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답하지 않는 잔잔한 강의 물 밑에서
안전한 주거환경을 둘러싼 욕망, 연일 폭등하는 수도권의 집값, 지역 소멸 사이에 강물은 생명을 안고 천년만년 흐를 수 있을까요. 개발과 발전을 위해 도시 재생, 개발, 관광, 문화 사업은 유입과 확산을 기대하지만 우리에게 공동의 것을 공유하고 하는 감각은 어디에 있을까요. 공론장 <물밑작업>은 부여와 전주에서 진행한 도시계획을 둘러싼 뒷-담화를 담았습니다.
서울의 소멸과 지역의 생성 그리고 토종볍씨
여느 관광지처럼 매끈하게 다듬어진 거리, 많은 관광객이 모여드는 전주 한옥마을에 3평 남짓 작은 논이 나타났다. 한옥마을에 위치한 문화예술공간 '사용자공유공간플랜C'에서 개인과 사회가 맞닿는 삶터를 사유하기 위해 한옥마을 내 구들장논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했기 때문이다. 플랜C에서 구들장논을 만드는 '굳이백배미'팀은 큐레이터·행위예술가·미학자·음악가·농민 등이 모여 생태예술 운동을 연구하는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생태와 예술, 그리고 구들장논은 어떤 상호 작용을 갖고 있을까. 그 연결구조가 궁금했고 구들장논에 모내기 행사를 함께 기획해 보면서 그간의 연구궤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었다.
구들장논은 한국의 고유한 난방법인 '구들장'과 닮았다고 하여 '구들장논'이라고 부르고 있다. 구들장논은 경작자의 필요에 따라 물 관리를 할 수 있기에 논농사와 밭농사를 번갈아 할 수 있다. 이 시초는 조선 중 후기(16세기부터) 때 전남 완도군 청산면에서 시작됐고 작은 돌을 쌓고 흙을 다지는 계단식 형태로 논에서 모은 물을 바닥에 쌓아 통수로를 만드는 형식이다. 이렇게 모은 물을 하부 논으로 농업용수를 흘려 보낸다. 일반 논은 물을 지표면에 흐르게 두고 물을 빼기에 배수 형태가 취약하고 물을 확보하는 방법이 단일하다. 그만큼 강수량에 따른 물 조달이 농사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일반 논농사에 사용한 기계식 배수는 농작물 냉해 발생이 생기며 소농작을 하기에 쉽지가 않다.
리서치트립에서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특히 지역 내 하구둑, 보, 댐, 저수지의 역할은 장마의 폭우로 인한 범람의 피해를 줄이기 위함도 있지만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함이 크다는 점을 알게 됐다. 그만큼 농사에서 '물'은 중요하게 다뤄야 할 물성이다. 그렇기에 구들장논은 통수로를 만들어 상/하부 논을 나누어 물을 조달하는 형태인 '관개배수'로 진행된다는 점이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
전통농업 방안을 그대로 사용하는 청산도 구들장논의 조성방식을 살펴보면 주민들은 ‘협동노동체계’를 지속하고 있다고 한다. 매년 농사가 시작되는 시기에 논의 주인들이 모여 물길을 만든다고 한다. 경사면을 이용하여 상/하부로 나누어진 경작은 자연스럽게 물이 빠지고 토양에 물이 스며드는 형태로 진행하기에 다양한 파종을 심기에도 용이하다고 한다. [출처: 그린매거진 http://www.rda.go.kr/webzine/2020/02/sub3-3.html]
구들장논의 농법은 단순한 농업기술이 아닌 다양한 삶터와 함께 살아가기 위한 선조들의 지혜였다. 지난해 플랜C에 3평짜리 맹지에 구들장논을 만들기 위한 무모한 시도는 어쩌면 스스로 창출해 내는 터전의 의미를 상기하기 위함이지 않았을까.
여러 지역을 다니며 삶터를 이루는 물길의 흥망성쇠와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다져야 했던 콘크리트 지대 아래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었다. 다루지 못하고 감춰진 이야기는 변화무쌍한 삶터를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의 단초를 제공한다. 이 이야기는 공공예술 프로젝트 공론장 <물밑작업:만경강> 과도 연결되는 맥락이었다. 자생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토종 볍씨-예술생태운동(모내기 행사)의 관계는 생산성과 경제성에 의해 획일화된 벼 모종처럼 단일하게 집단화되고 있는 '도시'를 떠올리게 했다. 도시 풍경 속 옮겨온 조각 논에 심은 토종 벼는 고유성과 개별성으로 이어지는 지역의 상생을 상상하게 했다. 개발과 발전, 성과지표 안에 속하지 못하는 토종 벼 위로 지표 바깥에서 지워지는 지역성을 겹쳐보고 싶었다. 인구수로 판가름 나는 ‘지역소멸’과 더 발전된 메가시티(Megacity)로 향하는 도시의 열망 사이 우리는 어떤 모습의 미래 삶터를 꿈꿀 수 있을까 질문을 던지며.
한옥마을에 ‘농적인’ 태도로 ‘출몰 구들장논’을 시도하는 생태예술 운동과 지역의 행정경계를 넘나드는 작가들의 예술적 교류 이야기 안에서 ‘서울의 소멸과 지역의 생성’ 가능성을 생각하며 이날 '굳이백배미' 팀과 백 명의 사람들과 진행한 모내기를 진행했다.
공공예술 프로젝트 [공론장]이 궁금하다면 아래 링크! [물밑작업: 금강편 https://brunch.co.kr/@hysterian/10] 과 [물밑작업: 만경강 https://brunch.co.kr/@hysterian/7] 접속해주세요.
https://www.youtube.com/watch?v=AzECXQPg47w
* 아래 글은 <물밑작업: 공론장>에 대한 리뷰이며, 발제자들이 중요하게 전했던 이야기를 삼아 안현준 기록자의 글로 구성되었다.
일시: 2023.06.04(일)
1부: 공론장: 11:00~14:00 *현장참여
1) 도시에 출몰하는 농부 – 맑똥
2) 농적(農的) 작업자들 – 이하영
3) 생태예술운동의 필요성 – 이선
4) 지역 장르 경계 없이 ‘도시로 예술하기’- 박수현
5) 자유토론 및 질의응답 - 히스테리안, 김동희, 정강
2부: 모내기 행사: 15:40~18:00
사진 기록 : 강철, 안현준
장소: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은행로 30 사용자공유공간 planC
배산임수 아시죠? 숲이 바람을 막아주고 물도 흐르던 곳인데, 1993년에 도시가 들어왔어요. 물길들과 환경을 감안하지 않고 개발이 되었죠. 제가 농사지었던 개구리논, 여기만 좀 남아있어요.
도시에 출몰하는 농부라고 소개한 ‘맑똥’.
그가 농사를 짓는 개구리논은 원래 아파트 숲 틈바구니에 자리했던 것은 아니다. 소의 울음소리를 닮은 바람이 비를 부르고, 그렇게 내린 비를 담아두는 숲이 있던 한세봉 주변 지역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시골의 모습을 간직한 곳이었다. 1993년 도시계획이 수립되었고, 세워진 아파트들이 야금야금 농부의 자리를 밀어내며 과거의 모습들을 흔적도 없이 덮어버렸다.
‘맑똥’은 도시가 덮어버리기 전의 농촌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지금은 도시의 모습이지만, 본래 그 땅이 가지고 있던 과거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이다. 기억을 토대로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는 사람 이어서일까? 먹고살기 힘들었던 시절을 극복하기 위해 개량된 현재의 쌀과 다른, 과거로부터 이어져 온 ‘토종 쌀’을 고집해서 재배하고 있는 그는 동일한 품종의 쌀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대농과 차별점을 두어야 했다. 차별성은 생존의 방법으로 먹고살 수 있기 때문이라고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혼자서 일궈낼 수 있는 도시 텃밭이 아닌, 다양한 동료가 모여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논을 선택한 그의 목소리에서는 도시에서의 삶에 익숙한 나는 알 수 없는 그 어떤 사명감이 느껴지기까지 했다.
자유와 평등, 돌봄과 연결, 공생과 조화. 듣기 좋지만 어떻게 이뤄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는 것들을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무언가로 지어 가는 행위. 농사의 멋짐을 알리기 위해 농사짓는 친구들과 “힙하다” 대신 “농적이다”라는 말을 유행어로 밀고 있다. 충남 홍성과 광주를 오가며 진행한 예술 프로젝트와 국내외 사례를 중심으로 농적 태도와 작업의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더불어 전주 한옥마을 한복판에 나타난 ‘굳이 백배미 논’과 모내기 행사의 맥락과 의미를 살피며 농적 대화와 연결의 시간을 가져본다.
꼭 농사를 짓는 것이 아니어도 무언가를 함께 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고, 서로를 돌본다는 것이 농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자신을 농적(農的) 작업자로 소개한 ‘이하영’ 작가는 대안학교와 유기농업을 중심으로 공동체성을 가지는 홍동마을에서는 농사를 짓는다. 언뜻 듣기에 ‘합하다’라는 의미와 비슷하게 들리는 ‘농적’이라는 표현은 친구와 우정을 쌓아갈 때, 몸을 움직이며 감각할 때, 땀을 흘리며 정직하게 노동할 때, 서로에게 기댈 수 있을 때, 돈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낭만을 느꼈을 때. 더 나아가 이러한 감각을 공유하고, 또 이를 토대로 확장하는 공동체를 형성하며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활동에 두루 쓰이고 있었다.
대중문화를 피해 타인과 나를 구분하려는 ‘힙하다’와 대립하는 의미를 가지고서도 더할 나위 없이 힙한 ‘농적’이라는 표현이다.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뜻이 긴 단어이자 가장 번역이 어려운 단어”로 알려진 마밀라피나타파이 (Mamihlapinatapai)*에 지지 않을 정도로 함축적이면서 각자도생의 현대사회에 가장 필요한 자세가 아닐까? 홍동마을이라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은 ‘농적’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 마밀라피나타파이 : 칠레 남부 지역의 원주민이 사용했던 야간어의 단어로,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굳이 스스로 하고 싶지는 않은 일에 대해서 상대방이 자원하여서 해 주기를 바라는, 두 사람 사이에서 조용하면서도 긴급하게 오가는 미묘한 눈빛’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의 환경 운동은 인간과 자연을 대립자로 보고 있지만, 예술은 인간도 자연과 문화의 연속체에 속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주죠.
생태교육에서 생태예술로의 전환을 이야기해 준 이선 연구자는 지금까지 이어져 온 생태환경운동은 인간을 생태적인 자연과는 다른 문화에 속하는 존재로 정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기후위기나 환경문제의 해결책을 개인의 윤리차원으로 접근법했을 때의 한계를 지적했다. 생태적인 것은 자연과 문화의 연속적인 복합체로써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것은 의미하며, 더 나아가 생태예술이란 인류의 삶이 생태를 위한 것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선도하는 삶의 기술을 의미한다고 전했다.
지금까지 환경과 예술을 결합했을 때 막연하게 환경(생태)에 중점으로 예술을 곁들이는 것으로 생각해 왔던 고정관념에 실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인간사회의 불합리와 불평등 해소와 같은 인간 중심의 환경문제를 개선하는 것을 넘어, 자연과 문화의 연속체 안에 속하는 존재임을 일깨워 주고, 생태적 삶을 실천할 수 있도록 이끄는 ‘생태예술’은 인간과 자연을 연결해 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설루션이자 공존해야 하는 방법론이었다.
지역 장르 경계 없이 '도시로 예술하기' 예술로 광주를 바꿀 수 있을까
굳이백배미팀은 광주에서 진행한 창의예술교육랩 사업을 통해 아이디어 단계를 확장해갈 수 있었고 광주에서는 지역, 장르의 경계 없이 시도하는 사업을 진행하기 위한 적극적 변화를 모색했다. 흔히 ‘행정’이라고 부르는 공적자금이 투입되는 기관과 단체들이 변화를 두려워하는 보수적인 집단이라는 인식이 있지만, 이번 광주문화재단 담당자의 이야기에서 적극적 의지와 행동이 느껴졌다.
‘지역(광주)을 바꾸기 위한 예술교육프로그램’을 만드는 사업을 추진하는 담당자가 지역성과 장르를 확장하기 위해 시도했던 변화에 두근거림을 느꼈다. 많은 관광객이 오가는 전주한옥마을 한복판에서 모내기를 하는 상상하지 못할 사업이 추진될 수 있었던 것은 행정 담당자의 꾸준한 설득과 시도도 중요했다. 광주와 전주의 행정 지역 한계를 넘어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다양한 장르적 교류와 시도에 사업, 행정 담당자의 소통이 없었다면 실현하기에 어려운 점이 많았을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고, 다양한 품종을 엮어내는 농부.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그들이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문화를 제시한 작가.
자연과 인간을 연결하고, 생태적 관점에서 예술을 다시 보는 연구자.
지역과 장르와 예술을 넘나들며, 연결을 통해 가능성을 시도한 사업 담당자.
전혀 다른 주제로 보이는 이야기들은 말하는 이로부터 듣는 이에게 전달되어 나아갔다. 앞으로 얼마나 더 나아갈지, 그를 통해 얼마나 더 많은 사람을 연결해 낼지 다음 물밑작업의 이야기를 고대하며. 이야기의 확장성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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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및 기록자 소개 : 안현준
전북 전주에서 서브컬처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지원하고 있는 OVITAL Studio의 프로젝트 매니저로 소개하고 있지만, 본업은 사진작가입니다.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지인들도 가끔 의외로 사진 좀 찍는다는 칭찬을 건네지만 본업은 사진작가입니다. https://www.instagram.com/an.hyunjoon/
* 기사 참고
http://www.ikp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9917
* 본 프로젝트는 아르코 공공예술 주제심화형 프로젝트 <예술로 가로지르기 -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 출몰지>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소식 - https://www.instagram.com/around_across_ab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