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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Feb 11. 2023

어서 와, 강박증은 처음이지

정신병 받아들이기

 마지막으로 함께 병원을 방문했던 날, 그날도 약을 안 먹으면 입원치료밖에 방법이 없다는 의사의 말을 들먹이며 '제발 약 좀 먹으라'며 닦달했다. 그러자 동생은 울며 소리쳤다. '그래서 시키는 대로 먹었는데 그래도 안 고쳐지잖아. 약 먹으면 하루에 15시간씩 자야 하는데, 계속 잠만 자라는 말이냐'며 말이다. 그런 동생에게 '그럼 네가 병을 고치던가. 안 고쳐지면 그렇게라도 해야지. 평생 정신병자로 살 거냐'며 더 크게 소리쳤다. 오전 11시, 사람 많은 지하철 역 앞에서.


 약을 먹으니 체력만 떨어지고 불안함은 전혀 완화되지 않는다며 동생은 약을 거부했다. 원래도 잠이 많았던 동생은 약을 먹기 시작한 후로는 매일 12시간 이상을 자야 했다. 밤에 10시간 이상 자는데도, 낮잠을 자야 했고, 그러고도 피곤했는지 주말엔 그 보다 더 오래 잤다. 일반인의 2배의 가까운 수면은 동생에게 뒤처지는 느낌을 들게 했고, 그건 더 큰 불안을 일으켰다. 그런 동생에게 약효과는 최소 3달은 꾸준히 먹어야 나타나니, 힘들어도 참고 세 달 만이라도 먹어보자며 사정했다. 외국에 있을 때도 매일 약을 삼키는 것까지 영상으로 확인했다. 그런데 동생이 이런 내 모든 노력을 짓밟았다. 약을 꾸준히 먹었다는 건 또 거짓말이었다.


 동생의 병세는 심각했다. 눈 뜨자마자 시작된 강박 행동은, 자기 전까지 이어졌다. 강박장애의 증상은 '강박행동'과 '강박생각'으로 나뉜다. 보통 환자들은 '강박생각'으로 그치지만, 그 생각이 심화되면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동생은 강박 행동을 하는 데에만 매일 3시간 이상이 소요되었다. 강박 행동'만' 집중적으로 하는 시간만 3시간이었을 뿐, 어쩌면 하루종일 강박 행동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동생은 눈 뜨자마자 샤워를 했(야 했)다. 동생의 샤워는 평범한 일과가 아니었다. 그건 불안을 물리치기 위한  일종의 퇴마 의식이였다. 그 의식엔 많은 규칙들이 있었다. 온수 설정은 60도로 맞춰야 했고, 늘 듣던 노래를 틀어야 했고, 그 노래가 2번 이상 넘어가기 전에 샤워를 끝내야 했다. 동거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알아낸 샤워 규칙만 이 정도다. 샤워 중의 모습은 본 적도, 볼 수도 없지만, 분명 샤워 중에는 더 많은 규칙들이 있을 터였다. 그렇게 시작된 퇴마 의식은 하루종일 이어졌다.


 동생은 침대를 자면서 흘린 땀이 베인 더러운 곳으로 인식했다. 아침에 샤워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래서 동생은 원룸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침대에 닿지 않도록 늘 주의했다. 행여나 침대에 옷이 닿으면 다시 세탁했다. 그 규칙은 입고 있는 옷은 물론, 한 번도 입지 않은 옷에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내가 옷을 게면서 잠시 침대에 올려둔 옷을 몽땅 다시 세탁기에 넣어 버린 일도 있었다. 아마 그날도 엄청 싸웠을 거다.

 

 외출 전에는, 반드시 핸드폰과 (방수가 되지 않는) 에어팟, 그리고 손을 씻어야 했다. 손을 씻고도, 또 본인만의 만져서는 안 되는(예를 들면, 화장실 손잡이) 곳에 닿으면, 다시 그 일렬의 의식을 반복했다. 그렇다 보니 간단한 외출 준비에도 30분 이상 소요 되었다.


 취침 준비는 이보다 더 길고 복잡했다. 최소 3번은 현관을 열어 밖을 확인했고, 그러고도 방문이 제대로 잠겼는지 확인하기 위해 도어록을 한참 쳐다보곤 했다. 손과 입을 여러 번 헹궈야 했고(동생의 말에 의하면, 동생의 머릿속을 지배한 신이 게시한 그날의 숫자에 맞춰 헹궈야 한단다), 그러고도 불안하면 치약을 거의 반통이나 짜서 손을 씻었다. (치약이 비누보다 더 깨끗한 느낌이 든단다) 한 시간이 넘는 퇴마 의식을 끝내고 겨우 침대에 누워서도, 다시 일어나 강박 행동을 수없이 반복했다. 자다가 손으로 다른 신체부위를 만져도 다시 손을 씻어야 했기 때문이다. 잠결에 눈을 뜨면, 거의 항상 동생은 무언가를 하고 있었다.


 다음날이 되어도,  그다음 날이 되어도  일상은 반복었다. 이미  , 수십  캡쳐까지 해가며 확인한 핸드폰을 아침식사 내내 붙들고는 본인의 행적을 확인했다. 어제 확인한 후로 핸드폰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확인하냐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밤에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을 수도 있잖아.'라고 답했다. 비정상적인 행동에 대해선 정상적인 대화가 불가능했다.


 낮에는 하루종일 붙어있을 수 없으니, 얼마나 많은 강박행동이 더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동생은 주로 집에서만 강박행동을 한다고 했지만, 함께 외출을 할 때마다 새로운 강박행동을 발견했던 걸 보면, 밖에서도 정상적인 생활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왔던 길 다시 돌아가 확인하기, 만졌던 곳 다시 만지기(그게 무엇일지는 날마다 다르다), 야외 화장실을 쓰면 꼭 그 화장실에서만 볼 일을 봐야 하는 것, 버스벨은 절대 누리지 않는 것 (목적지에서 벨을 누르는 사람이 없으면 누군가가 벨을 누를 때까지 이동했다가 걸어 돌아왔다), 누군가에게 꼭 말실수를 했냐고 물어봐야 하는 것, 등. 몇 달 이상 지속적으로 관찰된 퇴마 의식만 대충 이 정도. 날마다 다른 하루짜리 퇴마 의식도 많았다. 학교에 모든 건물의 계단 숫자를 아직도 기억하는 걸 보면, 학교에서 계단과 관련된 퇴마의식도 꽤나 의식 기간이 길었던 것 같다.


 가장 속상한 건 핸드폰 갤러리였다. 갤러리는 카톡과 유튜브 시청목록만큼이나 사적이고 그래서 정신세계가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음식에 관심이 많으면 음식 사진이, 패션에 관심이 많으면 옷 사진이, 구직자에겐 취업 공고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꽃 사진이, 하늘 사진이, 여행 사진이, 책에서 발견한 인상깊은 문구가, 관심 있는 사람의 사진이 담겨 있다. 하지만 동생의 갤러리엔 수천 개의 카톡 캡쳐본과 어딘가 자리를 뜰 때마다 반복해서 찍어댄 사진들 뿐이었다. (동생은 사람을 만날 때마다 녹음을 했고, 문자와 모든 카톡 내용을 캡처했다) 셀카도, 친구나 가족 사진도 없었다. 어떠한 아름다움도 기쁨도 행복도 없다. 그의 세상엔 오직 불안만이 존재했다.


 누가 봐도 비정상인 동생은 정상으로 태어났다. 내 기억속 동생도 물론 완벽하진 않았지만, 정상이였다. 그러니 나는 동생을 정상으로 인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나는 정상인으로 보기에 한참 모자란 동생을 비판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미친 행동'의 이유를 묻는 질문마다 '미친 사람' 같은 동생의 '미칠 것 같은' 대답만이 돌아왔고, 그 대답들은 나까지 미치게 했다. 그래서 결국엔, 동생에게 수치심과 상처 주는 말들을 쏟아내고 말았다. 그러다 또 정신이 들면, '내 동생은 정신병자다. 정신이 아프다. 동생은 정신병자다. 정상이 아니다.'며, 스스로를 다잡았다. 동생을 정상으로 대하면 화가 났고, 동생이 정신병자라는 걸 받아들이기엔 너무 슬펐다. 하루에도 수십 번 분노와 슬픔 사이를 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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