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허락된 가장 깊은 자유

읽고 쓰는 주말

by 서담

맘껏 읽고 쓸 수 있다는 것...

휴일만큼 이 말이 잘 어울리는 시간이 또 있을까.

아무에게도 쫓기지 않고, 시계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날. 나는 그날만큼은 마음껏 읽고, 마음껏 쓴다.

평소에 무엇인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그것은 대개 시간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여백이 모자라서일 때가 많다.


그래서 휴일의 독서는 허기진 마음을 채우는 행위라기보다, 오히려 더 깊고 넓은 자유를 누리기 위한 선택에 가깝다. 채우기보다는 펼쳐놓고, 쌓기보다는 머물러보는 시간. 나는 그 시간을 읽고 쓰는 일로 건넌다.


독서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만나는 일이지만, 동시에 나 자신의 생각을 깊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우리는 흔히 책을 통해 지식을 얻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읽다 보면 곧 알게 된다. 책이 정말로 건네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질문’이라는 사실을. 그 지식이 내 안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기억과 맞닿고, 어떤 물음으로 다시 태어나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말이다.


영상이나 짧은 글을 소비할 때 생각은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편리하고 즉각적이지만, 그만큼 쉽게 흩어진다. 반면 구조를 갖춘 텍스트를 천천히 읽는 시간에는 이미 알고 있던 것과 새롭게 마주한 지식이 서로를 불러낸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서 기억이 깨어나고, 생각은 조용히 깊어진다.


‘자기 안으로 파고든다’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에서 태어난다. 그러나 지금의 우리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좀처럼 견디지 못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몇 초 이동하는 순간에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식당 앞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짧은 공백마저 화면으로 채운다.


가만히 있는 시간은 낭비처럼 느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순간은 불안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생각은 언제나 빈 공간에서 자란다. 고요와 여백이 사라진 삶에서는 깊은 사유도 뿌리내리기 어렵다.


‘책 속의 보물’이라는 오래된 말이 떠오른다. 정보와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채널은 책 말고도 차고 넘친다. 검색 한 번이면 원하는 답을 바로 얻고, 요약된 지식은 몇 분 안에 소비된다. 그럼에도 종이책 독서가 여전히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불편하고 느리기 때문이다.


지루함을 견디며 끝을 향해 한 장 한 장 종이를 넘기는 그 과정 속에는 다른 매체가 대신해 줄 수 없는 밀도가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결국 시간을 들여 생각하는 연습이며, 스스로를 천천히 단련하는 일이다.


그렇게 쌓인 사유는 결국 글로 이어진다. 글쓰기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다. 경험을 정리하고, 생각을 가다듬으며, 관점을 달리해보고,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에 언어를 부여하는 작업이다.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고 싶은지를 스스로에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내 삶에서 건져 올린 문장은 개인적인 기록을 넘어, 누군가에게는 작은 위로나 도움의 메시지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글은 혼자 쓰지만, 결코 혼자만을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일부러 시간을 떼어 글을 쓴다. 해를 거듭할수록 삶의 재생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지고, 셀 수 없이 많은 순간들이 아무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증발해 버리는 것을 보아왔기 때문이다.


글은 그런 장면들이 허무하게 사라지지 않도록 붙잡아 두는 가장 정직한 방식이다. 기억에 친절한 주석을 달아, 마음의 서랍 속에 차곡차곡 정리해 두는 일. 그것이 나에게 글쓰기다.


새해에는 올해보다 조금 더 많은 장면을 붙잡고 싶다. 그리고 1년쯤 지난 어느 날, 한 해를 돌아보는 글 한 편을 남길 수 있다면 좋겠다. 그 글의 마지막 문장은 이랬으면 한다.


“읽을 만한 가치를 담은 글을 쓰고, 나눌 만한 시간을 살았다”라고.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서도 나는 믿고 싶다. 느리게 읽고, 깊이 생각하고, 성실하게 기록하는 삶이 결국 나를 나답게 만든다는 사실을.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은 세상으로부터 도망치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세상을 더 온전히 살아내기 위한 준비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그 믿음 하나로 책을 펼치고, 조용히 문장을 적는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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