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직딩이야기
매년 뉴스의 단골 주제 하나는 취업난이다.
작년에도 그리고 올해. 심지어 내가 대학을 들어간 이후부터 매년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지가 뉴스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 이렇게 극심한 취업난 속에도 2019년 사람인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퇴사자의 48.6%가 1년 미만의 신입사원이었다. 입사 1년 이하의 직장인 10명 중 5명은 회사를 그만둘 생각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취업난이 극심하지 않았던 날이 있었을까?
대학년 1학년 첫 학기가 끝나자 클래스 거의 친구들은 다들 한국으로 돌아갔다. 북경 생활한 지 1년 정도밖에 안되었으니 북경에서 남아 방학 동안 못했던 것들을 해 보고 싶었다. 중국 친구들 집에도 놀러 가고 싶었고, 내가 지내는 지역 말고 북경의 다른 곳들을 알고 싶었다. 우연히 기숙사 교정을 걷고 있는데 친한 학교 선배가 멀리서 나를 불렀다.
" 한국에 안 돌아가고 남아 있었네?"
" 올 방학에 학기 중에는 못했던 것들 해보고 싶어서요"
" 아 그래? 혹시 너 그럼 시간 많으면 인턴 한번 지원해 보지 않을래?"
" 정말요? 저야 좋죠 선배"
이렇게 호기로 좋죠라고 했던 시작은 인턴 면접장에 도착하니 7명이 더 있었다.
다들 북경에 대해서 잘 아니? 가 첫 질문이었다.
나를 빼고 6명은 중학교, 고등학교를 북경에서 나온 분들도 있었고 3-4학년 혹은 복학생 선배들이 많았다.
나 혼자 1학년이었다. 그리고 가장 북경에서 보낸 시간이 적은 갓 대학 1년을 마친 새내기였다.
선배들과 비교해서 중국어 실력도 당연히 떨어지는 것 같았다. 아니 떨어졌다.
'떨어지든 말든 우선 선배가 나를 추천해 주었으니 성격대로 최선을 다하자'라는 자세로 면접을 봤다.
그리고 7명에게 마지막 질문이 떨어졌다.
"고양이와 냉장고의 공통점이 뭘까?" 다소 엉뚱하고 갸웃 뚱한 질문이었다.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단어에 고자가 들어가고, 고양이가 입을 벌리듯 냉장고도 문을 열면 열립니다 그리고 고양이에 꼬리가 있듯 냉장고 코드가 꼬리 같습니다."
다소 엉뚱한 질문에 떨렸던 마음을 잡으며 재빠르게 대답을 했다. 말은 하고 있지만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를 만큼 인턴 면접 시간은 지나갔다.
그런데 뜻밖의 소식은 한 명 인턴 자리에 내가 되었다.
나중에 면접관이셨던 대리님께 왜 제가 되었나요? 여쭤보니, 원래는 복학생이 남자고 해서 그 친구를 한번 보자고 하면서 그래도 다른 후배 중 인턴 면접 보고 싶으면 데리고 나오라 했었는데 네가 임기응변이 가장 뛰어나 보여서 뽑았다고 했다.
어느 날 부장님께서 "자네는 이제 졸업하면 어디로 취업을 할 생각인가?"
"부장님, 저 아직 1학년이라서 아직 3년 남았습니다"
"뭐? 1학년이 벌써 인턴을 한다고? 1학년은 대학을 들어갔을 때 가장 많이 노는 학년 아니니? 우리 졸업할 때는 여기저기 기업에 지원만 해도 합격했었어, 인턴이 뭐야? 그런 거 생각도 없었어"
학교 1학년이 되자마자 선배들의 학교 다닐 때 취업준비를 어떻게 하는지, 한국에서 돌아갈 때 험난한 취업상황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
처음으로 듣는 이야기였다. 아 대한민국 건국 이래에도 부장님 졸업쯤에는 취업이 잘 되었던 때도 있었구나.
고개를 끄덕끄덕이면서 저희도 그런 날이 다시 왔으면 좋겠네요 하면서 얕은 한숨을 쉬었던 기억이 난다.
대학 4년 졸업 후, 대부분의 학과 동기들은 한국으로 돌아가서 취업 준비를 하고 북경에 남아 한국 대기업에 취업을 한 케이스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대학교 4학년 홍콩 여행 이후, 홍콩에서 일하고 있는 대학 외국 친구들의 만나서 홍콩회사 이야기를 들을 때 가슴이 뛰었다.
영어와 중국어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곳. 중화권에서 동서양 문화가 공존하는 홍콩. 홍콩 취업을 도전하고 맨땅에 헤딩했던 나에게. 그만큼 홍콩 취업은 간절했었다.
출퇴근 시간 사람들로 꽉 차인 지하철을 타고 처음 출근하는 날. 첫 출근날 회사에 입고 갈 옷을 코디하고 침대에 누웠지만 도저히 설레어서 또 잘할까 걱정되는 마음에 잠을 못 이뤘던 회사의 첫 출근 기억이 떠올랐다.
나의 의지가 아닌 합병이라는 외부적인 변화로 팀 내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주요 업무가 바뀌어 버렸다.
이 직업을 선택했을 때 가장 내가 메리트라고 생각했던 클라이언트 어카운트를 운영하면서 내 자체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 나간다라는 점이 너무 좋았다.
우선 기존에 나의 클라이언트 어카운트는 운영을 하지만 더 이상 새로운 클라이언트는 우리 팀에서 담당하지 않는 다고 했다.
첼린징 부분이 있었지만 그래도 많이 배웠던 클라이언트와의 미팅과 운영 부분을 더 이상 하지 않으니 아쉬웠다. 그리고 조금은 지루했던 업무들이 이어졌다. 분명히 서포트 업무 부분도 내가 배울 수 있는 점도 있었지만 예전만큼 신이 나지도 도전도 되지도 않았다.
고민이 되었다. 이직이라는 단어가 스멀스멀 내 머릿속을 맴돌았다.
아님 더 벼텨볼까?
한국에 있는 선배들한테 나의 고민 이야기를 했다. 3년간은 싫든 좋든 버텨서 그다음 이직을 하는 게 낫다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홍콩에 있는 친구들은 좋은 기회가 있으면 네가 일한 기간이 상관없다고 이야기를 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있었던 기간 중 나보다 늦게 조인을 했는데 벌써 이직한 전 동료들이 있었다. 다들 더 나은 연봉뿐만 아니라 좋은 기회로 가는 거라면 이라는 시선을 보냈다.
시선이 많이 달랐다.
때마침 휴가를 내서 한국으로 가족을 보러 갔고 몇 년 만에 내가 좋아하는 서점으로 향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딱 보이는 책 한 권이 있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7136790
나는 왜 이일을 하는가?
지금 나에게 딱 필요한 책이지 않는가? 책을 구매 후, 근처 커피숍에 들어가서 책을 읽어 나갔다.
"이 책은 기법이나 방법론을 말하기 위한 게 아니다. 나 스스로 일의 의미를 잃고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던 경험을 통해, 그리고 숱한 성취가들이 출발점에서 이탈한 채 고갈된 에너지로 신음하는 것을 지켜본 경험을 통해, 내가 직접 터득한 아주 단순한 진리를 나누기 위한 것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왜?’라는 매우 중요하면서도 간과되어왔던 질문을 시작할 것이다. 그 탐험의 와중에 우리가 격찬해 마지않는, 그리고 그들의 비결을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의 진짜 비결이 무엇인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부디 이 탐험의 끝에서는, 독자 모두 내가 그랬듯 매우 단순하면서도 깊이 있는 통찰을 통해 진정한 삶과 일의 목적의식과 신념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나만의 왜를 찾아서 한국으로 돌아가는 대신 홍콩에 왔었고 간절히 잡을 원했다. 홍콩에 남아있는 방법은 잡을 구해야 한다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에 한국사람 포지션 중 마케팅과 관련된 직종에 이력서를 넣었다.
나름대로 "왜"라고 찾은 거 같았는데.. 다시 그 왜라는 질문을 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조언을 해주었던 사람들이 "일이 좋을 때도 있지만 싫을 때도 있는 건데 버티어봐 그러다 보면 길이 또 보일 수 있어."라고 이야기해 주었다.
맞는 말이기도 했다.
문제는 외부적인 변화로 인해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과 도전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끝없는 고민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