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타에 가기 전에 가볍게 읽기 좋을 글
남미 여행의 시작점, 보고타. 무시한 소문이 도사라는 콜롬비아 여행이 시작되었다. 보고타에서도 '카우치서핑'을 이용했다. 흔히 카우치서핑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위험한 나라일수록 되려 카우치서핑에 의존했다. 호스트가 어떤 사람일지는 순전히 운에 달린 일이지만, 어찌 됐건 아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고타에서 만난 호스트 세자르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콜롬비아가 처음이라는 나에게 애국심 가득한 말투로 모국을 자랑해준 덕분에 콜롬비아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너도 곧 콜롬비아를 사랑하게 될 거야"라는 말과 함께 그가 틀어준 티비 화면은 '나르코스'. 전 세계를 뒤흔들던 콜롬비아 마약왕 '파블로 에스코바르'에 대한 드라마다. 미국 드라마지만 영어 대사보다 스페인어 대사가 더 많았던 나르코스는 실제 사진과 영상, 당시 방영되었던 뉴스들이 교차 편집되어 현실감 있게 연출되었다. 자극적인 내용과 빠른 전개로 몰입감 있는 드라마였지만, '나르코스'를 콜롬비아에서, 그것도 콜롬비아에 도착하자마자 본 건 분명 실수였다. '나르코스'는 콜롬비아들에겐 지난 전쟁영화 같은 것으로, 그의 세상이 끝났음에 대한 안도와 다시 찾은 평화에 대한 감사함을 느끼게 했다. 하지만 나에겐 드라마에서 보여진 위험한 일들이 최근까지도 흔했다는 사실 자체가 무서웠다. 세자르는 '지금은 파블로가 죽었고, 예전만큼 위험하지 않다'라는 말로 나를 안심시켰지만, 이미 늦었다.
남미 모든 도시의 중심은 '광장'이다. 광장은 사각형으로, 대통령궁(지방도시는 시청)과 대성당, 관광서들이 사면을 둘러싸고 있다. 광장과 가까운 곳엔 지위가 높은 귀족들이 살았고, 주거지가 광장에서 멀어질수록 계급도 낮아졌다. 이는 전형적인 유럽 중세도시의 특징으로, 남미의 모든 구시가지들은 여전히 이와 같은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남미의 광장에는 독립영웅의 이름이 붙여진다. 때문에 남미엔 수많은 '볼리바르 광장'이 있는데, 보고타의 볼리바르 광장은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시몬 볼리바르는 콜롬비아를 비롯한 남미 6개국을 독립시켜 ‘남미의 해방자’로 불린다) 볼리바르 광장은 콜롬비아 내에서도 가장 크고 중요한 광장으로, 대통령궁, 대성당, 의회, 대법원, 시청으로 둘러싸여 있다. 드넓은 광장은 수많은 관광객으로 붐볐고, 자영업 비율이 세계 1위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들을 상대로 하는 상인들도 많았다. 상인들은 다양한 먹거리와 투어상품을 판매했고, 라마를 끌고 다니며 사진을 찍어주기도 했다. 그리고 이곳엔 사람보다 더 많은 비둘기도 있다. 비둘기가 어찌나 많은지 정식 명칭보다 '비둘기 광장'으로 더 잘 불려진다. 비둘기로 뒤덮인 광장과 그 가운데 우뚝 선 볼리바르 동상을 뒤덮은 비둘기 똥을 보고 있자면, 확실히 '비둘기 광장'이란 별명이 더 어울렸다.
광장을 중심으로 근방엔 의회, 법원, 극장 등 주요 건물들이 즐비했다. 오랜 건물들과 낡은 벽을 장식하는 화려한 색감의 꽃과 그라피티로 걸음이 즐거웠다. 하지만 광장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바로 빈민촌으로 이어지며 분위기는 순식간에 변한다. 집을 나서기 전 세자르는 구시가지를 다녀오겠다는 나에게 '몇 번 거리 이후로는 절대 가지 말라'며 구체적으로 당부했다. 하지만 처음 와본 낯선 곳에서 그 거리가 어디쯤인지는 짐작할 수 없었고, 발길 가는 대로 걷다가 광장을 벗어난 지 5분도 되지 않아 일이 터졌다. 내 뒤로 걷던 중학생쯤 돼 보이는 소년이 내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쓱 빼서는 아무렇지 않게 앞지르는 게 아닌가! 당시 '세상에서 가장 작고 가벼운 미러리스'라는 슬로건을 건 카메라의 무게는 고작 300g으로, 의식하고 있지 않았으면 눈치조차 못 챘을 것이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그의 목덜미를 잡았다. 하지만 날 뿌리치는 힘이 어찌나 억센지 아무리 어려도 남자는 내가 힘으로 감당할 수 없겠구나, 하는 걸 그때 처음 실감했다. 다행히도 우연히 자나 가던 행인이 도와준 덕에 무사히 카메라를 되찾을 수 있었지만, 여행 첫날부터 이런 일이 생겼으니 제대로 긴장했다.
여행 중엔 어떤 일도 생길 수 있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작스레 닥친다. 나쁜 일을 당하면, 한동안은 예민해져 호의로 다가와준 사람들에게도 적대적으로 대하게 된다. 하지만 그들이 좋은 사람인 걸 알게 되면 죄책감과 함께 안도감이 들면서 다시 서서히 긴장이 풀린다. 하지만 그럴때 다시 나쁜 사람이 나타나고, 그럼 또 무방비 상태로 당하게 된다. 이럴 땐 괜히 긴장을 풀리게 만든 좋은 사람들마저도 괜히 원망스러워진다. 여행은 이 과정의 무한반복이다. 그래서 적대적이지도, 긴장이 풀리지도 않게, 평정심을 지키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그건 여전히 너무 어려운 일이다.
광장으로 이어진 메인 골목에는 진귀한 광경이 펼쳐졌다. 기니피그 달리기 시합으로 도박을 하는 사람들부터, 다양한 분장을 하고 아이들을 유인하는 사람들,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오래된 골동품까지, 다양한 볼거리가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하지만 쳐다보기도 민망할 정도로 불편한 풍경도 있었는데, 그건 전통의상을 입고 춤을 추는 원주민 가족이었다. 갓 태어난 듯한 아기를 업고 춤을 추는 엄마와, 엄마를 따라 춤을 추는 아이들, 그리고 그 옆에 엉금엉금 기어 다니는 또 다른 아기. 그들은 하루 종일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춤을 췄다. 흥겨운 전통가락에 몸을 흔들었지만 표정엔 조금의 즐거움도 없었다. 이들은 베네수엘라 난민처럼 이슈조차 되지 못했다. 이 땅에 가장 오래 존재해왔지만 보이지 않았다.
볼리바르 광장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엔 '산타페'로 불리는 지역이 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거촌이었던 산타페에 90년대부터 게이 커플에 의해 창녀들이 유입되기 시작했다. 그러다 최근 10년, 베네수엘라 여성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산타페=창녀촌'이 공식화되었다. 이들의 가격은 10불 내외로 내가 아는 한 가장 저렴했다. 그래서인지 대낮에도 가슴을 훤히 드러내 놓고는 영업을 했다. 해가 지고 술과 약에 취한 남자들이 찾아오면 본격적인 영업이 시작된다. 술집과 클럽, 모텔들이 즐비한 골목엔 더러운 냄새와 괴상한 몸짓이 뒤얽혀 광기로 채워졌다. 오토바이를 탄 경찰이 지나기도 했지만 단속은 없었다.
산타페는 평범한 시민들의 주거지 기도 했다. 빨간 불빛 아래 전시된 여성 앞에서 어린아이들은 자전거를 타고 놀았고, 부모들은 아이들을 살피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풍경이지만, 광기 서린 공간에서도 순수히 빛나는 작은 존재들은 상당한 이질감을 주었다. 그들은 이곳에 창녀촌이 형성되기 전부터 살고 있었으며, 변해버린 후에도 여전히 이곳에 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었다.
보고타는 북부로 갈수록 부촌, 남부로 갈수록 빈민촌으로 나눠진다. 부촌에는 조나 T를 중심으로 화려한 쇼핑몰과 고급 식당이 들어서 있다. 부유한 분위기와 도처에 깔린 경찰들은 이곳이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하지만 '총기 살인사건'과 같은 중범죄는 부촌에서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단순히 물건 훔치는 정도인 빈민촌 범죄와는 달리 강도사건은 많은 노동력이 요구되고 위험부담도 크기 때문에 그에 마땅한 보상이 보장되어있어야 했다. 고로 범죄 수위가 높을수록 범죄지는 '부촌'으로 향했다. 처음 보고타를 방문했을 땐 금융업계에 종사했던 카우치서핑 호스트 덕분에, 그 이후엔 안전과 인프라의 이유로 조나 T에 거주했다. 하지만 그동안에도 숙소 근처에서 혼자 걷는 여성 여행자를 상대로 무력을 동반한 강도사건이 발생했고, 뉴스에 보도된 총기 살인사건도 있었다. 이러니 당연히 보고타에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보고타는 콜롬비아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일 뿐 아니라 '가장 못생긴 도시'로도 꼽힌다. 한 때 콜롬비아 전역이 자신의 영토였던 파블로 또한 '보고타는 아주 못생긴 도시'라며 보고타를 대놓고 혐오하는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지금은 쇼핑몰로 사용될 정도로 큰 집을 여럿 가지고 있었지만, 보고타는 업무차 혹은 메데진으로 가기 위한 경유지 정도로만 거주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보고타'만큼 완벽한 도시가 없다. 2600미터 고지대에 위치한 보고타는 도심은 평평하지만, 도시 전체가 거대한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이클에 적합한 지리적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만큼 자전거가 없는 보고타노는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사이클 문화가 대중적이다. 때문에 보고타는 한국을 비롯한 수많은 국가들의 자전거 행정 모범 도시로 꼽힌다. 시내엔 주요 도로를 따라 480km나 되는 자전거 도로가 갖춰져 있으며, 하루 약 80만 명의 보고타노가 이 자전거 도로를 이용한다. 매주 일요일엔 자전거 축제를 위해 120km의 도로구간에 차량을 통제하는데, 매주 200만 명이 몰릴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자전거에 친화적인 도시환경 덕분에, 시민 대다수가 준전문가급으로 사이클에 능숙하며, 국제 사이클 대회에서도 콜롬비아 선수들은 늘 상위권을 선점한다. 때문에 콜롬비아는 사이클 강국으로 불리며 매년 수많은 사이클리스트들의 발길을 끈다. 보고타는 자전거를 사랑하는 시민과 이들을 배려한 도시정책이 만들어낸 '사이클리스트들의 천국'이었다. 보고타가 싫다는 여행객도 많지만 자전거 여행자들만은 모두 입을 모아 보고타를 찬양했다.
가파른 산으로 둘러싸인 지리적 특성은 도시 조망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많은 전망대를 만들었다. (도심을 조금만 벗어나면 산으로 이어지는 자전거길이 다 전망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곳은 '몬세라테'로, 케이블카로 쉽게 올라갈 수 있어 보고타 대표 랜드마크로 꼽힌다. 몬세라테에서 바라본 보고타는 거대도시였다. 춤을 추는 원주민, 아이를 안고 구걸하는 베네수엘라 난민, 몸을 파는 여자와 그들을 사는 마약중독자, 쇼핑을 즐기는 사람,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 각기 다른 형태의 삶들이 도시를 채웠다.
보고타에서 버스로 약 한 시간 떨어진 ‘지파키라 소금 성당’은 기독교인들의 대표적인 성지로 알려져 있다. 지파키라 성당은 15만 톤의 소금광산, 그 지하 200m에 만들어진 지하성당으로, 스페인 식민지 때 만들어졌다. 스페인 사람들은 원주민들을 동원해 이곳에서 소금과 광물들을 채굴했다. 하지만 광산 내부엔 가스가 있어 불을 켤 수 없었고, 어두 컴컴한 동굴 속에서 노동자들이 의지할 곳은 밧줄뿐이었다. 이런 열악한 노동 환경은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때 살려달라고 기도하기 위해 만든 예배당이 이 성당의 시초다. 소금광산에서 일하던 광부들은 급여도 ‘소금’으로 지급받았다. 원주민들의 노동력을 착취한 진정한 창조경제였다. 가이드는 16m의 기다란 십자가 앞에서 ‘힘듦을 종교의 힘으로 승화시킨 원주민 노동자들의 신앙심이 느껴진다’고 했다. 성당 가이드로 일할만큼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백인 혈통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설명이 지극히 스페인 사람들의 관점으로 느껴졌다. 지하 광산에 위치한 성당엔 빛이 들지 않았고 기온이 낮아 꿉꿉하고 음침했다. 다양한 색상의 불빛들이 어두운 동굴 안을 비췄지만, 음침한 기운은 가시질 않았다.
스페인 사람들이 콜롬비아를 처음 발견했을 때, 그들은 콜롬비아가 전설에만 존재하던 황금의 땅 '엘도라도'라고 믿었다. 그 정도로 콜롬비아엔 대량의 황금이 발굴되었는데, 금이 너무 흔했던 나머지 콜롬비아 원주민들은 금을 은으로 도금하기도 했다. 당시 보고타에는 온몸을 금으로 치장한 원주민 부족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를 본 스페인 부대는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금을 강탈해갔다. 하지만 그러고도 금이 워낙 많았던 탓에, 보고타 황금박물관에서는 여전히 일부 남아있는 원주민들의 금공예품이 전시되어있다. 금은 세계 어디서든 귀하게 취급되어 보통은 왕족의 물품이나 귀중품으로 가공되었지만 , 이곳의 금공예품은 도자기와 같은 평범한 가정용품이였다.
영국(앵글로색슨족)이 지배했던 앵글로 아메리카(북미)는 선진국이지만 스페인 포르투갈이(라틴족) 지배했던 라틴아메리카(남미)는 대부분 후진국으로 남아있다. 도대체 뭐가 이런 차이를 만든 것일까? 답은 ‘황금’에 있다.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국가에는 대량의 금이 매장되어 있었지만, 북미엔 없었다. 당시 영국은 땅을 공짜로 주는 정책을 내세워 영국인들을 미대륙으로 대규모 이주를 시켰다. 하지만 스페인 정부에서는 황금이 나오는 땅을 시민들에게 줄 수 없었다. 스페인은 이 넓은 땅의 황금을 강탈해갔지만 200년이 지난 지금 그 마저도 고갈되고 쇠퇴의 길을 걷고 있다. 반면 영국은 ‘은행’과 같은 지속적으로 자본을 착취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 차이는 여전히 북 대륙과 남대륙의 경제적 차이를 만들고 있다.
*할 말이 많아 정리가 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쓴 가이드북 / 현재 인터넷 환경이 안 좋음으로 사진은 나중에 첨부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