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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스테리안 May 03. 2023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 온산국가산업단지

바다의 옛 흔적으로부터 환상의 도시를 탐험하기

자네의 도시들은 존재하지 않아. 어쩌면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을지도 모르지.
물론 앞으로도 존재하지 않을 걸세.
자네는 무엇 때문에 위안이 되는
그런 이야기들로 마음을 달래며
시간을 보내는 건가?
내 제국이 늪 속의 시체처럼
썩어 가고 있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네.
그 썩은 시체의 병균이 시체를 쪼아 먹는
까마귀들과 그 오수를 거름으로 해서
자라는 대나무들을 병들게 하지.
자네는 왜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건가?
 왜 타타르 족 황제에게 거짓말을 하는 건가, 이방인이여?


이탈로 칼비노의 소설 <보이지 않는 도시들>에서 마르코 폴로는 황제 칸에게 그동안 다녔던 도시들에 대해 말합니다. 마르코 폴로가 여행하면서 보았던 세월을 견딘 도시들은 바람에 굴러다닐 죽은 이의 뼈도 없는 빈터, 바다의 옛 흔적이었지만 이젠 섬이 된 땅으로부터 시작된다고 합니다. 성 바깥을 한 번도 나온 적 없는 황제 칸은 마르코 폴로가 다녔던 도시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를 수집하여 환상의 도시를 세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환상의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황제의 손짓에 따라 흠없이 세워진 도시의 경관은  낡고 허름하다고 여겨진 삶의 흔적을 사라지게 만듭니다.

성 바깥으로 한 번도 나가보지 못한 황제 칸이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만으로 듣고 세운 도시는 어떤 모습일까요? 모아진 환상이 그대로 실현된다면 그것이 곧 환상적인 아름다움일 수 있을까요.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에서 우리는 황금알을 낳는 풍요의 땅이라고 불리는 금란도(충청남도 서천군)와 미래산업을 대표하는 수상 레저의 도시이자 캐릭터 해로의 주 무대 거북섬(경기도 시흥시)에 이어 바다를 매립해서 만든 땅 수정만(경상남도 창원시)으로 향합니다.  


매립지, 간척지, 인공적으로 만든 땅을 둘러싼 이야기. 우리가 밟아가야  신대륙의 이상은 무엇을 품고 꿈꾸고 있을까. 마르코 폴로가 말한 <보이지 않는 도시들> 그가 여행기를 통해 눈으로 듣고 보았던 환상의 탐험기를 담고 있습니다. 황제 칸은 그가 전해준 이야기로부터 완벽한 도시 건설에 목적을 두지만,  바깥을 나가지 못한 황제 칸이 꿈꾼 이상은 그가 생각한 질서대로 움직이지 않습니다.


첫 번째 오픈리서치트립으로 떠났던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은 근대 산업도시로서 한국의 현대사를 담고 있는 지역입니다. 장항은 1920년대 일본에 의해 매립된 간척지로 일본으로 물자를 조달하기 위해  장항항을 만들었고 장항제련소는 한국의 3대 제련소로 장항의 산업화를 촉진했습니다. 하지만, 해방 후 이 기능을 무명유실해졌고 1980년대 제련소를 중단했지만 장항제련소로 인한 중금속 오염은 인근 지역주민들이 살던 곳을 떠나게 했습니다. 현재, 오염된 땅을 정화하는 정화토지사업을 진행한다고 합니다. 작동하지 않고 하늘로 향해 솟아있는 제련소 굴뚝은 더 이상 운행되지 않으리라 여겼지만, 그 일부 기능이 울산온산국가산업단지로 이전됐음을 알게 되면서 도시의 자리를 넘겨주기 위해 사라졌을 또 다른 가능성 있는 도시, 세워지므로 또 소멸되는 도시의 이야기를 알아가고 싶어 졌습니다. *https://brunch.co.kr/@hysterian/4 


보이지 않는 도시의 이야기를 따라 군산과 서천의 사이에 있는 금란도 경기 시흥시에 웨이브파크와 신도시 건설을 꿈꾸는 거북섬, 아름다운 만을 매립해 아무도  땅을 사유하지 않게 되는 수정만, 도시의 얼굴과 표정은 닮아 있었습니다.


본 여정은 애당초 금란도, 거북섬, 수정만을 염두했지만, 번외로 겨레와 국가 발전을 위한 인공 심장 온산국가산업단지(울산광역시)로 향하면서 우리의 탐험의 목적과 이유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하게 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정은 2022 울산북구창작레지던시 입주작가였던 시각예술가 조말과 함께 진행했습니다. 조말 작가는 울산에서 이방인으로서 느꼈던 감각을 저희에게 전해주었고  15의 인원과 함께 답사를 다녀왔습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점은 울산현대자동차 공장과 새울원자력발전소의 내부 견학이었습니다. 자동차 본체가 조립되는 과정에서 투여되는 노동력과 시스템화에 따른 자동화, 원자력 에너지를 구동하는 터번을 눈으로 목격한 경험은 잊지 못할 감각이었습니다. 새울원자력본부의 홍보 안내자는 해외 바이어나 연구원, 환경 단체에서 취재  방문하지 예술가들이 이곳을 방문한 것이 흥미로웠다고 했습니다외부자, 관찰자, 이방인으로써 도시를 탐험하는 자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전과 불안 사이에서 우리 삶을 이루는 균형감이지 않을까 생각하며,  여정에 대한 짧은 탐험기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 본 글과 영상은 시각예술가 조말 작가가 2022년 울산북구창작레지던시 때 경험하고 느꼈던 감각을 바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픈리서치트립 <길이없는땅> 프로그램은 특정 지역의 이야기를 둘러싼 삶터의 이야기를 단순히 하나의 현상으로 치부하기보다 삶터를 연결해 온 역사적 고찰을 바탕으로 오늘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그렇습니다. 제국은 병들었습니다. 그리고 더 나쁜 것은 제국이 자신의 상처에 익숙해지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제 탐험의 목적은 이것입니다.
아직도 언뜻언뜻 보이는 행복의 흔적들을
자세히 찾아가면서 그것이 얼마나
부족한지를 측정해 보는 겁니다.
폐하의 주위가 얼마나 어두운지 알고 싶으시다면 멀리 보이는 희미한
불빛 쪽을 뚫어지게 바라보셔야 합니다.
이탈로 칼비노, <보이지 않는 도시들>, 77-78p




https://www.youtube.com/watch?v=puzN70QGMko&t=19s

영상 제작: 노드 트리

이동하는 욕망_시각 예술가 조말


잘 살고자 하는 욕망, 더 나은 삶에 대한 욕망은 추구하는 가치에 따라 방향이 달라집니다. 공공이 추구하는 보다 나은 것에 대한 믿음의 실체는 무엇일까요. 드러난 실체와 드러나지 않은 실체 사이의 틈, 미처 살피지 못한 희생양과 소리 없이 파헤쳐진 땅과 이동해야 하는 삶 사이의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여정에 올랐습니다.


울산은 현대중공업이 위치한 곳이며 한국의 경제를 이끈 공업도시입니다. 울산 내 백화점이 전국에서도 매출이 높을 정도로 1인당 GRDP가 전국 1위인 곳이기도 합니다. 2022년 울산북구창작레지던시에 입주하면서 울산이란 낯선 도시를 처음 방문했습니다.  밤낮없이 불꽃이 솟아오르는 온산 공단의 공장 굴뚝을 바라보며 이 거대한 공업도시가 이끈 한국의 이면이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울산은 1962년 군사정부에서 시작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에 따라 특정공업지구이며 대규모 공장단지를 품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울산 공장의 외부 벽에는 웅장한 슬로건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우리가 잘 되는 것이 나라가 잘 되는 것이며, 나라가 잘 되는 것이 우리가 잘 될 수 있는 길이다'가 있습니다. 이 거대한 슬로건 아래 끊임없이 돌아가는 기계소리, 아직도 새마을 운동을 했을 시대에서 나옴직한 노래가 들려오는 공장은 국가의 발전이라는 거시적인 목표아래 희생되는 도시와 땅이 현재에도 존재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인간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이동'의 편리성, 속도라 생각했습니다. '이동'은 욕망이 퍼질 수 있게 합니다. 여기에서 저기로요. 현대자동차 공장의 이동할 수 있는 수단을 만들어 내는 곳의 생산과정을 보는 것은 분절된 '욕망'을 아주 정확한 공식에 의해 체계적으로 완성하는 것을 관찰하는 느낌입니다. 형태가 없는 '욕망'이 형태를 입는 것을 보는 것을 직관합니다.


이미지 출처 : 한국관광공사


리서치 트립에 참여한 15인이 관광버스로 함께 현대자동차 공장 안으로 이동합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세계 최대 규모의 단일 공장이며, 하루 평균 5,400대의 차량을 생산합니다. 500㏊의 공장부지는 서울 여의도 면적의 2.5배에 이릅니다. 5개의 독립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근무하는 노동자가 3만 명이 넘고 공장 안에는 배가 접안할 수 있는 부두가 갖추어져 있다고 합니다.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엄청난 소음이 몸을 관통합니다. 공장 안의 설비와 기계부품들, 정확한 맞물림으로 컨베이어 벨트 같은 레일 위로 이동하는 차로 보이는 형태들. 우리의 걸음과 함께 점점 자동차는 완성을 향해 갖추어져 갑니다. 사이클타임이 쉼 없이 작동합니다. 직원들은 제한 시간에 맞춰 부품을 조이고 조립하고를 반복합니다. 한 생명의 탄생 과정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탄생한 자동차는 최후의 이동수단인 거대한 배를 타고 세계 곳곳으로 이동합니다. 상상하기 힘든 규모의 양이 매일 만들어지고 멈춤 없이 이동을 택합니다.



이미지 출처: 필자 제공


현대자동차 공장 견학을 마친 우리는 울주군에 위치한 새울원자력발전소에 방문했습니다. 새울원자력발전소는 문재인 대통령 당선 후인 2017년 6월 19일 '더 이상의 원전 신설,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허용하지 않고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높이면서 40년 내로 국내 모든 원전을 없앤다'는 내용의 탈(脫) 원전 정책에 의해 신고리 5,6호기 건설이 중단됐습니다. 새울원전에서 근무하는 현장 근로자 김판재 씨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캐나다에 8개 원전 밀집지역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아무도 안 가본 길을 걷는 거죠. (원자로가) 너무 많이 몰려 있는 건 사실이에요.
이 지역에 있는 주민들은 위험에 만성이 된 사람들이에요.
미래를 위해선 공사를 중단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이미지 출처: 주간 조선


고리원전이 있는 기장군과 신고리원전이 있는 울주군 서생면 일대는 국내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입니다. 완공돼 상업운전을 시작한 원자로만 이 일대에 총 6기(고리 2·3·4호기, 신고리 1·2·3호기)가 있습니다. 신고리 4·5·6호기를 합치면 세계에서 가장 많은 9기의 원자로가 한 군데 몰린 대단지가 건설됩니다. (신고리 3·4·5·6호기가 현재 새울 1·2·3·4호기로 변경) 이 때문에 지역구 의원들과 시민단체들은 끊임없이 신고리원전의 안전성에 문제를 제기해 왔습니다. 2016년 9월 경북 경주에서 지진이 발생하면서 여론은 더욱 악화됐으며 원전 일대의 지반에 활성단층이 있다는 사실이 알려진 것도 논란에 기름을 부었습니다. * http://weekly.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1756


견학하기 전 과연 원전은 안전한가에 대해서 부정적인 입장으로 바라보며 조사를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만 원자력발전소 안에 들어가 직접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에 설렘이 더 컸습니다. 안내자분의 설명을 들으며 세밀하고 치밀한 기술력에 감탄했으며 기계와 우리 사이를 보호하고 있는 유리벽을 만졌을 때 전해진 에너지에 의한 떨림은 소름을 돋게 했습니다. 발전소에서 쓴 물을 정화해서 우럭 양식에 성공한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판타지 소설에 나올법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안내자분은 그 우럭의 맛을 알고 계셨습니다. 예민하게 관리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밖에 없는 원자력발전소는 위험과 안전이라는 극명한 두 개념사이를 오갑니다.



이미지 출처: 한국관광고사


발전소 근처에는 나사리마을이 있습니다. 나사리는(모래가 쌓여 육지로 변해 마을이 된 나사 -모래가 뻗어 나간다는 뜻- 마을) 1970년대까지는 은빛 멸치를 잡고, 돌미역을 채취하며 살아가는 전형적인 어촌마을이었습니다. 그런데 산업화와 원자력발전소가 세워지면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작년 11월 방문했을 때는 빈집과 공사 중인 곳이 많았습니다. 신고리 5,6기가 들어섬으로 인해 근처 나사리 마을은 어업마을로서의 정체성은 사라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업을 하던 사람들은 정부로부터 어업권을 받지 못해 생계를 이어갈 수 없어 마을을 떠나게 되었고 이로써 마을에는 빈집이 늘어났고 그곳엔 바다뷰를 테마로 장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들어서고 있습니다. 그런데 단순 바다뷰가 아닙니다.  무려 '원전'을 품고 있는 바다뷰입니다. 정말 괜찮은 걸까요? 그린피스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고리원전의 방사능 방재계획과 원자력 발전소 비상구역 권고 기준이 부실하다고 합니다. 사고 발생 시 예방적 보호조치구역은 3~5km, 긴급보호조치 계획구역은 5~30km, 음식제한계획구역은 300km로 설정했는데, 고리원전 30km 안에는 341만 명이 거주하여 파키스탄과 대만에 이어 인구밀집도에서 세계 3위라고 합니다. 사람들은 위험에 만성이 되어버렸습니다.


나사해변은 수심이 점점 높아지고 있어서 모래 해변가를 잃어버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래를 실어다가 해변을 부러 만드는 모습을 보았는데 현재는 인공해변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있었습니다. 그 해변은 누구를, 무엇을 위한 해변일까요.


이튿날 우리는 ‘말뫼의 눈물’이라 불리는 현대중공업 육상건조시설 한복판에 자리 잡은 골리앗 크레인(코쿰스 크레인(Kockumskrane))을 보았습니다. 높이 128m, 폭 164m, 인양능력 1천500t급(현대로 이전 후 개조공사를 거쳐 인양능력 1천600t으로 향상) 자체중량 7560t으로 당시로는 세계최대의 크레인입니다. 이 크레인은 스웨덴 말뫼의 세계적 조선업체 코쿰스(Kockums)가 문을 닫으며 내놓았고 그걸 2002년 현대중공업이 막대한 해체비용을(해체, 선적, 설치, 개조, 시운전하는 비용) 부담하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사들였습니다. *https://biz.chosun.com/site/data/html_dir/2018/08/16/2018081600268.html


2002년 9월 25일 말뫼 주민들은 크레인의 마지막 부분이 해체되어 운송선에 실려 바다 멀리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보며 한없이 아쉬워했고 스웨덴 국영방송은 그 장면을 장송곡과 함께 내보내면서 '말뫼의 눈물'이라고 했다고 합니다. 이 골리앗 크레인이 2018년에 일감이 없어 멈춘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두고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과거 한국이 수많은 유럽의 조선사를 파산으로 몰아갔듯이 이젠 중국이 한국 조선을 위협하고 있다"며 "말뫼의 눈물이 울산의 눈물이 될 수 있다"라고 했습니다. 골리앗 크레인은 바닷가에 위치해 있지만 멀리서 봤을 때 보는 방향에 따라 아파트 단지 사이에 둘러싸여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만약 앞으로 또 일감이 사라졌을 때, 산업에 어둠이 드리워졌을 때 골리앗은 어떤 모습으로 아파트 사이에 존재하고 있을까요.


(좌) 울산신문 / (우) 필자 제공

이제 마지막 방문지인 온산공단(온산국가산단)으로 향합니다. 온산공단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에 위치해 있고 비철 금속 공업과 정유 및 유류 비축, 화학 펄프 공업의 육성과 이와 연관된 공업을 유치하여 국가 경쟁력이 있는 중화학 단지를 만들고자 조성되었습니다. 1974년 4월 1일 온산산업기지개발구역으로 지정되어 건설부 고시 제92호에 의거하여 조성되기 시작하였고, 1991년 1월 14일 온산국가산업단지로 지정되었습니다.


이 온산공단 자체를 보기 위함보다는 공장 사이에 섬처럼 있는 이주민 망향공원(화산공원)이 궁금했습니다. 산업발전 이면에 존재하는 기존 터를 잡고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공공의 이익 아래 드러나지 못한 채 섬처럼 존재하는 화산공원처럼 있습니다. 의지를 가지고 발견해야만 보이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화산공원 꼭대기에 설치된 있는 망향의 노래비는 "고향을 잃은 날로부터 4,000여 일 되는 2010년 6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새겨졌습니다. 산업도시 울산을 만드는 심장부이자 국가산업 발전의 원동력이 됐지만 수백여 년 그곳에 정을 붙이며 살아온 토착민들은 조상의 땅을 떠나야 했습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울산시와 울주군은 그 자리에 주민들의 아픔을 달랜다며 망향비를 조성했습니다. 하지만 공장 사이에 둥둥 떠 있는 형상이 기이하게 느껴집니다. 공원의 정자에 오르면 저 멀리 작게 남은 민둥 돌산이 보이는데, 돌산을 폭파하여 땅의 재료를 얻어 바닷물을 메꾸어 인공 땅을 만들고 그곳에 공장을 세웠다고 합니다. 언제 또 폭파되어 완전히 사라질지 모르는 작은 민둥 돌산의 처지와 외딴섬으로 전락한 망향공원이 이 여정에서 발견하고 싶었던 단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망향의 노래비에 새겨놓은 이야기는 그 장소가 고향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슬픔이 저며옵니다. 노래비 내용 중

‘그러나 어쩌랴. 내 이웃, 내 겨레가 잘 살도록 하고자 한 일 일진대.’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산업발전을 위해 자신의 땅을 내어준 실향민들의 희생과 한 편의 허탈함이 묻어나는 구절이었습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듣게 된 실향민 본인인 택시기사님의 증언은 땅의 소유권을 둘러싼 이해관계가 사실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았음도 알게 되었습니다. 땅의 주인은 누구일까요. 공공의 이익이라는 낭만은 존재하는 것일까요. 택시기사는 주인이 없는 땅, 공장 바다 위에 상징적으로 존재하는, 사실은 있지도 않은 고향을 형상화한 공원에 매일 차를 굴려 산책하고 잠시 머무르기를 반복합니다.



이곳은 1974년 4월부터 온산 산업기지 개발로 사라진 10개 법정리 19개 행정마을(당월, 우봉, 산남, 원봉, 이진, 대안, 송정, 산성, 석당, 달포, 당목, 산하, 목도, 방도, 사방동, 처용, 신기, 회남, 회학) 주민들의 애절한 향수와 고향을 그리는 염원을 담아 놓은 곳이다. 어려웠던 시절, 국가 근대화의 기틀 마련이라는 대의를 위하여 조상 대대로 뼈를 묻고 살아왔던 주민들이 정든 고향을 뒤로한 채 뿔뿔이 흩어져 고향 잃은 망향의 그리움을 이 돌에 새겨둔다. 그 옛날 둔전들로 유명했던 고향마을은 이제 옛 추억 속으로 사라지고 대신 국가발전의 심장역할을 하는 온산국가산업단지가 자리 잡아 수 백 년 이어온 조상들의 유택은 재가 되어 산천에 흩어지고 다정했던 친지. 이웃들이 떠난 자리, 가뭇없이 사라진 고향을 그리는 실향민들에게 한 가닥 마음의 위안이라도 삼아질까 여기에 망향비를 세운다. _2010년 6월 울주군수


망향의 노래

벚꽃잎이 눈처럼 소복이 쌓이던 온산초등학교. 광복절 기념 면민체육대회 하던 추억들. 한때 복어잡이 전진기지로
성시를 이루었던 우봉향과 거북바위.

누가 먼저 닿나 입술이 파래지도록 헤엄치던 당월 앞제비섬, 신령스러운 배진 뒷산에 오르면, 고래들이 하얀 분수를 수도 없이 만드는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공동묘지 옆으로 절벽 높이 흔들바위와 아래로 초록비단 같은 잔디와 바다가 절정을 이룬 솔개에는
온산 춘도초등학생들의 봄 소풍과 면민들의 화전장소였었지.

술 취한 아재가 밤새 도깨비와 씨름하느라 온몸이 흙투성이가 된 채 큰 대자로 쓰러져
잠들어 있던 소골못 뚝. 저자에서 소 팔고 오는 사람 노리던 마산고개,
산성고개, 소골못고개, 처용고개의
그 큰 ‘도둑놈방귀’는 또 어디로 갔을까.

목도 앞 춘도의 춘은 왜놈 말이라며 분개하면서도, 동백꽃 필 무렵이면 전국의 선남선녀들이 나들이 장소로 경쟁하듯 다녀갔다. 그러나, 그러나 말이다. 지금 우리는
누군가가 고향이 어디냐고 물어오면,
온산국가산업공단이라 답해야만 한다.

차라리 우리들 고향이 북한이라면
언젠가 통일이 되어 갈 수라도 있으련만
차라리 우리들 고향이 수몰되었다면
잠수하여 볼 수라도 있을 것을.
설사 남아있는 곳이라 해도 높은 굴뚝 옆의 그곳은 이미 그 옛날의 그곳이 아니더라.
뿔뿔이 흩어졌다지만 산 사람들이야
언젠가는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

그러나 우리들 조상들의 음택들은
아예 흔적조차 없이 사라져 버렸다.
다정했던 내 이웃들은 타향살이 길을 떠났고 온산 1번지였던 처용암마저
울산시 황성동으로 이사하고 말았다.
비료포대로 썰매 타던 진사. 부사어른의
무덤은 어디로 이장했을까?
바닷가에 해산물을 늘어놓고 장사하던
당월장터, 여러 관공서와 상가들이 이어진 방도마을의 목도장에 먼 길 걸어 나들이하던 우리네 이웃들은
모두가 어디서 살고 있을까.

고향 이름을 따뜻한 온자로 쓰기에
언젠가 온천이 나올까 했더니.
공장들이 들어서서 굴뚝마다
온기를 뿜어낼 줄이야.
그 굴뚝 연기는 저녁밥 짓느라 피어오르는 정겨운 연기 냄새가 아니더라.

그러나 어쩌랴. 내 이웃, 내 겨레가
잘 살도록 하고자 한 일 일진대.
누렁이 앞장 세워 쟁기질하며 살아왔던
우리넨데, 후손들은
호미, 낫 대신 기름때 묻은 작업복에 망치, 스패너 들고 살아가는 차이일 뿐이려니,

이곳이 또 하나의 내 고향인 것을.
이 또한 우리네 옛 고향의 터전 위에
세워진 것이기에 숙명적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곳이거늘.
이제 우리는 내일을 향하여 희망가 부르며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 가리라.
힘차고 살갑게 그렇게 살아가리라.

고향을 잃은 날로부터 4천여 일 되는 2010년 6월. 고향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조말(시각 예술가)

한국 역사의 자취에서 작업의 모티브를 얻으며 서사와 조형을 상호 호환적으로 연결하는 작업을 설치, 오브제로 풀어낸다. 과거 비운의 시대, 폭력의 역사적 사건을 조사하고 보이지 않는 틈을 발견하여 서사를 만든다. 믿음, 신념, 광기가 촉발하는 지점, 극적인 상태에 관심을 갖고 있다.
https://www.jomal.co.kr/ 


답사 일시: 2023.3.03~04

호스트: 조말(시각 예술가)

영상 제작: 노드 트리

기획: 예술로 가로지르기  

주관: 히스테리안  

후원: 한국문화예술위원회


* 본 프로젝트는 아르코 공공예술 주제심화형 프로젝트 <예술로 가로지르기 - 욕망이 빠져나간 자리 : 출몰지>의 일환으로 진행됩니다. 소식 - https://www.instagram.com/around_across_above/ 

 https://around-across-abov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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