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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Feb 10. 2023

남보라의 유튜브

다행히도 이젠 네가 한심하기만 하다

 얼마 전, 어쩌면 배우로서보다 k-장녀로 더 유명한 남보라 씨의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수년 전 '천사들의 합장'에서도 얼굴을 비춘 적 있던 동생 중 하나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아서였다. 영상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밝았지만, 그녀가 동생의 병을 공개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큰 슬픔이 있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반년 전 완전히 귀국한 나는, 3년째 강박증을 앓고 있는 막내 동생과 동거를 시작했다. 내 기억 속 동생은 그런 몹쓸 병에 걸리기 전의 모습이였기에, 못 본 사이 많이 변한 동생은 낯설기만 했다. 그래도 우린 금새 다시 친해졌고, 나는 곧 동생의 생각과 행동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아주 형편없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을테지만 말이다. 다른 가족들이 동생을 염려하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서 동생이 어떤 상태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꼴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오후에 눈을 떴는데 눈 뜨자마자 피곤하고 징징거리는 꼴이며, 핸드폰 스크린타임이 8시간이나 되는데 매번 시간 없다는 핑계로 일을 미루는 꼴 하며, 하루종일 집에만 박혀있는데 전혀 청소되지 않는 방 꼬락서니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또 얼마나 무식한지. 하루종일 누워서 푸념만 늘어놓은 꼴이 한심해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닦달하니, 하루종일 누워서 유튜브 보는 게 꿈이라 질 않나. 그럼 이미 꿈을 이룬 거나 다름이 없으니,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할 텐데, 뭐가 불안해서 정신병에 걸렸냐니까, 비싼 아파트에서 유튜브 보는 게 꿈이란다. 그럼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냐고 물으니, 동생은 그래서 학교는 다니지 않냐는 말로 응수했다.


 물론  학교 생활도 학교 생활이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없었다. 부모님이 얻어준 학교 코앞에 전셋집 살면서, 학교생활은 커녕 알바도, 연애도, 친구도,  어떤 사회 활동도 없었다. 학교를 2년이나 다녔는데, 타과수업도 아니고 자기과 수업 과제 하나도 물어볼 동기도 하나 없어서 교수님께 물어보는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행위를 선보이질 않나. 학교 도서관에서   빌려달라고 하니, 그제야 학교 도서관을 처음 가봤다고 하질 않나. 인천에   2년이나 되어가는데, 영종도, 강화도는 커녕 송도도  가봤다지 않나. 엠티나 오티는커녕 동화리 활동도  해서 대학교 사람들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않나. 아무리 입학하자마자 비대면 수업을 들어야 했던 비운의 21학번이라지만, 이건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하루종일 방구석에만 박혀있으면서 뭐가 그리 힘들다는 질문에, 공부가 그렇게 힘들다는데, 그렇다고 공부를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도 방 좀 치우라는 말로 시작해서, 정신 차리라는 말로 끝난 20분 열변을 토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나왔다. 퇴근하면서도, 또 어떤 말로 동생을 갉아내릴지 조목조목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이제는 동생에게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친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대게 그러하듯, 내 눈에 동생은 한참 모자라다.


대게 그러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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