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과 김치의 평행이론

브런치X우리가한식 : 우리家한식 공모전 2020

by 캐런정

아침에 눈을 뜨니 또 그 냄새가 내 코를 찔렀다. “엄마! 청국장 아침에 끊이면 알려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교복에 냄새 다 베인다 말이야!” 교복을 잽싸게 이불 안으로 넣어버렸다.


“맛있구먼 뭐가 냄새난다고 그러는데, 할머니가 만든 거 엄마는 좋기만 한데”

“엄마 내 생각은 안 하나? 버스 타고 갈 때 청국장 냄새가 옷에 베여서 주변에 애들이 무슨 냄새난다고 수군거렸다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내 목소리는 점점 더 양 칼 지고 높아졌다.


여느 사춘기에 소녀들이 그렇듯 다른 학교 남학생들과 함께 타는 버스에 좋은 향수 향기도 아닌 청국장 향수라니 “나 아침 안 먹어”


세수만 대충 하고 이불속에 있던 교복을 허겁지겁 갈아입고 집을 나와 버렸다.

일반적인 엄마라면 아침 굶고 가는 자식들에게 “다음번에는 안 끊일게” ” 그래도 밥은 먹고 가야지”라고 하겠지만 우리 엄마는 청국장 앞에서는 달랐다.


“안 먹으면 네가 배고프지 엄마가 배고프냐! 아빠 동생은 다 좋아하는데”


뒤돌아서면 배고픈 10대 학창 시절, 3남매의 장녀로 자란 나는 편식이란 게 없었다. 엄마가 해준 음식은 다 맛있어를 외치면 나와 동생들은 항상 더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가리는 음식 없이 학교급식도 싹 다 먹었다. 가끔 내가 너무 싹싹 먹나 부끄러워 반찬 몇 개와 밥 한 숟가락 의도적으로 남긴 적 있지만 냄새 때문에 숟가락이 잘 가지 않는 건 외할머니표 청국장뿐이었다.


그렇게 난 모든 청국장이 냄새가 심한 줄 알았다. 어느 날 서울 친구 집에 놀러 갔는데 친구 어머니께서 그날 청국장을 식탁에 내놓으셨다.

“이거 청국장이라고요? 왜 청국장 냄새가 안 나요?” 나는 말이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응?” 친구 엄마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무슨 냄새?”


마트에서 산 청국장에는 엄마가 말하는 구수함 그리고 내가 말하는 꼬릿함이 없었다. 외할머니 청국장은 아파트 현관 1층부터 이게 무슨 냄새지? 하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6층인 우리 집 문 앞에서 누구나 “ 이 집에서 나는 냄새야”라고 알아낼 수 있는 그런 강력한 냄새나는 청국장인데.. 그런데 지금 내 앞에 놓인 마트 표 청국장에서는 같은 집에서 청국장을 끓이는지 알 수 없게끔 특유의 꼬릿 한 냄새가 안 났다.


강력한 외할머니 청국장 냄새 때문에 모녀의 실랑이가 줄어들 만큼 고등학교 졸업 후 나는 세상 속에서 많이 바빴다. 서울로 올라와 대학을 다니고 또 다른 꿈을 위해 중국 북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방학 때 한국에 잠시 돌아갔지만 유학생활에 지친 딸에게 엄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으로 항상 차려 주셨다.

어느덧 세월은 훌쩍 지나 대학을 졸업하고 홍콩에서 첫 직장을 시작했다. 모든 회사원들이 그렇듯 손꼽아 휴가를 기다렸다. 소중한 휴가가 올 때마다 이나라 저나라 여행하기 바빴고 그러면서 한국을 방문하는 횟수가 적어질수록 외할머니의 청국장 냄새는 이제 내 기억 속에서 완전히 희미해졌다.


그리워했던 기억 속의 음식


전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높기로 유명한 홍콩의 한국음식은 고급 음식에 속한다. 인당 5만 원 정도를 써야지만 그나마 잘 차려진 한식 한상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홍콩의 원만한 한식당은 다 먹어보고 단골 한식당이 생겼다.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단골 한식당 음식이 지겹기 시작했다. 집밥을 먹고 싶을 때 집에서 한국음식을 해 먹었다. 다행히 홍콩에는 한국 식료품점이 있다. 편의점 크기 정도이지만 간단하고 기본적인 양념소스들과 가끔 한국에서 수입해오는 식재료들을 살 수가 있다. 한국과 가격을 비교하면 지갑이 여는 게 쉽지 않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야 이러면서 한국 식료품 점을 갈 때면 항상 두 손 가득 장을 보곤 했다.


도마 위에 감자, 양파를 한 줌 어슷 썰어내고 손바닥만 한 두툼한 돼지고기 한입 크기로 썰었다. 그리고 냉장고 깊숙이 보관된 엄마의 김치를 꺼냈다. 비행기로 5일 걸려서 온 김치를 담고 있는 검은 봉지가 부풀어 올라있다. 꼭 검은색 누에고치 같다. 젓가락으로 구멍을 꼭 찍어 뚫고 안에 공기를 빼냈다. 그 순간 온 집안에 쉰 김치 냄새가 퍼졌다.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이 냄새.


엄마 김치로 김치찜을 할 수 있다니! 엄마 해 준 맛 기억하면서 요리를 하니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시큼할 정도로 잘 쉰 김치 냄새를 맡는 순간 그동안의 힘들었던 순간들이 잊혀질만큼 그리웠던 김치다.


다른 방에서 다다닥 아이의 발걸음이 빨라진다. 그리고 코를 잡고 “마미, 이거 무슨 스멜이야?” 만 4살인 한국말이 서툰 첫째는 아무래도 냄새가 이상한지 “스팅기 스팅기” 외치며 다시 부엌 밖으로 뛰쳐나간다. 3살 아이의 발걸음에 보행기를 타고 있던 9개월 둘째도 형아 따라 쫓아 나간다.


“뭐가 이상해? 엄마는 좋은데, 이거 한국에서 온 할머니 김치야!”


보글보글 육수가 담겨있는 무쇠냄비에는 애호박과 양파와 돼지고기 그리고 그위를 살포시 덮은 김치가 있다. 다른 양념이 필요 없다. 그냥 엄마 김치만 있으면 된다.

연애할 때부터 한국을 자주 오고 가고 했던 남편은 이미 이맛을 알고 있는 듯 서툰 한국말로 “ 와우, 장모님 김치 맛있어 It`s good! ”라고 돼지고기에 김치를 돌돌 말아 한아름 입에 넣고 오물오물거리면서 물 한 모금을 같이 마신다.


홍콩에서도 브랜드 김치들이 들어오긴 한다. 엄마의 김치가 똑 떨어진 어느 날 집 앞 근처 마트에서 김치 한 포기를 샀다. 그 김치를 꺼내 각각의 조미료들을 넣어 김치요리를 했지만 내가 원하는 그 맛이 아니었다. 엄마에게 보이스톡을 했다. “ 엄마 벌써 김치 떨어졌는데.. “


“벌써 그렇게 빨리 먹었나? 또 보내줄까?”


아껴먹는다고 했지만 다른 밑반찬들과 장아찌들과 함께 소포로 보내진 김치의 양은 항상 부족했다. 김치 4/1포기를 사용해야 되는 김치찜을 매번 해 먹는 건 사치다. 엄마 아빠는 김치 국물이 새지 않도록 비닐팩에 먼저 담고 다른 비닐팩에 또 넣는다. 그 안에 공기를 빼고 랩으로 돌돌 말아 그리고 마지막으로 질긴 검은 봉지에 담는다. 3 포기면 12번씩 각각 작업을 해야 된다. 잘 쌓여진 김치는 차곡차곡 상자에 넣는다. 그러고서는 상하지 않게 꽝꽝 얼은 아이팩을 넣고 스티로폼 박스를 몇 번이나 테이프로 감는다.

비행기 화물칸에서 던져도 스티로폼 박스가 부서지지 않아야 된다며 아빠는 일반 상자를 잘라 스티로폼 박스 겉면에 단단히 테이프를 붙이신다. 부모님께서는 내가 떠나기 전날 밤부터 떠나는 새벽까지 김치 수송 작전 같은 포장작업을 하신다. 가끔 휴가를 쓰고 한국에 갈 때 들고 올 수 있지만 일에 바빠서 한국에 못 갈 때가 있다. 그럴 때면 검은색 누에고치처럼 빵빵해진 김치는 2중 포장된 박스에 담겨 홍콩으로 보내진다.

비행기 타고 홍콩으로 온 엄마표 반찬들

매번 소포 비와 수작업으로 고생한 김치 포장도 엄마 아빠께 미안하고 고맙다. 매달 받아먹을 수 없기 때문에 엄마는 김장철마다 김치와 김치 양념을 따로 포장을 해서 붙여주신다. 그러면 그걸 가지고 1년 내내 부추김치, 파김치, 오이소박이, 겉절이 등 약간의 내가 다 만들었다고 할 수 없지만 나만의 김치가 완성된다.


엄마표 양념에 무친 나의 김치는 우리 집 단골 메뉴이다.

씻은 김치를 첫째 아이 밥 위에 얹어 주었다. “이제 한국 나이로 5살 되니 김치도 먹어봐야지? 진짜 맛있어 먹어봐” 온갖 미사여구를 사용해도 돌아오는 건 "빨간색 스파이시야"라고 아무리 씻어도 빨간색이 있다며 첫째 아이는 입을 꾹 다문다.


“진짜 안 먹을 거야? 그래! 엄마 혼자 다 먹을 거야” 하얀 밥 위에 김치를 얹어서 내 입으로 쏙 넣어 버렸다. “그래 이 맛이야” 흥얼흥얼 거리면서 먹는 내내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다.


엄마는 알고 있었다. 시골에 홀로 사시는 외할머니가 그해 직접 콩을 심으시고 뙤앗볕에서 허리가 구부러져 가면서 콩이 잘 자라도록 물 주고 잡초를 뽑아가며 콩을 수확한다. 콩을 씻고 한참을 불려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에 콩을 삶는다. 무거운 콩은 소쿠리에 한가득 담겨 안방 가장 따뜻한 곳에 짚을 깔아 발효과정을 거친다.

외할머니는 몇 번이나 이불을 들었다 보면서 잘 발효되고 있는지 살펴보았을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지나야 엄마가 알고 기억하는 그 구수한 청국장의 맛이 나올 것이다. 마지막으로 농사일로 갈라지고 굳은살이 벤 외할머니 자그마한 손으로 가진 양념을 넣은 콩을 동글 넙적하게 빚어 7남매에게 전달될 것이다.


그날 아침, 온 집안에 외할머니 청국장 냄새가 가득했다. 나는 교복을 빨리 들고 서둘러 집 나오기 바빴지만 아마 부엌에서 엄마는 청국장을 끓이면서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셨을 것 같다. 지금 홍콩에서 엄마 김치로 요리할 때 나와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