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나의 마더'를 바라본 시선

완벽한 인간을 향한 절대적 존재의 집착

by 하잎



20200316_113402_HDR.jpg?type=w773 영화 <나의 마더>


- 영화 '나의 마더'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으니 주의해 주시기 바랍니다.


영화 '나의 마더'는 멸종된 인류의 재건을 위해 지하벙커에서 '마더'라고 불리는 로봇에 의해 키워지는 소녀의 성장기를 담은 영화이다. 영화는 로봇에 의해 양육되는 소녀를 통해 결과적으로 기존 인류와 다른 윤리적으로 완벽한 자유의지를 가진 신인류라가 탄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처음 영화의 설정을 접했을 때 인간이 로봇에 의해 양육된다는 뻔한 디스토피아 영화라 판단했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전개는 신선한 몰입을 이끌어냈고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수만 가지 생각들로 머리가 뒤덮였다. 불안하지만 강렬한 눈빛으로 수많은 배아들을 응시하는 '딸'의 마지막 장면이 매우 인상 깊은 영화다.



'나는 엄마다'


영화 '나의 마더'의 영문 제목은 'I am mother'이다. 개인적으로 '아이 엠 마더'로 제목이 지어졌으면 어땠을까 싶었다. 원제목을 직역하면 '나의 마더'보다는 '나는 엄마다' 혹은 '나는 마더다'가 적합한 번역일 것이고 '나의'와 '나는'의 차이는 곧 영화를 바라보는 관점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나의 마더'라는 제목은 자연스럽게 딸의 입장에서 마더를 바라보며 스토리에 집중하게 만든다. 딸의 시선에서 영화가 전개되긴 하지만 영화 제목으로 인해 딸의 입장에서 마더를 진정한 엄마라 볼 수 있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영화를 감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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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나는 엄마다'와 같은 의미로 번역이 되었다면 초반부터 마더의 입장에서 딸을 바라보며 영화를 감상했을 것이다. 마더에게 있어서 딸은 어떠한 존재인지, 딸의 돌발적인 행동들에 대해 어떠한 판단을 내릴지에 대한 질문들이 자연스럽게 생기며 마더에 관한 비밀이 밝혀졌을 때 더욱 큰 충격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이처럼 영화 '나의 마더'는 마더, 딸 중 누구의 입장에서 바라보냐에 따라 같은 장면이어도 상황에 따라 다양한 질문들이 떠오르며 끊임없이 생각을 하게 만든다. 완벽한 로봇 마더에 의해서 양육되는 인간 딸이 과연 마더의 교육방식을 바탕으로 완벽한 인간이 되는 것이 가능한 것인가에 대한 무거운 질문이 떠오르면서 말이다.



선과 악의 줄타기


절대 선, 절대 악의 존재는 영화를 순탄하게 감상하는데 일조한다. 선과 악이 명확하기 때문에 관객의 예상대로 선이 악을 굴복시키는 뻔한 결말을 예상하고 영화를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선인 줄 알았던 인물이 악이었다면 충격적인 반전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기억에 남는 영화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선과 악이 지속적으로 뒤바뀌는 전개라면 관객은 불편함을 가장한 흥미를 느끼면서 더욱 영화에 몰입을 하게 만든다.


영화 '나의 마더'는 스토리가 전개될수록 선과 악은 불분명해진다. 딸을 키워준 마더는 다른 딸에게는 살인 로봇이었다.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베푸는 선, 누군가에게는 끔찍한 악이었던 마더는 '마더(Mother)'가 아니라 '머더(Murder)'라는 유쾌하지 않은 무거운 언어유희가 나올 정도로 선 또는 악으로 정의할 수 없는 존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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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여자'는 딸에게 바깥세상의 진실을 알려주고 인간 사회로 인도해주려는 선적인 모습을 보였다. 반면에 딸을 흉기로 위협하며 탈출을 위한 수단으로 여겼고 '딸'에게 말한 바깥세상이 결국 거짓이었던 등의 악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녀 또한 악으로 가득 찬 광산에서 도망친 악에 의해 희생된 인간이라 볼 수 있다.


결국 선과 악이란 이분법적인 관점에서 각각의 존재들을 판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위이다. 각 존재들은 서로를 자신들의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여길뿐이었다. 각자에게 각자는 선이면서 악이었던 것이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사람을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대하라고 했다. 사람을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 대하면 결국 인간성을 파괴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영화의 결말을 보면 마더는 '낯선 여자'를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하는 것이 아닌 '딸'이 완벽한 인간으로 인정받기 위한 수단으로 대했다. '마더'의 목적은 '딸'이 새로운 인류의 재건을 책임질 자격을 갖추는 것이었고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낯선 여자'의 인간성을 산산이 파괴해 버렸다.


마더조차 딸을 하나의 목적으로 보지 않고 인류 재건이라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약 딸을 하나의 소중한 인간이라고 생각을 한다면 이전에 양육하던 APX 02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마더가 딸을 키우는 것은 인간의 모성애를 흉내 낸 프로그램에 불가하며 마더에게 딸은 APX 02 이후의 APX 03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것이다. 즉 인류 재건을 이끌 인간을 양육한다는 자신의 목적을 완수하기 위해 딸은 6만여 개의 수단 중 3번째 수단인 것이다.



'딸'은 이름이 없다


딸은 이름이 없다. '낯선 여자'도 이름이 없다. 마더만이 드로이드나 도저로 불리지 않고 이름이 있다. 이름은 다른 것과 구별하기 위해 사물, 단체, 현상 따위에 붙여서 부르는 말이다. 즉 이름은 객체에 차별성을 부여하며 정체성을 시각적, 청각적으로 표현하는 하나의 상징이다. 우리나라는 작명소에 가서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이름을 매우 중요시 여긴다. 이름에 담긴 힘과 중요성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작성하면서도 소녀를 표현하는 방법이 딸 밖에 없는 것이 어색했다. 딸의 배아 시절 명명된 APX 03으로 지칭할 수 있지만 이것은 인간성을 파괴한 표현이기 때문에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즉 소녀를 지칭하는 법은 딸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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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딸이 처한 상황에서 생각을 해보면 이름이 없는 것을 정체성이 없다고 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딸은 신인류의 재건을 이끌 상징적인 인간이기 때문이다. 딸은 앞으로 자라날 동생과 후손들에게 딸이 아닌 '마더' 즉 '엄마'로 불릴 것이다. 신인류의 시작을 알리며 후손들을 품을 '엄마'라는 딸만이 가질 수 있는 고유의 정체성을 확립할 것이다.



완벽한 인간을 '선택'하는 절대적 존재


딸은 마더로부터 선택을 당했다. 이와 반대로 딸의 동생은 딸로부터 선택을 받았다. 선택을 당한 것과 받은 것은 매우 다르다. 인간이 아닌 존재에 의해 선택을 당한 딸과 달리 딸의 동생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바탕으로 한 인류 재건의 첫발을 내디딘 위대한 선택을 받았다. 따라서 새로운 인류의 시작은 딸이 아닌 동생이라 판단된다.


딸은 마더를 향해 방아쇠를 당기면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고 신인류 시작을 알렸다. 자신이 더 이상 필요 없냐는 마더의 질문에 고민의 여지없이 대답을 쏜 딸은 마더가 그토록 원하던 완벽한 인간에 도달하였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마더는 절대적 존재처럼 어디에든 존재한다. 딸을 기른 마더의 본채는 기능을 상실했지만 도처에 깔린 드로이드들은 모두 마더다. 즉 언제든지 마더의 판단하에 딸의 신인류도 멸종당할 수 있다는 뜻이다. 딸의 자유의지로 당긴 방아쇠가 조준한 곳이 허공일 수도 있다는 허탈한 기분이 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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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이게도 마더 또한 누군가의 선택에 의해 탄생이 되었다. 마더를 설계한 이름 모를 인간은 오만하게도 자신만의 '완벽한 인간을 양육하는 방법'을 정립했고 이를 바탕으로 마더를 제작했을 것이다. 기존의 인류와 다른 윤리적으로 완벽한 신인류가 사는 유토피아를 이룩할 수 있다는 허황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신인류를 시작할 인간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마더가 저지를 끔찍한 일들은 결국 마더를 탄생시킨 인간의 생각과 선택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완벽한 인간이라는 허황된 망상과 신념으로 탄생한 마더는 인간을 성공한 인간과 실패한 인간으로 이분법화 시켰고 기준에 충족되지 못한 인간의 인간성을 처참하게 파괴했다. 마더를 제작한 인간은 자신이 신인류를 재건할 신적인 존재라 생각했겠지만 결과적으로 인류 존속의 가장 큰 위협을 창조해냈다고 볼 수 있다.


마더는 결코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육체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마더의 생각과 선택에 의문을 품지 않도록 세뇌를 당했다는 점에서 정신적으로도 나약하다. 과연 마더를 제작한 인간이 영화 속 상황을 본다면 어떤 감정을 느낄까?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깨달을까? 절대적인 존재에 의한 인간의 아우성을 예상이라도 했을까?



마치며


과연 지하벙커가 영화 속 배경 한 곳일까? 딸은 인류 재건은 성공할 수 있을까? 아니면 마더에 의해 재건과 멸종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상황이 벌어질 것인가? 이외에도 수많은 질문들이 영화가 끝난 후에도 뇌를 뒤척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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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과 낯선 여자가 드로이드를 피해 자신들의 몸을 숨기며 생존을 위해 뛰어다닌 옥수수밭은 신인류의 식량을 위해 마더가 키운 것이다. 신인류의 양식조차 마더에 의해 가꾸어지고 있는 디스토피아적 상황에서 인간들은 과연 자유의지를 가지고 자신들의 운명을 개척해나갈 수 있을까? 아니면 또 다른 APX 시리즈가 무책 색으로 가득한 지하벙커에서 마더에 의해 양육당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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