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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아 Jul 01. 2020

Why 에스토니아?

에스토니아 이방인 4년 차. 내가 아끼는 것들을 마구 소개한다.

에스토니아가 에스토니아여서 떠난 게 아니지만

에스토니아로 처음 떠나온 것은 2015년 여름이었다. 수도인 탈린(Tallinn)에서 2시간 거리에 있는 타르투(Tartu)라는 대학 도시에서 교환학생으로 1년을 보냈다. 한국에 돌아온 후, 졸업장을 받기도 전에 다시 에스토니아로 떠났다.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적당히 다르게 답변했다. 운 좋게 직장을 구해서. (지금은 헤어진) 애인이 거기 있어서. 유럽에서 경력을 쌓고 싶어서. 북유럽과 구소련의 문화가 공존하는 특이한 나라라서. 그럴듯한 명분이 많아서 다행이었지만 사실 진짜 이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삼림, 늪지가 정말 많다. 땅이 평평해서 생각 없이 슬렁슬렁 걷기 좋다.


졸업을 앞둔 당시, 나는 어딘가에 비친 내 모습을 견딜 수 없었다. 지하철 스크린도어나 버스 차창 속에 있는 나를 마주하면 내 결핍들과 무능력만이 보이는 반면,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에 확신이 차있는 듯했다. 그들의 경쾌한 발걸음 사이에서 나는 서서히 움츠러들었다. 뉘 집 딸내미가 저렇게 맥없이 걷나 했다, 언젠가 먼발치에서 날 발견하고 달려온 동기는 낄낄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따라 웃긴 했지만 내 결핍이 다른 이에게까지 목격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러다 보니 나는 에스토니아에서의 페르소나를 그리워했던 것 같다. 반쪽 짜리 이름으로 불리는 나. 그리 뛰어나지 못한 영어로 서로의 정서를 이해하지 못한 채 외국인들과 아무렇게나 이야기하는 나. 낯선 곳에서 다른 언어로 생활할 때 주어지는 자유로움과 단순함은 한시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문제로부터 도망쳤을 때 찾아오는 잠깐의 안도감에 기대를 걸었다.


그리고 지금

네가 어디든 너는 거기 있다(no matter where you go, there you are), 라는 속담이 꼭 맞았다. 내 문제는 언제나 나와 함께함을 확인한 나는 그것의 손을 잡고 그냥 살기 시작했다. 도피처라고 생각했던 곳에서도 시간은 똑같이 흘러가 벌써 4년이 지났고 직장을 두 번 옮겼다. 그러는 동안 유효한 경력이 쌓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뒤로 하루하루가 차곡히 포개졌다. 그 틈에는 해묵은 고민들, 새로운 걱정과 결핍들이 접착제처럼 자리하고 있었지만 그것과 함께 훨씬 더 많은 것들이 나와 내 시간을 대변한다는 것을 조금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게 소중한 것들을 수집하고, 거기에 눈길을 주는 것을 느리게 배우고 있다.

여기에 이제껏 에스토니아에서 모아 온 소중한 것들을 적어보려 한다. 소련식 식당에서 파는 걸쭉한 점심 특선 수프, 자정에만 살 수 있는 빵, 이상한 모양의 램프를 파는 중고 가게, 소파가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작은 언더그라운드 클럽 등 나와 눈이 맞아 지금껏 내게 힘을 주는 장소, 음식, 음악 등을 잊어버리기 전에 소개할 것이다.

본격 여행 가이드는 아닌지라, 읽는 분들에게는 이 기록이 어쩌다 마주친 에스토니아 교민과의 짧은 동행 정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유명 가수들이 와서 콘서트를 하지는 않지만, 작은 테크노 클럽에서부터 아웃도어 인디 뮤직 페스티벌까지 새로운 음악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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