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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니요니 Feb 23. 2023

약물전쟁

정신병원에서 벗어나기

 가족들에게 등 떠밀려 억지로 다니던 병원에서 어떠한 효과도 보지 못하자 동생은 스스로 치료를 포기한 듯 보였다. 덕분에 약물 치료도, 상담 치료도, 30분에 십만원에 달하는 뇌파 치료도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지만, 그럼에도 병원치료는 가족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러니 동생도 병원치료를 포기해서는 안되었다. 뫼비우스의 띠.


  끊기로 했다.


 동생은 자신의 불안한 정신세계를 생식기만큼 은밀히 여겼고, 그래서 정신병원을 산부인과나 비뇨기과에 내원하는 것보다 수치스러워했다. 나는 동생의 이런 태도때문에 치료효과를 보지 못한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동생에게 최대한 솔직해야 의사도 최대한 도움을   있다며 설득도 해보고, 치료할 생각이 있기나 한거냐며 화도 내었다. 하지만 동생은 끝내 솔직하지 못했고, 심지어는 나로 인해 자신이 드러나는 것조차 거부했다. 지난 2년간 의사에게 거짓말을 해온 , 그간 쌓아온 신뢰를 깨는 일이라나 뭐라나. 그동안의 거짓말을 의사에게 비밀로 해준다면 앞으로 (그렇게 싫어하던) 약도  먹겠다며, 거의 울다시피 사정했다. 이게  그렇게까지 절박한 일인가. 동생은 그들이 순전히 의사와 환자의 관계라는 것을 완전히 잊은 듯했다.


 동생이 처음부터 거짓말을 했던 건 아니었다. 처음엔 스스로 약을 잘 챙겨 먹었다. 하지만 약을 먹은 후로 악몽에 시달린다고 했다. 매일 새벽에 깨어났고, 그렇게 깨면 원인을 알 수 없는 분노가 치민다고 했다. (몸부림을 치다 발톱이 뽑힌 일도 있었다) 수면의 질이 떨어진 만큼 수면시간은 비정상적으로 늘었고, 소화 장애와 역류성 식도염까지 걸려 살도 많이 빠졌다.(당시 동생은 남자지만, 설현과 키와 몸무게가 같았다) 동생은 의사에게 약의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그때마다 약알의 개수만 추가될 뿐이었다. 약에 대한 부작용이 생기면, 그 부작용에 대한 약이, 그럼 또 그 약에 대한 부작용이 생기고, 그럼 또 그 부작용에 대한 약이 처방되는 식이였다. 이 무한굴레를 동생은 거짓말을 함으로써 끊어냈다.


 나는 동생이 약을 너무 많이 먹어 '지능저하'가 온 게 아닐까 의심했다. 동생은 타인의 말에 집중하지 못했고, 책상 앞에서는 10분을 못 견뎌했다. 행동은 급박하고, 말은 빨랐으며, 언제나 안절부절못했다. 병에 걸린 동생은 기억 속 어렸던 모습보다도 어리숙해 보였다. 하지만 의사는 지능저하를 비롯한 동생이 호소하는 모든 증상들이 결코 '약물 부작용'이 아니라고 단언했다. 동생이 약의 부작용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증상들은 병의 증상일 뿐이며, 오히려 약을 먹지 않는다면 그 증상들이 더 악화될 것이라고 했다. 나는 의사의 말을 믿었다. 그래서 의사에게 동생의 거짓말을 고발했고, 의사가 시키는 대로 동생에게 약을 강요했다. 내 동생은 정신병자고, 의사는 의사니까. 당연한 처사였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도 동생이 먹는 약이 지나치게 많았다. 끼니때마다 먹어야 하는 정신과 약만 5알, 거기다 역류성 식도염과 소화장애 약, 약기운에 체력이 떨어져 먹는 각종 비타민까지. 매일 먹어야 하는 약만 20알이 넘었으니, 약에 절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혹시 과잉진료이진 않을까, 동생에게 처방된 약들을 일일이 포털과 의료서적까지 뒤져가며 찾아도 봤다. 하지만 부작용에 대해선 모두 '없음', 혹은 '거의 없음'이었다. 감기약에도 있는 부작용이 정신병 약에는 없다는 게 의아했지만, 전문가(의사)와 전문서적이 그렇다고 하니 다른 생각은 할 수 없었다. 되려 병을 공부할수록 약물에 대한 신뢰는 커졌고, 그만큼 동생에게 약을 먹이는 것에 대한 집착도 커져만 갔다.



 약 문제로 또 미친 듯이 싸웠던 어느 날, 다시 약을 거부하는 동생에게 소리치며 다그치자, 동생은 울며 말했다. "제발 큰누나가 이거 한 번만 먹어봐. 한 번만이라도 어떤지 먹어보고 나한테 먹으라고 해봐. 어차피 부작용도 전혀 없다는데, 한 번은 먹어줄 수 있잖아. 나는 진짜 못 먹겠다고." 그리고 나는 동생의 약을 먹지 못했다. 동생 말이 맞다. 세상에 부작용 없는 약은 없다.


  동생에게 약을 먹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미 성인이 된 동생에게 억지로 무언가를 하게 하는 건 불가능했다. 의사는 약은 규칙적으로 먹지 않으면 오히려 안 먹느니만 못하다고 했다. 오히려 약물에 대한 의존성만 높이고 치료를 더디게 만든다고 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지는 두 가지뿐이다. (규칙적으로 약을 먹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 입원치료, 혹은 아예 완전히 약을 끊어버리는 것.


  오랜 전쟁 끝에 우리는 후자를 택했다. 동생에게 약물 없이 불안을 다스릴 수 있는지 확인해 볼 기회를 준 것이다. 단, 주어진 시간은 3개월이었다. 그 시간 동안 병을 고칠 수 없다면 아무리 힘들어도 다시 약을 꾸준히 먹기로 했다. 추가로 '카페인 끊기, 자기 전에 하는 강박행동 하나씩 줄이기, 대신 취침 전 명상하기, 강박행동을 하더라도 그전에 심호흡 5번만 하기'와 같은 사소해 보이지만 막상 실행하기엔 약을 먹는 것만큼이나 힘든 생활 규칙도 정해졌다. 그렇게 스스로를 포기하지 않고 불안과 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기 위해 노력하기로 한 결심을 다지며, 3년 동안 복용해 온 약물과 작별했다.


  약을 끊으면서 병원도 끊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 방문하는 병원에서는 길어야 상담시간이 20분이었고, 한 달 주기로 불안지수 검사도 하긴 했지만, 그 외엔 달리 해주는 게 없었다. 이 마저도 치료가 아닌 경과를 확인하는 과정일 뿐, 실질적인 병원 업무는 약처방뿐이었다. 그러니 약을 먹지 않기로 한 이상 병원에 갈 일도 없어진 것이다. 게다가 약을 먹지도 않으면서 매주 약을 타온 동생 때문에 집에는 뜯지도 않은 약봉지가 수두룩 했다. 그건 약을 다시 먹게 되더라도 3개월은 충분할 양이였다.


 그렇게 아무런 예고도 통보도 없이 갑자기 병원을 끊었다. 하지만 병원에서는 어떠한 연락도 없었다. 병원에 다닐 적엔 의사를 쓸데없이 사적으로 대하는 바람에 숨기는 게 많은 동생이 이해가 되질 않았는데, 병원을 끊고 나니 그래도 2년이나 상담했던 동생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는 게 내심 서운했다. 한 때는 동생의 사회생활에 거의 전부였던 의사에게 동생은 그저 한 명의 환자 (그것도 정신병자)였을 뿐이라는 아주 당연한 사실이 생생히 와닿았다. 슈퍼나 식당을 가더라도 2년을 부딪히면 정이란 게 생기는데, 사적인 관계만큼이나(혹은 그보다 더) 깊은 내면을 공유한 의사와는 되려 조금의 사적인 교류도 없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의사는 수많은 정신병자들을 상대하며 그들의 아픈 세계에 동화되지 않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을 테다. 그렇지 않았다면 동생이 나를 미치게 하듯, 그도 미쳐버렸겠지.


그래서 친절한 로봇 의사의 정신은 안녕하신가. 사적인 안부를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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