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이젠 네가 한심하기만 하다
얼마 전, 어쩌면 배우로서보다 k-장녀로 더 유명한 남보라 씨의 유튜브 영상이 화제가 되었다. 수년 전 '천사들의 합장'에서도 얼굴을 비춘 적 있던 동생 중 하나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아서였다. 영상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언제나처럼 씩씩하고 밝았지만, 그녀가 동생의 병을 공개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많은 인내와 큰 슬픔이 있었을지, 가늠조차 어렵다.
반년 전 완전히 귀국한 나는, 3년째 강박증을 앓고 있는 막내 동생과 동거를 시작했다. 내 기억 속 동생은 그런 몹쓸 병에 걸리기 전의 모습이였기에, 못 본 사이 많이 변한 동생은 낯설기만 했다. 그래도 우린 금새 다시 친해졌고, 나는 곧 동생의 생각과 행동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되었다. 그것들은 대체로 아주 형편없어서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였을테지만 말이다. 다른 가족들이 동생을 염려하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서 동생이 어떤 상태인지는 이미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꼴을 두 눈으로 직접 마주하는 건 또 다른 문제였다.
오후에 눈을 떴는데 눈 뜨자마자 피곤하고 징징거리는 꼴이며, 핸드폰 스크린타임이 8시간이나 되는데 매번 시간 없다는 핑계로 일을 미루는 꼴 하며, 하루종일 집에만 박혀있는데 전혀 청소되지 않는 방 꼬락서니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하다. 생각 없이 내뱉는 말 한마디 한마디는 또 얼마나 무식한지. 하루종일 누워서 푸념만 늘어놓은 꼴이 한심해서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닦달하니, 하루종일 누워서 유튜브 보는 게 꿈이라 질 않나. 그럼 이미 꿈을 이룬 거나 다름이 없으니, 충분히 만족스럽고 행복할 텐데, 뭐가 불안해서 정신병에 걸렸냐니까, 비싼 아파트에서 유튜브 보는 게 꿈이란다. 그럼 그러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냐고 물으니, 동생은 그래서 학교는 다니지 않냐는 말로 응수했다.
물론 그 학교 생활도 학교 생활이라 칭하기 민망할 정도로 별 게 없었다. 부모님이 얻어준 학교 코앞에 전셋집 살면서, 학교생활은 커녕 알바도, 연애도, 친구도, 그 어떤 사회 활동도 없었다. 학교를 2년이나 다녔는데, 타과수업도 아니고 자기과 수업 과제 하나도 물어볼 동기도 하나 없어서 교수님께 물어보는 (나로서는 굉장히) 충격적인 행위를 선보이질 않나. 학교 도서관에서 책 좀 빌려달라고 하니, 그제야 학교 도서관을 처음 가봤다고 하질 않나. 인천에 산 지 2년이나 되어가는데, 영종도, 강화도는 커녕 송도도 안 가봤다지 않나. 엠티나 오티는커녕 동화리 활동도 안 해서 대학교 사람들 중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질 않나. 아무리 입학하자마자 비대면 수업을 들어야 했던 비운의 21학번이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단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를 고립시켜 하루종일 방구석에만 박혀있으면서 뭐가 그리 힘들다는 질문에, 공부가 그렇게 힘들다는데, 그렇다고 공부를 썩 잘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오늘도 방 좀 치우라는 말로 시작해서, 정신 차리라는 말로 끝난 20분 열변을 토하고는 깊은 한숨을 내뱉고 나왔다. 퇴근하면서도, 또 어떤 말로 동생을 갉아내릴지 조목조목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깨닫는다. 내가 이제는 동생에게 아주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친동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대게 그러하듯, 내 눈에 동생은 한참 모자라다.
대게 그러하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