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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잎 Nov 25. 2023

복잡한 감정을 간결하게, 세르주 블로크展 - KISS

복잡한 감정을 가장 단순한 선으로 표현한 예술가

Everybody is creative, not only artists. I think that creativity is everywhere.
예술가뿐만 아니라 누구나 창의적인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창조성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 세르주 블로크(Serge Bloch)


아트인사이트의 초대권으로 프랑스를 대표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인 세르즈 블루크(Serge Bloch)의 '키스'(KISS) 전시회를 다녀왔다. 파리에서 보내온 편지를 시작으로 작가의 성장 과정과 사랑하는 가족 이야기로 전시의 시작을 알리며 전체적인 작품의 근간이 되는 뿌리와 정체성을 엿볼 수 있었다. 그는 어릴 적과 비교했을 때 본인의 그림실력에 큰 차이가 없다고 한다. 겸손한 표현처럼 보이겠지만 그의 작품들에는 아이들만이 표현할 수 있는 순수함이 담겨있다. 피카소가 아이처럼 그리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는 말이 생각나며 세르즈 불루크가 얼마나 자유롭고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는지 알 수 있었다.

“음, 어렵네요. 자유롭게 산책하듯이 보셨으면 합니다. 가벼운 주제부터 무거운 주제까지 또 사랑, 인생, 전쟁 등 모든 이야기가 있죠. 이게 인생이잖아요.”

 

뉴스뮤지엄 연희의 공간을 최대한으로 활용한 전시 구성이 인상 깊었다. 총 3개의 층을 옮겨 다니며 자연스럽게 생각을 환기할 수 있었고 이동하는 과정에서도 그의 작품들을 볼 수 있어 하나로 연결이 된 느낌을 주었다. 생각보다 많은 작품들이 있었으며 특히 세르주 블로크 작품의 특징인 ‘간결한 선’을 극대화시킨 영상을 활용한 작품이 신선했다. 이외에도 다양한 포토존과 아기자기한 소품 등을 구석마다 배치해 작가의 일방적인 소통이 아닌 작가와 관람객 간의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게 구성해서 지루하지 않고 흥미로웠다.


강한 울림을 주는 간결한 선의 집합체


세르주 블루크의 작품들은 간결한 선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들이 모여 복잡한 감정과 특별한 이야기를 명쾌하게 전달하며 관람객들은 다양한 감정과 상황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선에 강한 울림이 있는 이유는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사회적 메시지를 비유적이고 재치 있게 전달하기 때문이다. 가볍게 작품에 몰입한 관람객들은 이내 작품 이면에 있는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며 사뭇 진지한 자세로 전시를 감상하게 된다.

예술은 사회 문제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유도하는 힘이 있다. 특히 예술가들은 민감한 주제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시하고 비유와 재치를 활용하여 사회적 불평등, 인권, 전쟁 문제 등에 대한 자유로운 대화의 장을 열어준다.

세르주 블로크 또한 특유의 재치를 활용하여 참혹한 전쟁 문제를 다뤘다. 전시회에서 볼 수 있는 그의 < 적 > 작품은 참호 속에 있는 병사의 시선으로 전쟁의 허구성을 짧은 글과 그림으로 다룬 작품이다. 실제로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끼어 있어 한 세기 동안 4번이나 국적이 바뀐 그의 고향 이야기가 담겨있어 더욱 울림을 주며 간결한 구성을 통해 관람객들로 하여금 전쟁에 대한 무거운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일상적사회적 주제를 살리는 유머와 상상력     


세르주 블루크는 보편적인 주제를 특별한 시각에서 다루어 관람객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공한다. 그의 작품은 유머와 상상력이 결합된 독특한 캐릭터와 상황들을 다룬다. 그의 작품은 연령대를 초월하여 어린이와 어른 모두에게 다가가는 것이 특징으로, 작품을 관람하는 동안 편안한 즐거움과 순수한 웃음을 준다.

특히 각 나라의 문화를 담은 오브제를 바탕으로 작업물을 제작하여 해당 국가의 관람객들에게 소소한 재미를 준다. 이번 한국 전시에도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빗자루, 양푼, 붓, 호미 등을 활용한 콜라주 작품을 선보이며 그가 어느 나라를 가든 치르는 ‘의식’ 행위를 엿볼 수 있었다.

    

특히 3층 전시장을 가면 입구에 작년 롤드컵과 월드컵을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희망의 문구로 각인된 ‘중꺾마’가 적혀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가 각 나라의 관람객들과 진실한 소통을 원하는다는 점을 알 수 있었으며 관람객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기 위한 사소해 보이지만 효과만점의 재치가 돋보였다.


<<나는 기다립니다.(2005)>>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을 꼽자면 전시 초입부부터 살펴볼 수 있는 <<나는 기다립니다.(2005>>’이다. 세르주 블로크의 울림을 주는 선이 가장 돋보이는 작품이다. 빨간색 실을 활용해 간결하고, 강렬하고, 아름답게 인간의 감정과 인생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시각각 다양한 용도로 변하는 빨간색 실을 통해 인간 간의 만남과 다른 삶과의 끝없는 연결을 표현했다. 삽화가 아닌 영상을 통해 볼 수 있어 빨간색 실을 통한 연결성이 더욱 와닿는다. 특히 마지막 장면이 많은 울림을 주었는데 '끝'이라는 단어를 '끈'으로 바꿈으로써 또 다른 시작을 자연스럽게 표현한 점이 좋았다. 끝은 곧 죽음을 연상하게 한다. 하지만 해당 영상에서는 끝이 아닌 끈으로 표현함으로써 죽음에 대한 부정적인 의미보다는 다시 돌아간다는, 또 다른 시작으로 표현하여 죽음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다.


마르지 않는 아이 같은 창의력


세르주 블루크의 마르지 않는 아이 같은 창의력을 통해 그는 다양한 주제와 스토리를 다루면서도 번뜩이는 시각을 끊임없이 보여주는 작품들을 만든다. 어린이와 어른, 언어와 문화를 넘나드는 공통적인 감정과 경험을 간결하면서도 풍부한 디테일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여러 해석의 여지를 주며, 그림 속에서 새로운 이야기와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반복적인 일상 속에서 생기와 순수함을 잃어가던 시기에 세르주 블로크의 전시를 통해 잠시나마 어렸을 적 읽었던 동화책 삽화를 보며 행복을 느꼈던, 그 당시로 떠나보게 되는 전시였다.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7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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