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증명해 주는 것들

꾸준함이라는 가장 조용한 조건

by 서담

어떤 일이든 이루어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 단순한 문장은 알면서도 자주 잊힌다. 우리는 늘 결과를 먼저 떠올리고, 과정은 건너뛰고 싶어 한다. 서두르면 조금은 앞서갈 수 있을 것 같고, 재촉하면 무엇인가 빨리 손에 잡힐 것만 같다.


그러나 삶은 그런 조급함을 거의 허락하지 않는다. 겉으로는 이루어진 것처럼 보여도, 그 효과가 오래가지 않는 이유는 대개 여기에 있다. 시간이 충분히 스며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나에게 맞닿은 한 가지.. 책을 읽고 글을 잘 쓰고 싶다는 마음도 그렇다.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또 내고 싶다는 바람 역시 그렇다. 그 꿈은 종종 밤늦게 찾아오고, 어느 순간 마음을 꽉 붙든다. 그러나 그 바람이 하루 만에, 한 달 만에, 혹은 정확히 1년 안에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어떤 사람에게는 몇 해가 걸리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보다 더 긴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다. 시간은 공평하지 않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계속하는 사람에게만 시간을 건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종종 “언제쯤 가능할까요?”라고 묻는다.

하지만 더 중요한 질문은 따로 있다. “그때까지 나는 계속할 수 있을까요?”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그 마음을 오래 붙들 수 있는가, 지루함과 의심이 찾아와도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 그 질문 앞에서 대부분의 일은 갈린다. 성취는 재능보다 끈기에서 결정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한다.

무엇을 하고 싶다면, 그냥 하라고. 다만 조건이 있다고. 그 조건은 화려하지도, 특별하지도 않다. 목적이 분명할 것, 그리고 끝까지 할 것. 이 두 가지다. 목적이 흐릿하면 흔들리기 쉽고, 끝을 정하지 않으면 중간에서 멈추기 쉽다.


꾸준함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왜 시작했는지 알고, 어디까지 갈 것인지 스스로에게 약속할 때, 비로소 지속은 가능해진다.


꾸준히 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조용한 일이다.

눈에 띄는 변화도 없고, 남에게 자랑할 만한 성과도 쉽게 나오지 않는다. 매일 비슷한 자리에 앉아 비슷한 문장을 읽고 쓰고, 어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하루를 반복하는 일. 그래서 지루하다.


그래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이게 정말 의미가 있는 걸까.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지루함을 견딘 시간들이 나중에 가장 단단한 토대가 된다.


시간은 서두르는 사람의 편이 되어주지 않는다.

대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의 편이 된다. 여기서 기다림은 멈춤이 아니라, 같은 방향으로 계속 걷는 인내다. 방향이 맞다면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그렇다.


하루 한 페이지의 독서, 하루 몇 줄의 글쓰기, 그 작은 반복이 어느 순간 선을 이루고, 면을 이루고, 결국 하나의 세계가 된다. 우리는 그 변화를 실시간으로 알아차리지 못한다. 다만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며 깨닫게 된다. 아, 어느덧 여기까지 와 있구나.


꾸준히 한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신뢰하는 일이다.

지금 당장 보이지 않아도, 이 시간이 헛되지 않다는 믿음.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 머무를 수 있는 용기. 그 용기는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선택으로 길러진다.


오늘도 한다, 내일도 한다,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한다. 그 반복이 쌓이면, 시간은 더 이상 적이 아니다. 오히려 가장 든든한 내 편이 된다.


어떤 일은 계획대로 오지 않는다.

예상보다 늦어질 수도 있고,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해온 사람에게 그 도착은 낯설지 않다. 이미 그 시간을 살아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는 순간의 이면에는, 수없이 많은 평범한 날들이 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보였던 날들, 그러나 분명히 축적되고 있던 시간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나에게 주문을 걸 듯 말해본다.

하고 싶다면, 그냥 하자고. 다만 쉽게 포기하지 말자고. 지루함이 찾아와도, 속도가 느려 보여도, 남들과 비교하고 싶은 마음이 올라와도, 다시 처음의 목적을 떠올리자고.


그리고 마지막까지 가보자고. 그 끝이 어디일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끝까지 간 사람만이, 자신만의 시간에 도착한다는 사실이다.


시간은 늘 묵묵하다.

그러나 그 묵묵함 속에는 놀라운 성실함이 있다.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시간은 반드시 무언가를 남긴다. 그것이 바로 꾸준함이 가진 가장 조용하고도 확실한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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