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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Jul 22. 2022

정신병자의 가족으로 산다는 것

  이 이야기는 숨길 수 있으면 최대한 숨기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밝힙니다. 이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나도 정신병에 걸릴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는 겁니다. 그러니 만약 이 글을 발견하더라도 모른 척해주시길 바랍니다.


  아버지는 정신병자입니다.  병은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정신병 중에 가장 흔한 병일 겁니다. . 맞습니다. 알코올 중독증입니다.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십니다. 가끔 맥주도 마시지만, 거의 소주만 마십니다. 내기억 속에 아버지는  취해있습니다. 어렸을   몰랐는데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 다섯  때도  취해있었던  같습니다. 그렇다고 집에서 손찌검을 하거나 욕설을 뱉진 않았습니다. 직접적인 언어폭력이나 신체폭력은   번도 없었습니다. 알코올 중독자들 중엔 가정폭력범도 많다던데,  아버지는 최소한 가정폭력범은 아니니까  사실에 감사해야 할까요. 나는 차라리 아버지가 가정폭력범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럼 그냥 평생  보고 살면 그만이니까요. 진심으로 그러길 바랬습니다.  남자 친구는 아버지가 없습니다. 있는데 없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가정폭력범이었으니까요. 어릴  그의 아버지는 어머니를 때렸습니다. 그가 보는 앞에서 말입니다. 그러고는 집을 나가 다른 여자와 재혼을 했습니다.  후로는  번도  적이 없습니다.  덕분에  남자 친구는 꽤나 괜찮은 남자로 성장했습니다. 인생의 대부분 아버지가 없었으니까요. 그래서 아버지를 닮지 않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나는 아닙니다. 나는 오랜 시간 아버지로부터 정신적 폭력에 시달려왔습니다. 지금도 시달리고 있는 중입니다.  아버지가 가족들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방법은 ‘자학입니다. 보란 듯이 자기 자신을 망가뜨립니다. 그리고는 ‘내가 못나서 미안하다 말합니다.  상황은 너무나도 폭력적입니다. 그걸 보는 가족들 마음은 찢어집니다. 그래서  보기 싫습니다. 가족들을 사랑한다는 아버지는   번도 가족을 사랑한 적이 없습니다. 가족들을 조금이라도 사랑했다면 결코 그런 짓은 못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인생이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그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평생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사는 아주 무책임한 인간입니다.  아버지는 스스로 망쳐버린 인생에 나름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는 적당한 핑계를 찾아냈습니다.   번째는 ‘입니다. 그는 돈을 원망합니다. 모든 문제에 ‘ 때문에라는 말이 붙입니다.  번째는 ‘자식입니다. 어쩌면 자식을 돈보다  많이 원망합니다. 마찬가지로 모든 문제에 ‘자식 때문에라는 말을 붙입니다. 직접적으로 그렇게 말하진 않지만 그의 모든 말과 행동이 그렇게 말합니다. 그렇게 본인의 망한 인생을 합리화시킵니다. 돈과 자식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있을  같아 보이지만,  둘은 앞으로도 영원히  아버지의 인생에는 없을 겁니다. 무고한  둘은 원망받으며 사는  억울하니까요. 나는  아버지가 인생을 망친 원인을 술로부터 찾습니다. 우리 가족이 불행한 것도 8할이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결코 술을 원망하는 일은 없습니다. 여전히 술에게는 무한한 사랑과 절대적인 믿음을 줍니다. 자신을 위로해줄  있는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받지 못한 자식 입장에서는 그저 술이 부러울 뿐입니다. 그리고  가지 무서운 사실을 깨닫습니다. 술은 영원히  아버지를 떠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나는 악착같이 노력했습니다.  안에 있는 아버지의 모습들을 씻어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버지의 모든 말과 행동, 생각들을 억지로 밀어냈습니다. 무조건 아버지와 반대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처럼 생각했다간  인생도 망할 테니까요. 그러니 나는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오랫동안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독립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와 조금이라도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가차 없이 끊어냈습니다. 그런 인간은 내 인생에 아버지 하나 만으로도 벅찹니다. 대신  아버지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나와도 많이 달랐습니다. 그래서 그들과의 만남은 지루하고 불편했습니다. 좋은 이야기를 하며 밝은 미래를 꿈꾸는 것보다 부정적인 생각에 빠져 푸념이나 늘어놓는   익숙하고 편했으니까요. 그래서 질투가 났습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긍정적일 수가 없는데, 좋은 부모를 가진 아이들에겐 그게 너무 자연스러우니까요. 굳이 부모로부터 벗어나려 발버둥 치지 않아도 되니까요. 그냥 삶이 이끄는 대로 편하게 살아도 좋은 인생을   있으니까요. 나는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머릿속에서 해치우기 위해서는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습니다. 조금이라도 힘을 빼고 있으면, 어느새 부정과 우울이 나를 잡아끌어 내립니다. 그러지 않기 위해선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습니다. 본성을 거스르는 일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그건 매우 부자연스러운 일이니까요. 가끔은 너무 지쳐서  포기하고 싶습니다.  안에 있는 불운의 유전자가 부정적인 삶으로 이끌도록 내버려 두고 싶습니다. 그건 굳이 내가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되는 일이니까요.  아버지가 그랬듯이, 나는 그걸 핑계 대며 비겁하게 살면 그만이니까요. 그마저도  아버지를 닮아 그런 것이니까요. 내년이면 나는 서른입니다. 서른을 먹은  나이까지도 나는 여전히  안에 많은 문제들을 부모에게서 찾습니다. 내가 무능한 어른인 걸까요. 부모를 혐오하는 일은  자기혐오입니다. 나는 부모의 유전자  자체니까요. 부모의 모습은  모습입니다. 태어난 순간부터 수십년동안 나는 그들을 보고 배웠으니까요. 내가 이대로 영영 부모를 사랑하지 못할까  무섭습니다. 하지만 부모를 사랑할 자신도 없습니다. 그들을 사랑했다간 나도 부모처럼 살게될  같아 무섭습니다. 문득 궁금해집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그도 그의 아버지를 혐오했을까요. 만약  인생이 망한다면 그리고 그게  아버지의 탓이   있다면,  아버지의 인생이 저렇게  것도 할아버지의 탓일 겁니다.  할아버지도 알코올 중독이었으니까요.  아버지의 형제들은 모두 알코올 중독입니다.   명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럼 정말  아버지는 무고한 걸까요. 내겐 남동생이 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기도 합니다. 나는 동생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게 했습니다. 멀리 여행을 보내고 학교도 멀리 보내 아버지와 따로 살게 했습니다. 그리고 항상 일러주었습니다. 우리는 남들보다  노력하고 조심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동생은 술은 입에도  댑니다.  마셔야 하는 상황이 와도 억지로 피합니다. 하지만 동생은 술을 마실  있는 나이가 되기도 전에 다른 형태의 정신병에 걸렸습니다. 어느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습니다. 동생을 데리고 정신병원에 가라고 말입니다. 가족들은 동생이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았습니다. 학교 선생님이 알고 있었을 정도였으니 전교생이  알고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지경이  때까지 가족들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동생의 병은 강박증입니다. 수업 중에도 이상행동을 수십  반복했다고 합니다. 등교할 때도 학교를  번에  수가 없어 횡단보도를 수십  건너기를 반복했답니다. 그러다가 바지에 오줌을  적도 있답니다. 강박증이 한참 심했을 때는 강박 행동하는 시간이 아까워서 자살을 생각했다 합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지금도 여전히 병은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다. 동생은 대학교 모든 건물에 계단이  개인지 알고 있습니다. 샤워도 운동도 공부도 식사도 강박적으로 했습니다. 일상의 모든 것이 강박입니다. 동생이 병에 걸렸단 소리를 듣고, 동생에게 자주 전화를 했습니다. 전화로는 괜찮아 보였습니다. 알코올 중독과는 달리 주변에서 접할  있는 병이 아니다 보니, 그냥 조금 예민한 사람들이 걸리는 병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 종종 천재 예술가들도 걸린다는 말은 안심이 되기도 했습니다.  정도로 나는  병에 대해, 동생에 대해 무지했습니다. 2  만에 만난 동생의 상태는 심각했습니다. 내가 알던 동생이 맞나 싶을 정도로 많이 변해 있었습니다. 식사를  때도  먹으라고 하면 숫자 강박 때문에 더는  먹는다고 했습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 개수를 일일이  새고 있었던 것입니다. 많이 속상했습니다.  아버지의 삶을 물려주지 않으려고 그토록 노력했는데. 동생은 불면증이 너무 심해서 잠을  수가 없었습니다. 정신과 의사는 불안지수가 높아서 그렇다고 했습니다.  아버지도 잠을   잡니다. 매일  온갖 욕지거리를 뱉어냅니다. 우리는  아버지가 잠꼬대로 질러대는 욕을 수십  듣고 자랐습니다. “씨발놈아. 개새끼야.” 매일  악에 바쳐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하루는 캠핑장 텐트에서 자는데, 그날도 어김없이  아버지는 술을 마셨고 잠꼬대를 질러댔습니다. 다음날  텐트 사람은 우리 텐트에서 싸움이   알고 경찰에 신고할 뻔했다고 했습니다.  정도로 상스러운 욕을 매일  질러댔습니다.  아버지와 20년을 넘게 살면서 가장 불편했던 것도 잠꼬대였습니다. 아버지처럼 욕을 하진 않지만 잠버릇이 고약한 동생은 몸부림을 치고 잠꼬대를 하지 않으면 잠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자고 있지만 항상 의식이 깨어있다고 했습니다.   알게 되었습니다. 술주정인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욕이 불안증 때문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보통 강방증은 치료기간을 1년으로 잡습니다. 하지만 동생은 치료받은  3년이 넘어가는데도 호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본인 말로는 많이 좋아진 거라고 하지만, 제가 보기엔 여전히 정상궤도를 한참 벗어나 있었습니다. 동생은 약의 부작용을 호소했습니다. 어떤 약은 몸이 너무 힘들어서 12시간을 자도 피곤하고,  어떤 약은 밥을 먹을 때마다 토할  같다고 했습니다.  어떤 약은 먹고 새벽에 깨면 갑자기 이유 없이 너무 화가 난다고 했습니다. 다양한 이유로 동생은 약을 거부했습니다. 집에는 처방받고서 먹지 않은 약봉지가 수두룩 합니다. 귀국하자마자 동생과 내원했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강박증 환자들은 불안하지 않은 상태를 불안해합니다. 본인이 힘들다고 느낄 정도로 많이 불안하면 약을 먹습니다. 그래서 불안해지지 않으면 다시 불안해지기 위해 스스로 약을 끊습니다.” 동생은 약을 거부했지만, 나는 의사의 말이  신뢰가 갔습니다. 그래서 매일 약을 먹는 모습을 영상으로 보내달라고 했습니다. 뇌파 치료도 받으면 좋다길래 뇌파 치료도 예약했습니다. 상담치료도 병행되어야 한다길래, 같이 상담실도 찾았습니다. 동생은 낯선 사람 앞에서 불안지수가  높아졌습니다. 처음 만난 상담 선생님 앞에서도 강박행동을 했으니까요. 그리고 나에겐 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상담실에서 털어놨습니다.  말은 충격이었습니다. ‘가족 중에 아빠랑 이야기하는  제일 편하고 좋아요.’ 그토록 아버지로부터 동생을 보호했는데. 그렇게 거리를 두게 하려고 애썼는데. 동생은 이미 아버지의 불안하고 우울한 정신세계에 동화되어 버린  같았습니다. 내가 다른 가족들과 아빠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하면 동생은 불편해했습니다. 내가 그러지 말았어야 했을까요. 나는 그저 가족들을 지키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나는  아버지를 수천  보듬었습니다. 비록  아버지는 나를 사랑하지 않지만 나는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를 위로하고, 공감하려 애썼습니다. 대화도 많이 했습니다.  아버지의 집에서  때는 매일 거의 두어 시간씩 대화를 했습니다. 부모 자식의 역할이 바뀐 대화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좋아질 수만 있다면  괜찮았습니다.  아버지는 성장이 멈췄습니다. 10  했던 말들을 글자 하나  바꾸고 지금도 그대로 말합니다. 나는 성장을 거부하는 아버지를 성장시켜야 했습니다. 책을 선물하고 편지도 썼습니다. 한집에 같이 사는데도 편지를 썼습니다. 그건 매우 지치는 일이었지만 나는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습니다. 나는 타인을 바꿀  없다는 것을  아버지를 통해 배웠습니다. 내가 바꿀  있는   자신 뿐입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포기하기로 한것입니다. 그렇게  년이 흘렀습니다. 여전히  아버지는 그대롭니다.  한심한 인간은 절대 성장하지 못할 거란  받아들이고 나니 좀 편해졌습니다. 아버지를  보고 살아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내겐 아직 어린 동생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인생을 아버지로부터 지켜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 또한 내가 바꿀  없는 타인일 뿐인 걸까요. 동생을 정신병에 걸리게  아버지가  원망스러워집니다. 이게  당신 탓입니다. 그런데 만약  탓일까봐 겁이 납니다. 내가 아버지를 밀어내는 바람에 동생이 정신병에 걸린 걸까  겁이 납니다. 아버지가 외로울까 , 아버지를 이해하기 위해 동생이 병에 걸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생은 스스로 정신병에 걸림으로써 내가 밀어낸 아버지를 다시 가정으로 끌어들였습니다. 내가 아버지를 밀어내지 않고   감싸주었으면 동생은 병에 걸리지 않았을까요. 죄책감이 듭니다. 나는 아버지만으로도 이미 너무 힘이 듭니다. 하지만 동생까지 저렇게 되고 나니 이젠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가끔은 아버지가 너무 부럽습니다. 차라리 나도 정신병에 걸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보다   편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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