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멈추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by yoha

어릴 때부터 제게
‘멈출 수 있다’는 선택지는
진지한 고려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어머니는 암 투병 중이셨고,
아버지는 파킨슨병을 앓고 계셨습니다.
집 안의 공기는 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었고,
어린 여동생은 저보다 더 불안한 눈으로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한 가지 역할을 맡았습니다.
멈추지 않는 사람.

책임은 질문 없이 시작되었다

누가 제게 “네가 가장이야”라고 말한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는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다른 선택지를 고민하기 전에 이미 달리고 있었고,
불안을 느끼기 전에 당장 해야 할 일을 찾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늘 ‘괜찮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끊임없이 계산했습니다.

이 정도면 버틸 수 있을지,
더 치열하게 움직여야 하는 건 아닌지,
혹시 내가 흔들리면 모두가 무너지는 건 아닌지.

내 발을 보지 못했던 시간

돌이켜보면 그때의 저는
제 발밑을 거의 보지 않고 달렸던 것 같습니다.

물집이 잡혔는지, 피가 났는지,
혹은 속도가 너무 가파른 건 아닌지.
확인할 여유도 없었고, 확인해서도 안 된다고 느꼈습니다.
아프다는 자각은 곧 멈추고 싶다는 투정처럼 들렸으니까요.

그래서 저는
아파도 괜찮은 척, 계속 달리는 방법만 배웠습니다.

멈추는 건 배신처럼 느껴졌다

휴일에도 왠지 모르게 불안했던 이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쉬는 날이 유독 불편했던 이유.
아마 이 죄책감에서부터 시작됐을지도 모릅니다.

내가 멈추면 누군가에게 미안해질 것 같았고,
숨을 고르는 건 곧 책임을 내려놓는 일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제게 ‘생산성’이라는 단어는 단순한 효율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저를 지탱하는 안전장치에 가까웠습니다.
계속 움직이고 있어야만, 비로소 안심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제는 조금 다르게 보입니다

최근에서야 그 단단했던 생각이 조금씩 느슨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잠시 멈춘다고 해서 세상이 당장 무너지지는 않는다는 것.
제가 지쳐 잠시 주저앉는다고 해서 제 책임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라는 것.

여전히 제 몫의 책임은 남아있지만,
그 무거운 짐을 온전히 저 혼자만 짊어져야 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참 늦게도 깨달았습니다.

마치며

저는 참 오랫동안
스스로를 ‘멈추면 안 되는 사람’이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래서 쉬지 않고 달렸고, 악착같이 버텼으며,
그 시간 동안 정작 저 자신은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지금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제는 가끔씩, 달리는 것을 멈추고 제 발을 내려다보는 연습을 합니다.

속도를 줄이는 것이 결코 도망치는 게 아니라,
다시 나아가기 위한 ‘회복’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야 조금씩 배워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