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아니라 사람을 기대했던 마음의 오해
요즘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회사 사람들에게서 상처를 받을까.'
곰곰이 따져보면 업무 때문은 아니다. 일은 그저 차갑게 처리하면 그만이다. 보고, 수치, 결과. 그것들은 철저히 계산 가능한 영역에 속해 있다.
문제는 항상 계산되지 않는 것들에서 발생한다.
같이 밥을 먹다가 다른 사람들끼리만 아는 이야기를 나만 모른 채 듣게 되는 순간.
머쓱한 표정으로 “혹시 같이 가실래요?”라며 뒤늦게 건네지는 수습 같은 초대.
참 사소해 보이지만, 이런 순간들은 이상하게도 마음에 오래 남는다. 애초에 내가 그들의 '초대 대상'이 아니었던 것만 같아서.
기대가 머물렀던 자리
나는 사람이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한다. 관계란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아니라, 일관된 태도로 유지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인지 상대의 태도가 미묘하게 달라지는 것을 감지하는 순간, 마음이 먼저 움츠러든다.
"아, 나는 우선순위가 아니었구나."
이 문장은 밖으로 크게 소리 내어 말해지지 않지만, 속으로 깊게 가라앉아 오래도록 머문다.
회사라는 공간은 애초에 철저한 이해관계로 묶인 곳일지도 모른다. 누군가는 분위기를 적당히 관리하고, 누군가는 전략적으로 관계를 넓히며, 누군가는 자신의 이미지를 포장한다.
나는 그 삭막한 틈바구니 속에서 자꾸만 ‘진짜’를 찾으려 했던 것 같다.
힘들 때 곁에 있어주는 사람.
일관된 태도를 보여주는 사람.
내 이야기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주는 사람.
그런 밀도 높은 관계를 회사에서 기대했던 것은, 어쩌면 오롯이 내 몫의 오해였을지도 모른다.
상처는 분노보다 조용하다
상처는 분노보다 훨씬 조용하게 찾아온다.
겉으로는 “괜찮아요,” “다들 편하게 만나세요”라고 웃으며 말하지만, 속에서는 전혀 다른 문장들이 부유한다.
'왜 나는 항상 듣기만 하는 사람일까.'
'왜 나는 매번 내 상황을 설명해야 할까.'
그 서운하고 씁쓸한 감정은 겉으로 티 나지 않게, 하지만 아주 오래 남는다.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가 사람이 싫어진 게 아니라, 그저 내 기대가 지쳐버린 것은 아닐까 하고.
얕은 관계는 편하지만 공허하고, 깊은 관계는 드물지만 귀하다.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나는 자꾸만 마음의 균형을 잃곤 했다.
기대는 낮추되, 태도는 유지하는 것
그래서 이번에는 조금 다르게 해보려 한다.
굳이 따뜻해지려 무리하게 애쓰지 않고, 그렇다고 일부러 차가워지지도 않는 것.
상대에 대한 기대는 한 칸 낮추되, 나만의 다정한 태도는 유지하는 것.
회사에서는 조금 더 기능적으로 존재하고, 진짜 소중한 관계는 회사 밖에서 채워가는 것이다.
우리는 왜 회사에서 상처를 받을까.
아마도 일이 아니라 '사람'을 기대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보낸 기대가 항상 같은 방향으로 돌아오지는 않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깊은 관계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이제는 그 소중한 관계를 기대하는 장소를 조금 명확하게 구분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