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의 옛 흔적으로부터 환상의 도시를 탐험하기
용서하십시오. 폐하. 조만간 저는 틀림없이 그 항구에서 배를 타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폐하께 그 도시에 대해 보고하러 돌아오지는 않을 겁니다.
그 도시는 존재하며 단순한 비밀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도시는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떠나는 것만을 알고 있을 뿐입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74p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는 황제 칸에게 그동안 다녔던 도시들에 대해 말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보았던 세월을 견딘 도시들은 바람에 굴러다닐 죽은 이의 뼈도 없는 빈터, 바다의 옛 흔적이었지만 이젠 섬이 된 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성 바깥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황제 칸은 마르코 폴로가 다녔던 도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집하여 환상의 도시를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환상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황제의 손짓에 따라 흠없이 세워진 도시의 경관은 낡고 허름하다고 여겨진 삶의 흔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성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황제 칸이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만으로 듣고 세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아진 환상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그것이 곧 환상적인 아름다움일 수 있을까요.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에서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풍요의 땅이라고 불리는 금란도(충청남도 서천군)와 미래산업을 대표하는 수상 레저의 도시이자 캐릭터 해로의 주 무대 거북섬(경기도 시흥시),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땅 수정만(경상남도 창원시)으로 향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자신이 사신으로 방문했던 도시들을 황제 칸에게 묘사했을 때, 칸은 마르코 폴로의 탐험기를 모두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가 보고 느꼈던 도시의 이야기는 황제 칸에게 매력적이었죠. 황제 칸은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를 듣고 아름다운 도시를 이루는 건축의 선과 아치, 골목의 상점들이 이루는 질서를 구축하며 완벽한 설계에 따라 옛 터를 무너뜨리고 위대한 제국의 운명을 그려봅니다.
이탈로 칼비노 소설의 황제 칸이 되어 망망대해의 바다 위에 도시를 건설한다면 어떤 상상력을 발휘하며 도시를 설계할 수 있을까? 도시는 상상력으로만 그려낼 수 있는 곳일까? 간척지, 매립지, 바다였던 곳이 땅이 되기 위해 콘크리트를 얼마나 부어야 메울 수 있을까? 땅 한 평도 제 것으로 만들 수 없는 현실에서 망망대해 떠도는 배 한 척이 물살을 거슬려 달리는 자유로움을 상상하기에는 제 몸짓을 품은 공간이 작기만 합니다. 빼곡하게 집들과 집들이 연결되어 일조량 또한 부의 가치로 매겨지고 있는 도시의 삶에서 넓디넓은 바다의 삶은 신기루처럼 느껴지기만 합니다.
[길이없는땅] 두 번째 오픈리서치트립 장소는 미래 산업을 대표하는 수상 레저의 도시이자 캐릭터 해로의 주 무대 거북섬(경기도 시흥시)으로 향합니다. 길이없는땅의 첫 번째 여정이었던 금란도는 군산과 서천 사이에 위치하며 금강 하굿둑 사이 퇴적된 흙을 매립해 만든 인공섬이었습니다. 두 번째 여정인 거북섬은 거북 모양으로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 거북섬입니다. 거북모양의 섬이라고 하여 어슴푸레 닮았겠지 했는데 지도에 펼쳐진 섬의 평면도는 거북머리와 팔과 꼬리까지 그려져 있었습니다. 윗부분 머리와 아랫부분 꼬리가 차도로 연결되었고 외곽으로 연결된 길을 따라가면 인공파도로 서핑을 즐길 수 있는 웨이브 파크가 있습니다.
웨이브파크 주변으로 먹거리 상점이 곳곳에서 보였지만 문이 굳게 닫혀있는 것이 대다수였습니다. 하필 그날따라 비바람이 휘몰아쳐서 그런지 스산한 바람과 함께 인공파도와 거북이 조형물이 영화 세트장처럼 새삼 조화롭게 여겨졌습니다. 인공 거북섬이 마주하고 있는 수면은 바다가 아닌 시화호입니다. 바닷물이 아닌지를 확인하기 위해 웨이브 파크로 건너는 작은 다리 밑에 흐르는 물을 같이 간 일행이 찍어먹어 보았습니다. 먹자마자 짜다고 하여 검색해 보니 시화호는 1994년 오이도와 대부도의 방아머리를 잇는 주방조제가 완공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로 간척지에 조성될 농지와 산업단지 용수를 공급하기 위해 담수호로 계획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공장 오폐수 및 생활하수 유입으로 수질이 급격히 악화되어 1997년 이후는 해수로 유입하여 해수화로 진행했다고 합니다. 그러니 짤 수밖에 없었던 거죠. 역시 똥인지 된장인지는 찍어 먹어봐야 아는 것이죠!
웨이브 파크 주변을 돌다 보면 아파트 단지로 연결되는 도로로 향해 걷게 됩니다. 아직 진행 중인 공사인만큼 곳곳의 여러 현장감이 묻어나는 자재들을 볼 수 있었고 빼곡하게 쌓아 올린 건물의 윤곽이 이국적으로 보였습니다. 바다였던 곳을 축적된 땅으로, 땅에 기둥을 박아 하늘로 뻗기를 반복하는 도심에서 세워지는 아파트는 길과 길을 연결하여 그 외의 곳을 바라볼 수 없게 시야를 가로막기도 합니다.
도심에서 세워지는 건물의 공사장은 펜스로 가로막혀 그 내부와 형체를 가늠하기 어렵습니다. 거북섬 건물의 내외부는 뻥 뚫려 있었고 속 빈 곳에 어쩐지 다른 걸 채우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렸습니다. 우리는 이곳을 다시 한번 탐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거북섬의 크기를 직접 가늠하기에 지금이 딱 적기라 생각했습니다. 준공을 마치지 않은 아파트가 공사 중에 있고 곳곳에 매매 분양의 전단지가 뿌려져 있는 "럭셔리 라이프의 시작"을 알리는 거북섬이 말하는 욕망의 자리를 관찰하고 싶어 졌습니다.
그렇게 이곳의 탐사를 맡아줄 탐사대장으로 최근 <공장 달리기>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김재민이 탐사대장을 초대했습니다. 김재민이는 변방/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진입하려 했던 인물을 기리는 순례길 작업을 기획했고 최근 송도의 탄생을 따라 '송도 데리브 워크' 디자인했습니다. 그의 비범한 능력을 빌려, 거북섬의 크기를 온몸으로 감각해 보기로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렇게 그와 함께 탐사를 하며 우리는 거북섬의 한 면적을 차지하는 최초의 대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북섬의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서기 2010년, 서해 시화 방조제의 남쪽 편에 거북이의 윤곽이 그려지기 시작했습니다. 바야흐로 경기도의 원대한 계획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죠. 로컬이란 무엇일까. 지역 활성화란 무엇인가. 문화와 예술은 또 어떻게 주민과 만날 수 있나. 이제 거북섬이 거의 ‘완성'된 2022년 겨울, 이런 질문을 품고 우리는 거북섬을 기행 하기로 했습니다. 거북섬은 이제 시작입니다. 우리가 어떤 리서치를 하건, 십 년 전부터 공들인 이 새로운 땅에서 새로운 삶과 프로젝트가 시작됩니다.
거북섬은 아복섬으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아복(阿언덕아, 伏엎드릴 복) 섬은 널리 알려진 대로, 서해 바다 시화방조제 근처 존재하던 두 개의 쌍둥이 섬입니다. 주민들 사이에는 큰 아복섬과 작은 아복섬으로 불리었고 하루 두 번 있는 썰물 때에는 두 섬이 걸어갈 수 있게 이어져 마치 거북이의 머리와 몸통 같다고 거북섬이라고도 불리웠습니다. 일부 고생식물 연구 학자들에 따르면 중생대 이전 아복섬 인근에서는 한국에서는 드물게 큰 베리(berry)류의 아복 열매가 자생했습니다. 아복 열매는 모양 역시 거북이를 닮아 여러 이야기가 구전되고 있습니다. 후세 문인들에게 즐겨 묘사되었던 아복섬에 관한 시 중 하나는 아복열매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切一半,
君子看,
孕,
期待的圈子,
阿伏果,生.
반으로 자르니
군자여 보시오
새 생명을 가졌구려
기대하는 동그라미
아복, 삶
- 劳斯 凡妮莎 (생몰연대 미확인)
아복섬의 전설은 대항해시대(Era das descobertas)라 일컬어지는 16세기 무렵부터 시작합니다. 포르투칼의 선원들이 현재 시화호 부근에 정박하게 됩니다. 여기서 들은 뒤에 나올 아복섬의 전설을 전해 듣게 됩니다. 전설과 아복섬을 기억하고, 선원들은 훗날 호주의 오른편에 위치한 작은 섬에 아복 (Avokh or Avock Island, 좌표 16°32′00″S 167°46′00″E)이라는 명칭을 붙이게 됩니다.
아복섬에서 유래한 "괜찮은 거야 미친 거야? Run Avock or run amok?"라는 관용어 또한 현대 영어에서 전체 문장으로는 쓰이지는 않고 뒷부분만 흔적으로 남습니다.
한편, 아복섬을 떠나 서해를 빠져나가려던 포르투칼 선원들은 이복섬의 남쪽, 현재 충남 송석항 부근에 위치한 ‘아목섬’에 머물게 되고, 섬에서의 불쾌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일부 선원들이 ‘아묵 Amook’이라는 그 이름을 새로 본 섬에 명명하게 됩니다. 알래스카 인근의 무인도는 지금도 이 이름으로 불리웁니다. - 김재민이 탐사일지 일부 발췌
자세한 탐사영상은
https://www.youtube.com/watch?v=REjGKoOjtyA
전설은 또 다른 전설이 되어 곳곳의 거북섬의 탄생을 재촉합니다. 거북섬에서 자라는 아복열매는 해수면의 염분을 빨아들일 만큼의 강인하며 노지에서도 아복열매의 껍질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복열매는 메마른 땅이거나 축축한 습지에서도 잘 자라며 껍질은 토양을 비옥하게 만들어주어 식물영양제의 성분으로도 그 쓰임이 있습니다.
탐사대장은 탐사원과 함께 거북섬을 둘러보며 거북섬의 무탈한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아복열매를 심을 자리를 모색했습니다. 대규모 단지를 짓기 위해 필요한 자재는 무겁고 튼튼하고 강인하고 영원히 썩지 않고 사멸하지 않습니다. 바다의 옛 흔적, 아복섬의 전설을 토대로 생성하는 거북섬은 꿈과 희망을 담고 ‘해로’를 창조했으며 집으로 향하는 염원을 담고 있습니다.
탐험을 끝내고 한 두 달이 흘렀습니다. 매서운 한파로 땅이 얼어붙었고 동파와 예년보다 몇 배나 오른 난방비에 마음은 더 살얼음판입니다. 집이 없는 이들에게 이 추위가 얼마나 혹독할지 생각해 봅니다.
거북섬의 아복열매는 추위에도 잘 견뎌줄지, 아니면 너무 잘 자라 아복열매가 거북섬이 품은 물기를 모두 흡수하지는 않을지. 그렇게 거북섬이 메말라서 가라앉으면 어쩌나. 요상한 걱정으로 밤잠을 설쳐보며 기행기를 마칩니다.
김재민이 탐사대장은 레고섬으로 유명한 춘천이 고향이며 공공의 이익을 타이틀로 앞세운 땅 개발 지를 탐사합니다. 예측 가능할 수 있는 어두운 미래와 지역 개발 염원 사이를 지나며, 예술인보다 한 발 앞서는 땅 개발 관계자들의 상상력과 경쟁하며, 거북섬의 오래된 전설을 조사합니다. 그와 함께 집으로 향하는 희망을 담을 아복열매의 씨앗을 심었고 거북섬의 한 면적을 차지하는 최초의 대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http://invisiblefactories.com/
* 본 프로젝트는 아르코 공공예술 주제심화형 프로젝트 <예술로 가로지르기 -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 출몰지>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소식 - https://www.instagram.com/around_across_abo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