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중학생이었을 때의 일이다. 당시 대학생이었던 나는 동생 친구의 과외를 맡았다. 밤 10시, 동생 친구의 집에서 시작된 과외는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끝났다.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와 과외까지 했던 나도 피곤했지만, 동생 친구는 나보다 더 피곤해 보였다. 숙제는 항상 밀려 있었고, 과외 시간 내내 멍해있거나 졸기도 했다. 불성실한 학업 태도를 혼내보시도 했지만, 지친 아이를 마냥 혼낼 수만은 없었다.
아이는 이미 많은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매일 늦게까지 학원을 다녔고, 집에 와서도 쉴 틈 없이 바로 나의 과외 수업을 받아야 했다. 주말에도 숙제 때문에 놀 수 없었다. 분명 중학생 아이에게 무리한 일과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그의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지금 아이가 많이 힘들어합니다. 학원을 줄이시거나, 제가 하는 과외라도 그만두게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피곤에 찌든 하루 끝에 진행된 나의 수업은 아이의 피로만 가증시킬 뿐, 학업적으로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대로 과외를 계속하는 건 양심에도 어긋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화가 난 목소리에 날카로운 말뿐이었다.
“쟤가 뭐가 피곤해요! 고작 수학, 영어, 과학학원 3개에, 일본어 학습지 하나 할 뿐인데! 요즘 그 정도도 안 하는 애가 어디 있나요? 그러니 선생님도 마음 약한 소리 하시지 마시고, 숙제 안 해오거나 졸면 단단히 혼내주세요.”
너무나 강경한 말투와 태도에 나까지 기가 죽어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했다. 아이를 위해서라는 어머님의 강압적인 태도가 아이에게 해가 되었지만, 어머님은 그걸 전혀 모르시는 듯했다. 어머님이 힘들어하는 아이를 밀어붙이지만 말고 좀 더 이해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동생의 숙제를 도와주던 어느 날이었다. 동생은 여러 번 설명해 준 문제도 제대로 풀지 못했다. 답답한 마음에 동생을 한심한 눈초리로 쏘아보며, '왜 가르쳐 준 문제도 못 푸냐'라며 면박을 줬다. 동생 친구에게는 몇 번이고 다시 가르쳐 줄 수 있었지만, 동생에게는 그런 인내심이 생기지 않았다. 심지어 동생 친구와 비교하며 동생의 자존심을 긁기도 했다. 문득, 나에게서 동생 친구 어머니의 모습이 보였다. ‘저렇게 말을 하면 아이에게 상처만 될 텐데’ 하고 속으로 생각했던 동생 친구 어머님의 말들을, 내가 똑같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순간 늘 안타까웠던 풀이 죽은 동생 친구의 얼굴과 내 동생의 얼굴이 겹쳐 보였다. 그리고 깨달았다.'그 누구보다도 동생을 망치고 있는 건 나구나.'
아들과 친구인 내 동생도 잘 아는 어머님은 종종 “우리 아들이 딱 너희 동생만큼만 이라도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내 눈에 동생은 한없이 부족해 보였다. 어머님은 내 동생을 칭찬했지만, 정작 나는 동생을 칭찬하지 못했다. 오히려 매사에 행동이 칠칠맞은 동생보다 차분한 동생 친구가 더 의젓해 보였다.
소중한 사람에 대한 그릇된 욕심은 장점이 아닌 단점만을 보게 했다. 그래서 칭찬이 아닌 비난만을 퍼붓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동생 친구를 대하듯이, 그의 어머니가 내 동생을 대하듯이 서로의 가족을 대했더라면 어땠을까. 동생과 동생의 친구에게 필요했던 것은 비싼 과외도 학원이 아닌, 가족의 따뜻한 칭찬과 격려였을 것이다.
오늘은 사랑하는 동생에게 앞으로 더 잘할 수 있다는 응원과 그동안 충분히 잘했다는 칭찬의 말을 건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