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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Feb 24. 2023

정신병자와 대화하는 법

광기

 동생은 정신병원에서 '카페에 가서 커피 한 잔을 주문해 보라'는 숙제를 받아올 만큼 사회생활이 어려웠지만, 가족과 있을 때는 그럭저럭 괜찮아 보였다. 지나치게 비관적인 생각과 패배주의에 젖어 늘어가는 푸념, 부족한 경험이 만든 성급한 일반화, 이 모든 것들의 합작인 잘못된 편견들로 대화 수준이 떨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일반적인 범주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종종 동생의 정신세계가 다른 곳에 가 있다는 것이 느껴질 때가 있다. 뭐랄까. 정신병 특유의 광기라고 해야 하나.


 일전에 피해망상을 앓고 있는 분과 함께 산 적이 있었다. 심한 환청에 시달렸던 탓에 모든 신경이 환청에만 집중되어 일상이 어려웠다. 식사를 하다가도 수시로 일어나 부엌과 화장실을 확인했고, 대화 중에도 자주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환청을 (현실보다 더) 현실로 믿었기에 수시로 대사관과 현지 경찰을 불러댔고,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며 여기저기 이사를 다녔다. 심지어 내 방에도 찾아와 금속탐지기 어플로 도청 장치를 확인하곤 했다. 누구보다 본인이 가장 힘들거란걸 알기에 처음엔 그 모습이 안타까웠지만, 그 안타까움은 이내 불편함으로 변했다. 한마디로 그녀의 병은 민폐였다.


 암이나 감기같은 다른 질병과는 달리 ‘정신병자'라는 병명은 일상에서 욕으로 자주 사용된다. 하지만, 실제로 정신병자를 겪어봤다면 그런 말은 장난으로라도 하지못할 것이다. 정신병에 관해서는 포털이나 서적에 기재된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글자들도 크게 와닿지 않는다. 광기가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광기는 경험해 봐야만   있다. 나는  분과 지내본 덕분에 나는 그게 뭔지  알고 있었다. 그런데  광기가  동생에게서도 느껴졌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동생은 자주 어디론가 사라지곤 했다. 함께 식사를 할 때 입에 들어가는 음식의 개수를 세고 있다던가, 같이 걸을 때 걸음 수를 센다던가, 문자를 보낼 때도 내용보다는 글자 수에 집착한다던가, 할 때가 그랬다. 그럴 때는 마치 동생이 마법에 걸린 것만 같았다.


 동생은 마법세계에 동화될수록 현실 세계에서 고립되었다. 동생은 한참 사회활동이 활발할 20대 청년이지만, 학교 수업을 제외하고는 외출할 일이 없었다. 밥 한 끼 같이 먹을 친구도 없어 매끼 혼자 밥을 먹고, 온종일 홀로 방에만 틀여박혀 강박 행동을 해댔다. 주변에 마음을 나눌 사람이 없으니 마음이 공허했고, 공허함을 불신과 이기심으로 채웠다. 우리 남매 중 가장 착했던 동생이 아무렇지 않게 반사회적인 말을 툭툭 내뱉는 모습을 처음 마주했을 땐 적잖이 충격이었다. 그런 동생에게 '어릴 적 내가 수학여행 가서 사 온 원숭이 인형이 고마워서 땀을 뻘뻘 흘려가면서도 계속 목에 걸고 있었던 일, 맛있는 게 생기면 항상 먼저 먹지 않고 누나들이 올 때까지 기다렸던 일, 부모님께 혼날걸 알면서도 아픈 동물들을 주워왔던 일'들을 읊으며 자신이 얼마나 착한 아이였는지를 상기시켰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동생은 '어릴 때 안착한 애도 있냐'며 비아냥거릴 뿐, 다시 착해질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그 못난 생각들이 얼마나 타당한지 설명하며 더 열심히 합리화시킬 뿐. 그럴수록 타인의 대한 불신은 강해졌고, 또 그만큼 자신에 대한 불신도 강해졌다. 그리고 그 결과가 확인 강박으로 나타났다.


 나는 그런 동생을 본래의 세상으로 꺼내와야 했다. 그의 마법 세계는 아름답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아름다운 현실 세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주말이면 귀찮아하는 동생을 억지로 끄집고 나와 여행을 했다. 하지만 마법 세계에 갇힌 동생에게 이 세계를 보여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영종도로 놀러 갔던 날도 그랬다. 전망대에 올라 바다뷰를 감상하는데, 동생은 빨리 내려가자며 보챘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편하게 여유를 즐기길 바라는 마음에, 동생의 손을 붙들고 바다를 바라보게 했지만, 동생은 영 불편해 보였다. 결국 동생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화장실이 급하다며 나를 끌고 전망대를 내려왔다. 그런데 동생은 가까이 있는 화장실을 두고 굳이 멀리 있는 화장실로 향했다. 가까운 화장실에 빨리 다녀오랬더니, 그제야 동생은 아까 다녀온 화장실이 남자화장실이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동생의 팔을 질질끌며 억지로 못가게 막았지만, 그 후 제발 한 번만 확인하게 해달라며 거의 한시간을 보챘다. 동생은 매번 이런식이다. 또 이렇게 잔인하게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머릿속엔 온통 화장실 생각뿐이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절망스런 마음에 그 날의 일을 여동생에게 전하자 여동생이 말했다. "나랑 영화보러갔을 때도 그랬었는데. 진짜 딱 그렇게 말했었어. 여자화장실인지 남자화장실인지 확인해야한다고."


 비정상적인 집착, 상식을 벗어난 행동, 겉으로는 평범해보지만 단단히 미쳐있는 상태, 이게 광기다. 정신병이 생기면 일상의 모든 일이 부자연스러워진다. 밥을 먹는 것도, 잠을 자는 것도, 말을 하는 것도, 걷는 것도, 화장실을 가는 것조차도.


 




대화록


나 : 꼭 왜 그 화장실에 가야 해?

동생 : 혹시 내가 여자화장실에 다녀온 걸 수도 있잖아.

나 : 아까 내가 너 화장실 가는 거 봤는데, 분명 남자화장실이었어.

동생: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다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

나 : 말했잖아. 분명 남자화장실에 다녀왔다고.

동생 : 큰누나가 잘못 본거일 수도 있잖아.

나 : 그럴 리 없어.

동생: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상황 1

이런 식의 대화가 무한 반복이다. 대게 10분쯤 넘어가면 인내심은 바닥나고 소리를 지르고 만다.

- 이제 됐어. 그만. 더 이상 화장실 이야기 꺼내지 마.

대화는 끝났지만, 동생은 여전히 화장실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상황 2

- 이제 그만하고 우리 다른 이야기하자. 오늘 저녁은 뭐 먹을래?

전환된 화제에 대한 대답은 돌아오지만, 그 마저도 '아무거나'식의 성의 없는 대답뿐이며, 동생은 여전히 화장실 생각뿐이라, 더이상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


상황 3

- 너 지금 이상하게 집착하고 있는 거 알지? 그거 강박행동이야.

 처음엔 동생이 강박행동을 할 때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당황했다. 강박 행동을 못하게 막으면 동생은 더 불안해했고, 비정상적으로 예민해지며, 화를 내며 공격적인 태도를 취하기도 했다. 불안한 모습에 무작정 못하게만 하면 안 될 것 같아 의사에게 조언을 구했다. 의사는 먼저 그것이 강박행동임을 인지시켜주는 것이 필요하고 했다. 그러기 위해선 이상한 행동에 대한 (행동보다 더) 이상한 이유를 들어줘야 했고, 여기엔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그 후엔 아주 당연한 것들을 차분히 설명해주어야 한다. 마치 지구에 처음 방문한 외계인을 대하듯이.


- 강박행동은 불안할 때 나타나는 거야. 뭐가 불안한지 생각해 봐.

- 내가 여자화장실에 들어갔을까 봐 불안해.

- 그게 아니었다고 말해주는데도 왜 계속 불안한 거야?

- 몰라. 큰누나가 잘못 봤을 수도 있잖아.

- 너도 실수하고 나도 잘못 봤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살면서 한번이라도 그런 적 있어? 왜 그렇게 발생할 확률이 낮은 일에 불안해하는 거야?

-.....


 먼저 강박 행동임을 인지시켜야 진짜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 본질적인 문제는 '화장실'이 아니라 '불안'이다. 아주 천천히, 자세하고 깊이, 스스로 불안의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동생은 이유 없이 불안하다고 했지만, 이유 없는 불안은 없다. 무의식 속에 꼭꼭 숨겨져 있어 찾지 못한 것일 뿐이다. 그 무의식을 의식으로 변환하는 일에도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하지만 그 인내는 오롯이 동생의 몫이다. 스스로 견뎌야만, 아주 깊은 내면의 불안을 드려다 볼 수 있다.


인내심이 부족한 동생은 대게

- 이제 안 불안해. 됐지?

하고 만다.


그나마 양호한 대답은

- 나도 몰라. 내가 왜 불안한지.


아직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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