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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냄 Dec 14. 2022

시장님 결재 시간 엿보기

“이걸 검토한 거라고 가져왔어?”

    

직장인 에피소드를 다룬 드라마를 보면 꼭 한 번씩은 나오는 장면. 바로 상사가 부하직원의 결재판을 내던지는 장면입니다. 결재판으로 머리를 때리기도 하고, 상사가 허공으로 내던진 결재 서류가 벚꽃처럼 흩날리기도 하죠.

      

직장인이라면 결재는 직장생활의 일부입니다. 국어사전에서는 결재를 이렇게 정의합니다. ‘결정할 권한이 있는 상관이 부하가 제출한 안건을 검토하여 허가하거나 승인함’.

      

딱딱하기만 한 국어사전의 정의처럼, 현실에서도 딱딱하고 부담스럽기만 한 결재! 과연 시청에서 시장의 결재시간은 어떤 모습일까요?  

    

중요한 사실부터 하나 말씀드리면, 제가 모시던 시장님은 단 한 번도 결재판을 던진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다행이죠? 훌륭한 성품의 시장님을 모신 것도 큰 행운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시청의 최고 의사결정권자는 시장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결재를 시장님이 다할까요? 그건 아닙니다. 예를 들어 00과 9급 직원의 휴가 신청 결재를 시장이 하는 건 말이 안 되겠죠?


그래서 전결규정이라는 게 있어서 업무의 중요도에 따라 누가 결정 권한을 가질 것인지 미리 정해둡니다. 어떤 것은 과장님 선에서, 어떤 것은 국장님 선에서 최종 결재를 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전결규정을 두어도 시장님이 직접 결정해야 할 사항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장님 결재시간을 매일 30분, 길게는 여유 있게 1시간 배정해서 시청 업무게시판에 공지를 합니다. 출장, 행사들로 외부 일정이 많다 보니 아예 결재시간을 정해두는 것이죠.


간혹 일정이 너무 바빠서 결재시간이 없는 날도 있는데, 그러면 다음 결재 날은 비서실이 아주 북적입니다. 심지어 시간이 모자라서 결재를 못 받고 내일을 기약하며 돌아가시는 분도 계시답니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지만, 결재는 선착순입니다. 그래서 일찍 오시는 분들은 결재시간 30분 전에 미리 와서 대기하고 계십니다. 평소에 손님을 맞는 응접실이 결재시간에는 대기 공간이 되는데, 응접실에 한분 씩 오실 때마다 누가 마지막 분이신지를 여쭈며 자신이 몇 번째인지 확인을 하신답니다.  

      

결재 시간이 되면 한 분씩 시장님 집무실로 들어가 결재를 받습니다. TV에서 보던 까만 결재판을 들고 가서 말이죠. ‘주무관 - 팀장 - 과장 - 국장 - 부시장’까지 서명한 결재서류에 마지막 남은 시장님의 서명을 받고 나오는 것입니다.

      

보통 업무 담당 팀장님이나 과장님이 제일 많이 오시는데, 간혹 보드판을 들고 용역회사 직원분들과 같이 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공공 건축물이나 공원, 교각 같은 공사 진행 건에 대한 설계 방향이나 공사 진행 이슈를 보고 드리러 오는 거죠. 이럴 땐 시간이 꽤 오래 걸립니다. 5분이면 된다는 과장님의 말은 금세 거짓말이 되지요. 길게는 30분 넘게 걸리는 경우도 있답니다.

       

보통 한 분이 10분 정도를 잡아먹어도 눈총 아닌 눈총을 받게 되죠. 그래서 오래 걸릴 것 같은 건이면 본인이 가장 마지막에 들어가겠다며 순서를 양보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또 시장님께 좋지 않은 소식을 보고하러 오신 경우에도 다른 분들의 평탄한(?) 결재를 위해 순서를 양보하시기도 합니다.

     

수많은 결재를 지켜보며 느낀 점은 시장의 책임이 막중하다는 것입니다. 한 도시의 경제, 문화, 복지, 교통, 건설, 보건, 농업 등 모든 분야를 아울러서 최종 책임을 져야 하니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울까요? 물론 담당 부서장들이 있지만, 큰 틀에서 도시를 균형 있게 이끌어갈, 올바른 비전을 갖춘 리더를 잘 뽑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마지막으로, 경험으로 체험한 우스갯소리 하나 남깁니다.


장사꾼의 ‘남는 거 하나도 없어요’라는 새빨간 거짓말에 하나 더 추가할 거짓말.      


결재 앞 순서 과장님의 ‘결재 1분이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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