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돌아간다

마음을 건너기 위한 가장 조용한 방식

by 서담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마음이 불편한 순간들이 자꾸만 반복되기 때문이다. 말로는 정리되지 않는 감정들이 쌓이고, 그대로 두면 쉽게 판단하고 쉽게 미워하게 될 것 같아, 나는 글을 쓴다.


글은 마음을 흘려보내는 통로이자, 넘어가기 위한 다리다. 감정을 눌러두지 않고 펼쳐 놓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그 불편함의 정체가 보인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 나는 그때의 감정과 생각에 천천히 집중하게 된다. 무엇이 나를 힘들게 했는지, 왜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흔들렸는지, 내가 정말 불편했던 지점은 어디였는지를 묻는다.


그러다 보면 깨닫게 된다. 문제는 사건이 아니라 마음가짐이었음을. 같은 상황도 어떤 마음으로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로 남는다는 사실을, 글은 늘 조용히 증명해 준다.


지금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면, 비로소 어디에 힘을 써야 할지도 보인다. 바꿀 수 없는 것에 애쓰지 않게 되고, 고쳐야 할 나 자신의 태도가 또렷해진다.


글쓰기는 누군가를 평가하기 위한 도구가 아니라, 나를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다. 그래서 이 일은 늘 ‘스스로 깨달아가는 시간’에 가깝다.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말의 태도까지 바꾸어 놓았다. 상대 또한 나의 말이나 행동으로 불편해질 수 있다는 상상을 하게 되면서, 언어 선택에 점점 더 신중해졌다.


말을 고르고 또 고르다 보면 침묵이 길어진다. 그 침묵 속에서 나는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그 사람이 무엇을 바라고 있는지 조심스럽게 헤아려본다. 그래서인지 대화는 종종 더 어렵고, 때로는 더 불편해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은 상대를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나로 인해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만큼은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내 말만 계속할 수 없다.


결국 나는 다시 ‘쓰는 일’로 돌아온다. 글 앞에 앉으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말처럼 즉각적인 반응을 요구하지 않고, 시선을 맞추지 않아도 되며, 상대의 말을 기다릴 필요도 없다. 오롯이 글을 쓴 이의 생각과 마음에 집중할 수 있다. 글은 벽이 없고, 가림막도 없다. 진심만 남는다.


내 생각을 문장으로 다듬어 세상에 내놓을 때, 설명하지 않아도 괜찮고 변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밀려온다.


있는 그대로의 생각을 꺼내놓고도,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감각. 그 감각이 나를 계속 쓰게 만든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말만큼 사람을 온전히 안심시키는 표현이 또 있을까.


어쩌면 우리는 글을 통해 타인에게 이해받고 싶어서라기보다, 스스로를 외면하지 않기 위해 쓰고 있는지도 모른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바라보고, 그 모습을 부정하지 않기 위해서. 글은 결국 나 자신에게 건네는 가장 솔직한 대화다.


본질로 돌아가 보면, 나는 인정받기 위해 글을 쓰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끝까지 읽어주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여주길 바라는 마음은 늘 있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이지만, 동시에 아주 비슷한 삶을 살아간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비슷한 음식을 먹고, 같은 밤에 지친 몸을 눕힌다. 낯선 얼굴들과 스쳐 지나가며 “그동안 잘 지냈나요”라는 안부를 묻는다. 서로의 이름은 몰라도, 비슷한 하루를 견뎌냈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글은 누군가에게 말을 거는 가장 단정한 방식이 된다.

“나도 그랬다”라고,

“당신만 그런 게 아니다”라고.


나는 오늘도 글을 쓴다.

말이 닿지 못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판단보다 이해를 선택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위해.


그래서 나는, 다시 글로 돌아간다.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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