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비서. 시장님을 밀착 수행해야 하기에 가지고 다닐 것도 많습니다. 가야 할 곳도 많아서 매번 거추장스러운 가방을 들고 다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비서의 정장 주머니에는 이것저것 챙겨야 할 물건이 많았습니다.
그렇다고 배불뚝이 마냥 주머니가 뚱뚱해질 정도로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정장을 입은 자의 옷맵시에 대한 자존심이라고 할까요.
오늘은 ‘유비무환’ 정신으로 무장(?)한 수행비서의 소지품에 대해 이야기하려 합니다.
정장 왼쪽 가슴 주머니엔 제일 많이 꺼내 쓰는 물건을 넣었습니다. 바로 수첩과 펜입니다.
수첩은 스마트폰 보다 살짝 큰 포켓용 수첩을 들고 다녔습니다. 휴대성이 제일 중요했기 때문이죠. 주머니에서 빠르게 꺼내서 지시사항이나 메모할 것들을 기록했습니다. 손에 휴대할 때도 많아서 업무수첩 같이 두껍고 무거운 것은 저에게 맞지 않았습니다.
펜은 제가 사용하는 펜과 시장님이 애용하시는 펜 두 가지를 함께 가지고 다녔습니다. 제가 모시던 시장님은 글씨가 부드럽게 써지는 파란색 수성펜을 쓰셨습니다. 간혹 회의장에 필기구가 준비되어 있지 않을 때가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제가 소지하고 있던 시장님 펜을 책상에 올려드렸습니다.
포켓용 수첩 사이에는 두 가지 자료를 항상 꽂고 다녔습니다.
하나는 일정표입니다. 당일 일정표와 주간 일정표, 그리고 한 달 일정표까지 출력하여 수시로 봤습니다. 일정이 워낙 많다 보니 스마트폰 캘린더 앱을 이용하기가 오히려 번거로웠죠. 바로 펼쳐서 일정을 확인할 수 있는 종이 일정표가 편했습니다.
두 번째는 그날의 행사자료입니다. ‘접지’라고 불렀습니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은 형태라 그렇게 불렀죠. 공무원이 만들어 쓰는 팸플릿으로 이해하면 될 것입니다. 행사를 주관하는 부서에서 비서실로 자료를 보내주면, 비서실에서 검수하고 최종 수정했습니다.
A4용지를 반으로 접으면 4개 면이 나오는 데, 이 접지에 행사개요, 식순, 참석자, 인사말씀 등 한 행사의 모든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식순 정보를 확인하면서 언제 시장님이 단상으로 올라가 인사말씀을 하시는지, 언제쯤 행사가 끝나는지 체크를 하는 것이죠. 행사가 많은 날은 여러 개의 접지를 한꺼번에 끼고 다니니, 그런 날엔 수첩이 뚱뚱해진답니다.
수첩과 펜, 일정표와 접지. 사실 이 네 가지가 수행비서의 핵심 소지품입니다. 그날의 일정을 원활히 소화할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들인 것이죠.
상사를 모시는 직장인을 위해 한 가지 팁을 드린다면, 포켓용 수첩에 포스트잇을 붙여서 갖고 다니면 매우 유용합니다. 외부에서 시장님께서 지시하신 정보를 보고 드릴 때나, 긴급하게 안내사항을 전달해 드릴 때 포스트잇을 요긴하게 사용했습니다.
그 밖에 예비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 여럿 있습니다.
정장 오른쪽 가슴 주머니에는 명함집을 넣었습니다. 제 명함집과 시장님 명함집 2개를 챙겼습니다. 행사장에 가시면 처음 만나시는 분들이 많아서 행사장 도착 전 미리 명함집을 건네 드리곤 했습니다.
그 밖에 마스크, 손수건, 1회용 물티슈, 구강청결제를 갖고 다녔습니다. 필요한 상황이 생길 때를 위해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이죠.
간담회나 정례회의가 있으면, 시장님이 PPT 자료를 활용해 참석자에게 현안사업을 설명하실 때가 잦았습니다. 이때는 자료가 담긴 예비용 USB와 포인터까지 따로 챙겼습니다. 사업현장 시찰을 나갈 때는 안테나 지시봉도 주머니에 넣었죠.
이렇게 수행비서는 다양한 물건을 챙겨 다녔습니다. 일정을 잘 소화하기 위한 일정표와 행사자료도 잘 챙겨야 했지만,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한 예비물품도 중요했습니다. 마스크 끈이 끊어졌을 때, 옷에 무언가 묻었을 때, PPT자료에 오류가 생겼을 때, 명함이 다 떨어졌을 때 등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죠.
비서의 주머니에 '유비무환'의 마음자세도 가득 담아 두어야 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