 불안이 함께 했다. 할 수 있는 일들이 줄어들었고, 해서는 안 되는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은 늘었다. 삶은 더 복잡해져서 전보다 더 부지런해져야 했고, 참고 견뎌야 하는 일들이 계속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꽤 행복했다. 낯선 일들을 함께 알아가며 지금까지 몰랐던 새로운 모습도 알게 되었고, 그만큼 사이는 더 단단해졌다. 단순히 즐겁고 기분 좋음의 감정이 아니라, '아 이것이 행복이구나'라고 느끼는 순간들도 많았다. 뱃 속의 아기가 커가면서 우리도 함께 자랐다. 열 달의 시간을 통해, 우리는 어렵고 힘들다는 육아를 잘 해내갈 수 있을 거란 확신도 얻었는데, 그 출처는 다름 아닌 '서로'였다.

어쨌거나 우리는 임신과 출산의 스테이지를 깨고, 이제 육아 스테이지 앞에 섰다. 이 판에서 우리의 퀘스트는 '더 많이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기'다. 그것이 이번 판을 함께 하게 된 새로운 팀원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아이템이 될 테니까.


"우리, 그리고 세상의 모든 엄마, 아빠, 아기들이 행복하고 아프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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