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부
나는 지금 탈출을 준비 중이다. 기초적인. 과학지식을 통해 북쪽으로 무작정 갈 생각이다.. 그리고 내가 여기서 몇 년 살아봤는데 저먼발치의 수평선 너머를 봐도 파도가 거세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요. 며칠 동안 배를 만드느라 고생 좀 했다. 다행히 배를 만들 수 있는 도구는 충분했다. 매번 드는 생각이지만 무엇인가가 나를 이 무인도에 처넣지 않는 이상 모든 물품이 구비된 건 아니지만 적잖이 필요한 도구들이 널려있다는 게 항상 의아했다.. 나를 이곳에 썩히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모종의 계획을 가지고 이곳에 날 넣었고 또 빼내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말 돼 안 되는 생각을 요 근래 들어 종종 했었다...... 뭐 혼자 있는데 무슨 생각을 못하겠나???
어찌 됐든 나는 지금 생각해도 우습고 생뚱맞지만 자살하기 위해 태풍이 부는 날 보트에 타고 브레이크를 빼고 하늘을 보며 죽음을 기다렸다는 사실이 너무나 웃겨 웃음이 나왔다. 난 정말로 죽고 싶긴 했을까? 다시는 육지땅을 밟고 싶지 않을 만큼 사람이 무서웠고 세상이 무서웠고 말들이 무서웠기에 죽음만이 길인줄 알았지만 내 내면 속에는 살고 싶은 마음이 한편에 자리 잡아 멍하니 죽고자 하는 나의 계획에게 울며 바짓가랑이를 잡은것 아닐까?? 나는 숱하게 많은 사람들을 설득해 왔고 죽음 직전에 마지막 동아줄을 잡자는 심정으로 정신과 상담을 잡은 내담자들을 보면서 어떠한 상황이길래 이 하나의 시도인 인간이, 인생이라는 애매한 실험을 하고 있는 한 인간이 오죽하면 죽기를 결심할까 하는 의문들을 가져왔었다. 말했다시피 나는 다른 사람보다 예민함 감수성과 타인의 감정을 읽고 느끼는 능력이 탁월했기에 정신과 의사로서 그들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들어줄 수는 있었지만 어쩔 수 없이'나'는 '너'가 될 수 없기에 죽음이라는 그들의 선택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내가 그 입장이 되니 골 백번 이해가 갔다. 각자 사정이 다르겠지만 지금 이 순간 지옥보다 더 고통스럽고 고통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른다는 숨 막히는 상황과 미래에 희망이 사라질 때 느껴지는 무력감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기에 어쩌면 죽음이 더 나은 선택이라고 믿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자살은 그럴듯한 선택이 될 수 없다는 게 지금 내가 깨달은 진실이다. 흔히들 안락사니 존엄사니 떠들어 대시만 끝까지 살아봐야 한다.. 문제가 있으면 해결하고 방도를 찾고 삶의 이유를 찾아 나서야 한다.. 너무 무책임한 말이냐고? 그러면 어쩔 건데? 다른 방도가 있어? 없다. 꾹 참고 상황을 벗어나고 이겨낼 방법들을 가만히 생각해내야 하고 생각뿐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 그게 그 지옥을 사는 사람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그 무엇이다. 나의 이유는 죄사함이다.. 반드시 벌을 받는 것 그래서 양심에 가책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내가 사는 이유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야 하는 이무인도를 탈출해야 하는 이유다.
난 반드시 나의 살인을 자백할 것이고 양심의 가책을 내려놓을 것이다.. 무책임하게 생각할 수 있다. 남겨진 자식들과 죽은 자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그런데 내가 어쩌겠나. 도대체가 어쩔 도리가 없다. 다시 되돌아가고 싶고 돌이키고 싶다. 민철이와 나은씨에게 너무 미안하다. 두아이의 엄마를 죽여놓고 나름의 논리로 그 살인을 정당화 한 나 자신이 너무나 싫다 하지만 도저히 이 짓눌림이 싫다. 얼굴에 철판을 깔아야 한다면 시멘트로 고속도로까지 깔더라도 나는 이 심적 고통에서 이기적이지만 벗어나야겠다. 드디어 배를 띄었고 나는 그 배에 탔다. 조수 간만에 차로 썰물이 돼서 보다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나는 혹여나 내가 지금까지 봐왔던 무인도 근처 바다는 파도 하나 없이 잔잔했지만 무인도에서 바라본 수평선 너머에 는 숱한 파도들이 넘실대고 그로 인해 내 배가 뒤집어져 내 삶이 이 바다 위에서 마지막을 맞는다고 해도 나는 여한이 없다. 분명 나는 이 무인도 보다 더갑갑하고 보다 두껍게 갇혀있는 감옥으로 가는 것이지만 그래도 옳은 일을 하기 위해 이 바다 위로 목숨 바쳐 나왔다는 것이 나에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는 명분이 됐다.
계속해서 배를 저었고 배 위에 생수통으로 5통을 정수한 물로 채웠지만 혹시 몰라 아껴마시고 있고 음식이라 함은 새고기와 생선을 구워 이파리에 담아 왔다. 아무리 버틴다고 해도 10일이 최대치 이다. 그 안에 육지를 보지 못한다면 영화에서 본 것처럼 누군가에 의해 구조되지 않는다면 나는 이바다에서 물고기 밥이 될게 뻔하다. 아니면 이배가 나에 관이 되어서 뼈만 앙상하게 남아 하늘을 날아다니는 새의 먹이가 되겠지. 나는. 우울하고 끔찍한 생각들을 떨쳐버리고 계속해서 배를 저었다. 썰물이 강할 때쯤은 노를 내려놓고 잠을 청했다. 그렇기를 반복하기 2이틀째 되는 날 정말 기적적으로 나는 육지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물질을 하는 해녀들이 보였고 마치 멀리서 보면 물개처럼 보였다. 나는 그녀들이 새참을 먹고 있는 바로 그때에 육지에 배가 다다랐다. 해녀들은 대략 7명 정도 있었고 나를 보면서 자기들끼리 여러 말을 오가며 대화를 나누는 것이 보였다. 육지 가까이 도착하자 그녀들은 내쪽으로 우르르 몰려와서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나의 꼬라지는 머리는 산발이 되어있었고 얼굴은 수염이 양반처럼 길게 늘어져 있는데 개가 핥은것 처럼 오물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그녀들이 보기에 혹시나 염전노예가 탈출했거나 하는 의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봤다.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사람이다. 내 앞에 사람다운 사람. 인간다운 인간이 새까만 해녀복을 입고 나에게 사람의 말을 하며 다가왔다. 나는 어떠한 낯가림이나 부끄러움 없이 그녀들을 부둥켜안고 울었다. 그녀들에게서는 아리따운 여인의 향긋한 꽃향기가 나진 않았지만 그보다 더 친숙한 짠내와 바다향이 났다. 불쾌하기는 커녕 친근했고 내 이루 말할 수 없는 이야기와 그 안에 담긴 감정들을 오직 그녀들이 뿜어내는 냄새만이 움츠려진 나의 감정과 느낌과 내 존재를 안개처럼 감싸줄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그녀들의 도움으로 경찰에 인계 됐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외모를 어느 정도 사람답게 다듬었다. 역시 이 기회를 놓칠리 없는 기자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었고 나에게 있었던 일들을 한 톨도 남기지 않고 듣겠다는 전투적인 태세로 질문해 왔지만 나는 예전이라면 까무러칠 정도로 나의 신분상승 도구로 카메라와 기자들을 이용했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들의 무료함과 무의미함을 몸에 아로새겼기 때문에 딱히 감흥이 없었다. 그리고 은연중에 나의 이 이야기를 논픽션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단 한번 인터뷰를 통해 더이상 언론 노출을 삼갈 것이고 인터뷰도 응하지 않고 내게 있었던 일들을 책으로 출간할 계획이라고 못을 박았다. 아직 시작도 안했지만 감옥에 가게 될 텐데 옥중 서신이 되지 않을까??
드디어 경찰이 찾아왔다. 그들에게 나의 범죄를 자백했다. 여경 한 명 중년의 남경 한 명이 이었는데 나의 자백을 듣자 적잖이 놀랐는지 여경과 남경은 서로 아무 표정 없이 눈을 마주치고 메모를 했다. 그렇게 병원에서 어느 정도 회복한 후에 일주일후 나는 경찰서로 가서 제대로 된 조사를 한후에 간절히 원하던 감옥을 가게 됐다. 그리고. 경찰에 양해를 구해 다훈, 다희를 찾아가서 무릎을 꿇었다. 지금 나이가 다훈이가 10살 다희가 9살9 이었다.. 벌써 아이들이 이렇게 커버렸다...
난 그 아이들을 보자마자 눈에 눈물이 흘렀고 무릎을 꿇고 자백을 했다. 아직 20대가 되려면 멀었지만 분명 내앞에 있는 우주보다 소중한 다훈,다희는 그 나잇대가 느끼는 학생이라기보다는 또래에 많지는 않지만 종종 보이는 성숙하고 어른의 느낌을 풍기며 세상을 또래보다 먼저 살아낸 학생들, 본인이 그렇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겠지만 부득이하게 그렇게 상황이 펼쳐져 적응해야만 했고 저절로 삶을 견디는 법과 주변사람들에 말에 무덤덤해지는 법과 나서야할 때와 멈춰있어야할때 말해야 할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귀신같이 알아채는 눈치도 있는 그런 나이 어리지만 어른 같은 존재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애들은 내가 자신들의 부모를 죽였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 하지 않아 하는 것 같아 나는 의아해하던 찰나에 다훈이와 다희는 갑자기 나에게 달려와 나를 끌어안고"다 알고 있어요 삼촌 미워하지 않아요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삼촌에게 가기 전에 우리에게 편지를 남겨두고 갔어요" 다훈이가 내게 많이 해진 편지를 한통 건넸다. 주변의 경찰은 그 편지를 혹시나 해서 확인할까 고민했지만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더니 어떤 제제 없이 그려려니 하고 넘어갔다. 어린 두 아이들은 오히려 내게 위로의 말들을 건넸고 나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과 도대체가 형언할 수 없는 느낌과 생각과 감정을 통곡 말고는 달리 표출해 낼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고 생각할 겨를도 없이 '꺼억꺼억'소리를 내면서 눈물을 흘렸다. 요 며칠 동안 숱하게 울었는지 너무 지쳤지만 울다가 쓰러지기를 각오한 사람처럼 그리고 내가 멈출 수 없는 그 무엇처럼 눈물은 내 핏속에서부터 흘러나왔다. 나는. 이제 정말로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주 면회 온다는 말을 했고 나는 참으로 소인배답게 오지 말라는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못했다. 결국 사람들 속에 들어오니 내겐 사람이 필요했다.너무나 인간이 그리웠다. 데이비드가 듣는 다면 서운하겠지만... 아 그리고 이제야 말하지만 내게 내려진 판결은 30년 이었다. 굳이 자백을 하려고 무인도를 탈출했다는 점을 감안해서 무기징역은 면했다. 나는 무기징역이 처해져도 사형이 처해져도 절대 항소할 마음이 없었다. 지금 나이가 41이다. 71이 돼야 출소되겠지만 나는 그동안 감옥에서 출소되면 밖에 나와 쥐 죽은 듯이 살되 아직 정해지지 않았지만 다훈이와 다희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려는 다짐으로 감옥 생활을 버텨야겠다고 생각 했다. 나는 죗값을 치렀다는 사실에 마음의 짐이 덜어지는 느낌을 받았고 그렇게 무서웠던 다훈, 다희에게 너희들의 엄마를 삼촌이라는 작자가 죽였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가장 큰 부담이었지만 이미 그 둘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 묘하게 안심하게 만드는 요소였다.
그리고 민망한 이야기지만 지현 씨가 면회를 왔다. 그녀는 이 못난 범죄자를 잊지 못해 결혼도 못했다고 했다. 나는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어떤 단어로 표현해야 하나 막막했다.. 왜 나 같은 인간을 잊지 못했냐고 마지막에 그렇게 모질게 대하고 모욕을 줬건만 왜 나를 잊지 않고 다른 좋은 남자를 찾아 떠나지 않았냐고 칸막 안에 있는 나는 수화기를 넘어 지현 씨를 나무랐지만 지현 씨는 눈물을 흐르면서 자신의 마음을 도대체 그렇게 움직여지질 않는다며 어쩔 수 없다고 연거푸 울음 때문에 수화기를 귀에 갖다 댔다 땠다를 반복하면서 자신의 느끼는 마음 그대로를 내게 고백했다. 나는 또 속으로 기쁨의 감정이 올라왔다. 그렇다고 그걸 표정에 옮겨 담을 수 없기에 찡그리고 무표정한 표정을 유지했다. "어 차피 라니씨 나는 이미 포기했어요 숱한 남자들이 내게 추파를 던지고 많은 선자리가 있었지만 제 마음을 따를 거예요 그리고 다른 건 다 집어 치우 더 라도 오빠가 살아있다는 사실이 내겐 무엇보다 기쁜 사실이에요.. 죽은 줄로만 알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살아 돌아왔잖아요 고생했어요 오빠 보고 싶었어요.. 정말로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보고 싶었어요""
나는 마냥 기쁘지 않았다. 너무 미안했고 염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 아름답고 착하디 착한 여자를 설득해야만 했다.
"지현 씨. 그리고 알다시피 난 살인자야 두 아이의 엄마를 무참히 살해하고 유기했어. 그리고 그걸 내가 아닌 듯 혐오스러운 방법으로 그 사실을 덮었고. 그렇기 때문에 30년 동안 감옥에서 살게 되는데 어떻게 하려고 그래 도대체 지현 씨 지금이라도 생각을 고쳐먹자 지현아" 나는 마지막에 그녀의 이름을 세차게 불렀다.
나는 속으로 아쉬운 마음이지만 그래야만 하는 말들을 용기 내어 말했고 분명히 그 말에는 진심이 담겨있었다. 나는 내면에 나의 옹졸하고 이기적인 마음들을 어떻게든 내리누르며 말을 했다. 하지만 지현 씨는 단호했다
"아니야 오빠 난 가족들에게 말했고 오빠가 죽은 줄로만 알았을 때도 나는 평생 박라니의 약혼녀로 남고 싶다고 다른 남자의 여자가 되고 싶지 않고 그럴 맘도 없다고 못을 박았고 주변에서 어느 누구도 나에게 강요하지 못해 왜냐하면.. 부모님에게 한 번만 그 얘기하면 죽어버리겠다고 협박했거든."지현 씨는 마지막에 민망했는지 약간의 미소를 지었다. 이 미소가 참 그리웠다. 참 이쁜 미소다. 지현씨는 수수하고 순박한 요즘 정말로 보기 드문 미소를 지닌 여인이다. 나는. 이 수수하고 새하얀 피부를 가졌고 맵 실한 몸매와 포근한 향을 풍기는 이여인에 입에 입 맞추고 싶은 욕구가 강하게 올라왔지만 나는 애써 그 감정을 부정하며 이제 시간이 돼서 들어가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독방으로 들어갔다. 마지막에 눈도 마주치지 못했고 지현 씨는 들릴 듯 말듯한 목소리로 "또 올게...'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독방에 들어가서 침대에 누워 지금 상황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가 됐을 때 다훈이와 다희가 건넨 민철이에 편지를 꺼내 읽었다. 편지내용은 이랬다
'라니야 네가 이 편지를 읽고 있을 때는 나는 세상에 없을 것 같아
알아 네가 내 아내를 죽인 것 그것에 대해서 널 용서할 마음이 추호도 없어. 나은이와 나는 그렇게 살가운 사이도 애틋한 사이도 아니었지.. 그리고 이 여자는 나를 두고 숱한 남자들과 잠자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그런데 도저히 말을 못 하겠더라.. 왜 결혼한 여자가 다른 남자들과 그런 짓을 할 수 있냐고 못 묻겠더라고. 그런 걸 묻기에 내가 너무 초라했거든 스스로가 너무 미천하고 열등하고 나약해서 그럴 용기가 도저히 나질 않더라...그렇게 몇 년을 지냈어. 더 나아지려고 숱하게 노력했지만 상황은 점점 꼬여만 갔고 죽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애들이 눈에 밟혔어. 너도 알잖아. 너나 나나 부모에 사랑이 먼지 모르잖아.나는 살아계신다지만 없는거나 마찬가지 였지. 사실 뿌리자체가 없는 것과 진배없는데 내가 어떻게 튼튼한 인생을 살 수 있겠어.. 아니 변명이지. 맞아 변명이야. 너나 준수를 보면 그러한 출생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동기삼아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했지만 나는 핑계만 댔지.
나는 아내도 잃고 빚쟁이야. 그런데 담아 네가 내 아내를 죽인걸 인질 삼아 너를 협박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 다만 우리 다훈, 다희는 내 밑에 있으면 고아보다 못한 인생을 살수 밖에 없어 뻔해. 나는 이 아이들이 평범하고 예의 바르고 올곧게 살게 하고 싶어. 뭐. 행복한 인생만을 살 수 없겠지만 그래도 덜 상처받고 덜 아프고 남들처럼 만 살게 하고 싶어 그러면 나는 죽어야 해 죽기 싫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들을 위해서 내 목숨에서 호흡이 끊겨야만 해 염치없지만 제발 부모 둘 다 없게 되는 다 훈이와 다희좀 보살펴주라 그럴 수 있을까? 부탁한다. 돈이 없어서 끼니를 걱정하게 하고 싶지 않아. 네가 키워준다면 그럴 일은 없겠지. 평생 먹여 살라는 얘기가 아니고 제발 성인이 될 때까지만 부탁해 그다음에는 자기들이 알아서 살아가야지 난 이제 가볼게'
나는 그 편지를 보면서 다시 한번 흐느껴 울었다. 베개애 입을 대고 주먹으로 침대를 치면서 울고 또 울었다.. 내가 너무나 미웠고 그 철저히 을이 되어 나에게 느꼈을 민철이의 수치와 모욕감이 결국은 부메랑이 되어 내게 회한의 감정으로 돌아왔고 그럼에도 그 순하디 순한 마음씨 때문에 싫은 소리하나 없이 나에게 뺨을 맞으면서도 배시시 웃어 보이던 민철이에게 가슴이 산산조각이 날 만큼 아파왔다. 이 사묻힌 슬픔과 그리움은 어느 누구도 알 수 없는 마음이었다. 나는 다짐 또 다짐했다. 어떻게든 이감옥에서 사람다운 사랑이 되자고. 어른이 되고 내가 상담했던 그 딸아이를 불륜남에게 난도질을 당해 잃은 그 영웅처럼 나는 70이 돼었든 80이 돼었든 다훈이와 다희에게 그리고 하늘이 허락한다면 지현 씨를 위해서라도 올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목표가 생겼다. 이 열정은 분명 시간이 지나면 열기는 식어지겠지만 나의 마음 따위 감정 따위는 철저히 무시한 채 꾸준히 몸과 마음을 단련해서 더 나은 사람이 돼야지 하는 다짐을 내 가슴팍에 준마에 새긴 인주처럼 지워지지 않게 박았다.. 그리고 밖에 두었던 나의 재산들을 다훈 다희 앞으로 보내놨지만 한 번에 찾을 수 없게 했고. 내가 가진 경제 상식과 돈관리 능력하나는 증권가 최고 매니저들보다 상위 호환이 되기에 다훈이와 다희에게 자본주의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 수 있게 경제적 자유와 돈을 모으고, 벌고, 늘리고, 쓰는 방법을 꾸준히 이 감옥을 통해서 전화와, 편지를 통해서 가르칠 생각이다. 그렇게 나는 어느새 무릎을 꿇고 손을 모으며 그러한 다짐들을 입으로 소리 눈을 감고 읇조리고 있었다..
10년 후
무인도에서의 시간의 정확히 두 배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교도소 밖에서 나를 비추는 햇빛이 이렇게 포근한지를 처음 알았다. 30년이라는 형이 내려졌지만 다훈이와 다희가 재판장 앞에서 나의 감형을 무릎을 꿇고 간절히 사모했고 내가 오만해기지 전에 의사로서 내담자들을 사람답게 대했고 그들의 아픔과 사정들을 귀를 열어 그들의 존재자체를 들어줬을 때 나 때문에 삶의 희망을 찾은 내담자들이 다 함께 법원에 탄원서를 냈고 법원은 언론에서 나에 대한 동정론이 일자 등쌀에 못 이겨10년이 감형시켜 줬다. 그렇게 나는 지현 씨가 건네는 두부를 먹으면서 "김치는"이라는 유머 섞인 농담을 건넸다... . 다시는 울지 않겠다고 숱하게 다짐했겠만 눈물이 흘렀고 이 눈물을 나를 비추는 햇빛처럼 따사로웠고 담백했고 내 마음에 불순 물을 말끔히 씻겨낸후 다시 채워 노은 말디 맑은 물에서 건져 올린 눈물이었다. 그리고 너무나 감사한 일은 다훈이와 다희는 나를 따듯하게 안아 주었다. 나는 그게 참 고마웠다.. 또한 약속대로 나는 나은씨와 민철이가 안치된 납골당으로 같이 향했고 두명의 유골함 앞에 무릎꿇고 미안하다며 진심 어린 사과를 건넸고 옆에 있던 다훈이와 다희 그리고 지현 씨와 서로 부등켜 안았다 나는 이제 남은 인생을 지현씨와 못다 한 결혼식을 올리고 작은 책방을 열어서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파는 사람이 되고 싶다.. 또 옥중에서 다 썼지만 내가 있었던 일들을 써 내려간 참회록을 출소 후에 출간하자는 다짐을 했었다. 왜냐하면. 그 안에서 살아야 할 동기를 삼기에 출소 후에 출판하는 목표 또한 갑진 동기가 되어줬다.. 이제 뭔가 홀가분한 것 같다. 악몽도 더 이상 꾸지 않았고 종종 꿈속에서 나타난 민철이는 꿈속에서도 내게 더할 나위 없는 좋은 친구였다. 그리고 내서점에 최고 단골이 되겠다고 약속을 받은 사람은 내 게 남은 유일한친구 준수였다. 모든 게.제자리로 되찾은 느낌이다. 놓친 부분도 많았고 굴곡진 인생길이었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살아왔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