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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혜연 Apr 11. 2023

이렇게 뵙게 돼서 유감입니다만

전세사기 피해자 모임

4월 2일 일요일

 전날 붙여둔 포스트잇을 보고 같은 건물에 사는 세입자들도 피해자 단톡방에 모였다. 서로가 만들어내는 생활소음에 대한 짜증만 가득했던 사이. 소통이라고는 공동 현관 앞에 붙은 '문 앞에서 담배 피지 마세요.' 쪽지가 전부였던 . 이웃이라 불편했던 이웃들을 퇴거 위기에 처해서야 처음 마주하게 되었다.


 집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틀 전, 2년 간 이곳에 살았던 동생은 입주할 때부터 살고 있었다는 302호의 문을 처음 두드렸다. 확정일자가 가장 빠른 302호가 배당금 1순위였기에, 동생은 자신이 알아낸 정보들을 맘 편히 공유했다. 그날 저녁도 함께 먹었다는 동생에게 그가 누구냐고 묻자, 동생은 주차장에 유일한 차량인 모닝 차주라고 답했다. 몇 달 전 내 자전거 뒷바퀴를 펑크 낸 놈이지 않을까 의심했던 모닝 차주, 그 사람이 302호에 사는 줄은 처음 알았다.


 주거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큰 일이였다. 특히 이런 다가구 빌라에서는, 굳이 알고 싶지 않은 서로에 대한 많은 것들을 알게 된다. 주소, 집 구조, 보증금, 차량, 생활 및 수면 패턴, (택배나 생활 쓰레기 등으로 파악할 수 있는) 식성이나 구매 성향, 심지어 애인의 유무까지도. 여기에 더해 이번 일로 얼굴, 이름, 나이, 직업 등 기본 정보까지 알게 되었으니, 어쩌면 오랜 친구보다도 더 잘 아는 사이일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302호와 만나지 몇 분만에 훅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그러자 괜히 보증금 반환소송 중이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은 게 서운했다. 물론 그땐 집이 경매에 넘어가게 될 줄도, 말 한번 섞은 적 없는 옆집에 굳이 그 껄끄러운 사실을 알릴 필요도 전혀 없었겠지만. 작년 말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던 302호는 세입자가 구해지면 바로 보증금을 돌려주겠다는 집주인의 말을 믿고 기다렸지만, 한 달 전부터 연락이 되지 않아 '보증금 반환소송'을 진행중이라고 있다고 했다. 그 때는 집주인이 우리 전화는 받았기에, 동생은 집주인에게 전화를 걸어 302호를 바꿔주었다. 동생의 전화를 302호가 받을 거라 예상치 못한 집주인은 당황한 목소리로 '미안하다'라고 말하고는 그대로 전화를 끊어버렸다.


 302호를 비롯한 다른 많은 세입자들을 대면했다. 대체적으로 우리와 의견이 비슷했던 302호와 달리, 경매를 대하는 태도는 각양각색이었다. '올 게 왔구나'하고 무덤덤하게 받아들였다는 사람부터, 사기당한 게 쪽팔려서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겠다던 사람,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 좀 해달라는 사람, 자기는 빠질 테니 부모님과 연락하라는 사람, 어떻게서든 집주인을 징역에 살게 하겠다는 사람, 이 일에 얽매이고 싶지 않다는 월세입자까지.


이 사태에 대한 의견도 분분했다.


1. 집주인이 이자를 상환할 거라고 하니 일단 희망을 가지고 기다려보자

vs 건물이 경매에 넘어갔다는 건 집주인의 재정 상태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것.


2. 나머지 보증금을 돌려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vs 집주인 건물들 입주자 대부분 전세임을 감안하면, 기대할 수 있는 건 최우선 변제뿐


3. 집주인이 애초부터 작정하고 사기를 친 나쁜 사람이다

vs 분명 무슨 사정이 있을 것.


상반되는 의견들과 수많은 추측들이 오갔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모두 피해자란 사실이었다. 금전적인 피해를 배제하더라도 이 상황 자체가 피해였다. 집은 경매에 넘어갔고, 집주인은 연락이 되지 않고, 부동산 중개인은 나 몰라라 하는데, 계속 이곳에서 살아야 하는 지금 이 상황.


  보증금 반환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집주인에게 월 5만 원의 관리비를 지불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주거를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했다. 집주인이 관리마저 포기한다면 수도와 인터넷, 공용 공간 청소, 시시티브이 보안 등 여러 주거 문제들이 닥칠 터였다. 이건 분명 모든 세입자들에게 떠맡겨진 재앙이었다.


 어쨋거나 이를 계기로 히키코모리였던 동생은 이틀동안 지난 2년간보다도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40명 이상의 피해자가 모인 단톡방의 방장이 되었다. 평생 볼 일 없었으면 더 좋았겠지만, 이 상황을 함께 겪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꽤나 큰 위로가 되었다.




 동생과 내가 경매 소식에 타들어가는 동안, 정작 보증금의 주인인 엄마와 여동생은 강 건너 꽃구경이였다. 가족들이 보내온 꽃사진들을 보고 있자니 괜히 억울했다. 도무지 꽃이 눈에 안 들어온다는 동생을 두고, 동네 언니와 인천대공원으로 향했다. 꽃까지 못 보면 더 억울할 것 같아 기어이 나왔건만, 그 마저도 더 이상 손해 봐서는 안된다는 의무감일 뿐이었다.


 결국 벚꽃은 포기한 채, 그대로 차를 돌려 카페로 향했다. 언니가 사준 케이크 2조각을 거의 혼자 다 먹고도 허해서 케이크를 더 주문했다. 하루종일 굶다가 들어간 케이크에 속이 미슥거렸고, 뜨거운 신물이 올랐지만 커피로 눌러 내렸다. 그러면서 엄마가 몇 년간 요양보호사로 일했던 만촌동 할머니의 변호사 아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부모님의 동창인 법무사의 전화를 받았다. 끊임없이 울려대는 피해자 단톡방은 신경 쓰여 핸드폰에 눈을 고정한 채로, 내게 닥친 일들을 시간 순서없이 뱉어대는 나에게 언니가 말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뭐든 내 뜻대로 다 할 수 있을 줄 알았어. 그래서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외로웠어.

세상일이란 게 내가 잘났다고 다 잘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못났다고 잘 안 되는 것도 아닌데. 그러니 지금도 혼자 너무 외로워할 필요가 없어."


전세사건이 터지고 주말 내내 전화기가 쉴 틈 없이 울렸지만, 그 말은 다른 어떤 말보다도 따뜻한 위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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