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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분 나쁠 권리

감정을 정확히 인지하는 것

by 경조울

책에도 한 번 적었지만, 나는 스스로 느끼는 감정을 정확하게 인지하기가 좀 어렵다. 특히 부정적인 감정을 느낄 때 혼란스럽다.


누군가 무례한 말을 했을 때, 듣자마자 기분이 상했음에도 반사적으로 생각한다.

'내가 예민한 건 아닐까?'

'다른 사람들도 저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상할까?'

평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혼란은 가중된다.

'상대는 나를 배려해서 저런 말을 한 게 아닐까?'

'나는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지?'

참 쓸데없이 예의가 바르다. 상대가 내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는데, 정작 나는 상대의 말에 기분이 상한 티를 내면 상대방이 언짢을까 걱정하고 있다니.


상담을 받을 때, 최근의 일상을 털어놓으며 나는 물었다.

"제가 그런 상황에서 기분이 나빠도 될까요?"

'기분 나쁠 권리'에 대해 허가를 구하며, 나는 그 혹은 그녀가 '오, 정말 기분 나빴겠어요!' 혹은 '그 사람 이상한 사람이네요!'라고 맞장구를 쳐주기를 바라지만, 대신 상담사는 늘 이렇게 말한다.

"조울님이 느끼는 감정은 오롯이 조울님의 것이에요. 내가 기분이 나빴으면 기분이 나쁜 거에요. 굳이 해명하지 않아도 되요. 그냥 감정을 그대로 인정해요."


그렇다. 타인의 말에 기분이 상했을 때, 바로 반박할 수도 있고, 사과를 요구할 수도 있겠으나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아서, 혹은 언쟁을 이어가고 싶지 않아서, 혹은 소화할 시간이 필요해서 아무런 액션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인의 말을 듣자마자 '어차피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을 테니 기분도 상하면 안돼'라고 생각하는 건 정신건강에 썩 좋은 방법이 아닌데, 너무 오랜기간 그런 식으로 감정을 부정하거나 회피하는 습관이 들어서 솔직하게 내가 느끼는 감정을 바라보는 게 참 어렵다.


이것도 연습을 해야지. 삶은 참 끝없는 학습의 연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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