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병 알리기
동생은 정신 병원을 싫어했다. 사회적 인정 욕구가 큰 동생에게 정신 병원은, 사회적 인식보다 더 크게 나빴다. 그런 동생이 정신병원에 첫 발을 들여놓은 것은 이미 동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정신병자'로 각인된 후였다. 전혀 모르고 있었지만, 동생은 아주 어렸을 때부터 강박증이 있었다고 했다. 언젠가부터 동생의 머리속에서 생겨난 어떠한 말들은, 어느새 동생을 완전히 지배했다.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동생의 기억이 남아있는 시간에는 언제나 그 말들이 존재했다. 그 말들이 자신에게만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된 동생은 그게 정신병인 줄도 모르고, 그저 자신이 신에게 선택받은 특별한 인간인 줄 알았다고 했다. 동생의 신은 동생에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시했고, 그러면서도 자신의 존재를 외부에 알리지 못하게 했다. 만약 자신의 존재를 들킬 시엔 보복을 당할거라고 협박까지 해가면서. 신은 마치 학교폭력 가해자 같았다. 그래서 누구도 동생의 병을 알아채지 못했고, 신은 점점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할 수 있었다.
신이 요구하는 수위는 점점 높아졌고, 급기야 화장실이 급할 때도 횡단보도를 반복해서 건너라고 지시하는 바람에 동생은 대낮 길 한복판에서 바지에 실수까지 했다. 상황이 이 지경에 이르러서야, 주변 사람들은 동생이 정신적으로 엄청난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가족들 중엔 그 누구도 동생의 병을 알지 못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전화가 왔다. 학교 선생님은 동생이 이상 행동을 하니, 정신병원에 데려가보라고 권유했다. 그 말에 부모님은 당황했고, 부모님이 당연히 알고 있을 줄 알았던 선생님은 당황한 부모님의 모습에 더 당황해했다.
당시 나는 몇 년째 외국에 있었고 둘째 동생은 다른 도시에서 취업했기에, 우리 남매는 자주 보지 못했다. 부모님이 계셨지만 두 분 다 워낙 바쁘셨다. 게다가 동생이 고등학교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동생의 주거공간도 분리된 상태였다. 2주에 한 번 오는 집에서 자주 손을 씻고 전등을 반복적으로 껏다 켜는 등의 부자연스런 행동이 발견되긴 했지만, 부모님은 그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는 않았다. "왜 굳이 손을 여러 번 씻냐."라고 나무라기만 했을 뿐, 그 이유를 묻지도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의외로 동생은 흔쾌히 병원 치료를 받아들였다. 오히려 먼저 '너무 힘들다'며 병원에 보내달라고 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족에게 이끌려 반강제로 병원에 오는 것과 달리, 동생은 제 발로 정신 병원에 가길 원했다. 스스로 병원치료의 필요성을 인지하기 전에 무관심한 가족들이 먼저 동생을 병원에 데려가지 않아서 그랬겠지만, 그래도 정신병원 치료를 받겠다는 게 대견했다. 내 아버지는 그것조차도 못했으니까.
오랫동안 나는 알코올중독인 나의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데려가기 위해 노력했다. 술담배를 끊겠다는 약속은 매년, 아니 얼굴을 볼 때마다 받아냈지만, 여전히 내 아버지는 중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나는 내 아버지가 결코 자의로 중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 그래서 병원의 도움을 받아보길 권했지만, 그때마다 아버지는 '이젠 날 정신병원 취급하는 거냐며', 화만 냈다. 아버지는 스스로 알코올중독임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를 정신병원에 데려가길 포기한 결정적인 이유는, 치료에 대한 확신이 없었서였다. 더이상 기대하기도 실망하기도 지친 아버지에 대한 비관적인 생각 때문이기도 했지만, 객관적으로도 그랬다. 나는 정신건강 수업을 찾아 들을 정도로 아버지의 병에 관심이 많았다. 내 아버지가 내뱉는 말들은 전문서적에 서술된 중독자들의 말들과 소림 끼치게도 같았다. 누가 우리 아버지를 관찰하고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할 정도로. 반면, 지금까지 밝혀진 치료법 중엔 뭐 하나 뚜렷한 게 없었다. 대신 '본인 의지가 없으면 고치기 어렵다.', '치료가 오래 걸리며, 치료확률은 매우 낮다.', '치료가 되었다 하더라도 다시 재발할 확률이 매우 높다.', '알코올 중독에 완치는 없다.' 는 글자들이 눈에 박혔다. 어차피 치료가 어려운 거라면 포기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이라 위로하며, 나는 내 아버지를 포기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죄책감으로 나는 동생의 병원치료에 집착했다. 정신병원에 발도 못 들여놓은 내 아버지와는 달리, 자의로 병원을 찾은 동생은 반드시 나아질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동생은 3년째 꾸준히 병원에 다녔음에도, 치료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 사이 오히려 병은 더 악화되었다. 내가 따지고 들자, 의사가 말했다. "동생은 타인에 대한 불신이 너무 커요. 그래서 약물과 병원 치료에 대한 불신도 큽니다. 이런 경우 치료 효과를 보기 어려워요. 상담 치료도 마찬가지로 효과가 없을겁니다." 의사는 아버지의 병원 치료를 포기했던 이유와 같은 말을 했다.
그럼 뭐 어쩌라는 건가. 저게 의사가 할 말인가. 뭐 저딴 무능하고 무책임한 소릴 하는 거지. 하는 분노가 일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매달릴 수 있는 건 의사뿐이었다. 그래도 전문가니까. 나보다는 나을 거니까. 나보다 나은 것들을 할 수 있겠지. 그러니까요. 선생님. 제발 제 동생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