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삶에 대하여
이상적인 삶은 무엇일까? 삶에 정해진 트랙이 있을까? 모두가 없다는 대답을 하지만 사람들은 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리는 듯 하다. 대학생인 나에게 취업이라는 거대한 벽도 두렵지만, 그것보다 더 무서운 건 결혼과 육아이다. 어릴 때부터 지겹게 들어온 안정적인 가족의 중요성과 아내와 엄마의 역할이 서른 이후에 내가 가게 될 길은 아니라고 믿고 싶다. 누군가는 내가 아직도 아이라고 하겠지만, 생각다운 생각이란 걸 할 수 있게 된 때부터 결혼이 싫었다. <작은 아씨들>은 각자의 꿈과 네 자매 서로로 채워진 유년 시절이 끝난 이후의 좀 더 현실적인 여성에 대한 영화이다.
<스포일러 있음>
조는 작가가 되는 게 꿈이다. 네 자매와 함께 살던 십대에도(정확히 십대라는 표현은 없지만) 밤을 새서 글을 쓰고 크리스마스를 위한 극을 썼다. 연극을 보러 언니인 메그와 둘만 갔을 때, 막내동생 에이미가 자신을 두고 간 조를 원망하며 했던 것도 조의 글을 불태우는 일이었고 조는 자신의 분노를 가감없이 드러내며 에이미를 무시했다. 그만큼 글에 대한 조의 열정은 상당하고, 실제로 재능도 있었을 것이다.
영화는 유년과 성년을 오가며 진행된다. 유년의 마지막은 에이미가 고모와 함께 유럽행에 오르기로 했다는 걸 메그의 결혼식에서 가족들에게 전하는 장면으로 마무리된다. 조는 에이미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지만, 배우의 표정에서 진한 아쉬움이 전해진다. 에이미는 그림에 재능이 있기도 하지만 부자 남편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유로도 선택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이런 내 무의식적인 생각에 여성혐오가 뿌리깊게 박혀있어 글을 쓰다 깜짝 놀랐다.
이후에 조는 뉴욕으로 떠나 하숙집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글을 써서 투고하는 일상을 이어간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 글의 고료가 보통 25~30 달러지만 조의 글은 20 달러가 매겨질 때 그는 이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데, 이후 책을 출간할 때와 대비된다.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을 대비할 때 조의 성장이 두드러진다는 점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성인이 되어 자신의 삶을 살아갈 때도 점진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이 조를 이해하고 좋아하게 되는 점이다.
첫째 메그는 가난한 교사와 결혼했다. 사랑으로 맺어졌으나 행복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옷을 사는 데도 눈치를 보고, 계속해서 일을 하지만 메그가 어릴 적부터 시달렸던 가난은 계속되기만 한다. 메그의 배우자가 객관적으로 좋은 사람인지도 판단하기 어렵다. 어릴 때는 결혼이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이라 배웠지만, 어느순간부터 가족이라는 작은 사회를 만드는 법적인 계약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메그를 보면서 엄마가 많이 생각났다. 이 영화를 엄마와 둘이 처음 봤는데, 엄마도 메그가 불쌍하기도 하고 가장 이입이 잘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 가족이 가난하진 않지만 다양한 이유로 엄마가 겪은 고통이 많다. 대부분의 가족은 온전히 아내와 엄마의 희생으로 지탱되곤 하고, 여성의 선택이고 존중되어야 한다는 말로 덮어버리기에 지나치게 부당한 희생이 주목되지 못할 뿐이다. 메그에 대해 이야기하며, 엄마는 내게 '결혼은 가장 좋을 때가 아니라 상대의 밑장을 본 뒤 하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근데 엄마는 가장 좋을 때 결혼해서 나를 낳았다. 그리고 아빠의 밑장을 봤다.
메그가 결혼할 때, 조는 그의 언니의 결혼을 반대한다. 그러나 메그는 조에게 그와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서 자신의 꿈(아내와 엄마)을 무시하지 말라고 한다. 동시에 언젠가 조의 차례가 돌아올 것이라 이야기한다. 나는 이 순간에 메그가 정말 싫었다. 둘은 다른 길을 갔고 서로를 사랑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서도 엄마가 생각났다. 난 평생 비혼으로 살것이라 이야기하지만 엄마는 가족의 안정성을 늘 강조하기 때문이다. 지금이야 겉으로라도 내 생각을 존중하지만 엄마가 내게 가장 하고싶어하는 말일 거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막내 에이미는 유럽에서 그림 공부를 이어가지만 자신은 소질이 있을 뿐 재능은 없다는 생각 끝에 화가의 꿈을 접었다. 마지막에 조의 학교에서 그림을 가르치는 걸 보면 완전히 접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결혼을 해서 아내와 엄마로서의 삶에 치중하기를 선택했다. 자신을 좋아하는 부자 남성을 거절하고, 조에게 고백을 거절당한 후 방탕한 삶을 살던 소꿉친구 로리와 결혼한다. 로리는 괜찮은 배우자라고 생각한다. 부자고, 가족에 헌신적이다. 그러나 로리는 정말 에이미를 사랑했을까? 에이미의 가족을 원해 그와 결혼했을 것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전통적인 관점에서 네 자매 중 최고의 선택을 한 건 에이미지만 나는 그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 여성에게 직업이 허용되는 사회일 때 에이미는 화가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결혼은 몰라도 온전히 그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에이미를 볼 때마다 내 여동생이 생각났다. 둘이 닮았다. 내 동생은 어른들에게 '부자 남편 만날 상'이라는 여러모로 문제있는 말을 들을 때가 많다. 아빠의 직장 동료분들이 그런 평가를 할 때마다 속이 뒤집히는 것 같지만 걔는 그냥 웃어넘기곤 한다. 연하에 잘생기고 돈 많고 본인보다는 덜 똑똑하되 세상을 아주 모르지는 않는 남자면 결혼하겠다는 얘기를 하는데 그런 사람이 있어도 안 할 것 같다. 딱히 어떤 일을 하고 살겠다는 열정이 있진 않지만 적어도 자기 삶에 충실하다. 그래서 에이미가 현대에 태어났다면 결혼을 안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내 동생은 엄마로서, 아내로서만 살기엔 너무 자의식이 강하기 때문이다. 에이미가 조의 글을 태울 때 엄마가 귓속말로 어릴 때 내 여동생이 하던 짓이랑 똑같다며 웃었다. 자매는 싸우면서 큰다.
둘째 조는 가난과 다투며 작가로서의 꿈을 뉴욕에서 이어나간다. 셋째 베스의 죽음 이후 힘겨운 삶에 지쳐 로리를 거절했던 것을 후회하지만, 로리는 에이미와 약혼한 후다. 정말 최고의 타이밍이 아닐 수 없다. 이 부분에서 여성이 경제적 자유를 가질 수 없는 사회가 결혼 제도를 유지하는데 큰 기여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힘든 고비를 넘긴 후, 조는 네 자매에 대한 글을 쓰고 책을 출간하게 된다. 고모가 집을 물려주게 되어 학교도 연다.
조가 하숙집에서 알게 된 교수와 결혼을 했는지, 하지 않았는지는 사람에 따라 의견이 갈릴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안했다고 믿고싶고 안했다고 생각한다. 조가 쓴 책의 엔딩이라면 납득이 가지만, 비혼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던 조가 갑자기 신념을 틀어버릴 정도로 감정에 좌지우지하는 사람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수가 조의 집을 떠날 때 주변 가족들이 쫓아가라며 부추길 때 속이 답답해졌는데, 이성과 조금이라도 좋은 관계를 가질 때 연애와 결혼으로의 연결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사회 관습이 나를 압박하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커리어에 진전이 있을 때, 여성이 결혼을 하면 무용지물이 되곤 하는데 이것이 연상되기도 했다.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 고민할 때, 내가 여성이라는 점은 가장 중요하다. 결혼에 대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도, 나이에 대해서도 벽을 느끼게 되곤 한다. '여성은 어떠하다'는 고정관념이 정말 내가 가진 특징이 되고, 내가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에 부합하는 것처럼 느껴져 스스로 한계를 짓게 되기도 한다. '작은 아씨들'은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이를 토대로 삶에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할 지 생각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 영화에 대해 많은 여자들과 이야기해 보았지만,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달랐다. 나는 누구보다 조에게 쉽게 이입했고 비슷하다고 느꼈다.
네 자매가 각자 다른 선택을 했어도 서로를 존중하고 살아가듯, 나도 내 주변의 친구들과 오랫동안 좋은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다. 피와 법으로 이어진 세 남매가 좋은 가족이자 동반자로 남았으면 한다. 가족이 내 삶을 온전히 존중해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여자기에 쉽게 이입해서 볼 수 있었고 여성의 시선으로 해석되기 쉬운 영화라 다른 사람들이 이 여화를 어떻게 보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주변인과 깊은 대화를 나누어 볼 수 있게 만드는, 꼭 한 번은 보았으면 좋겠는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노인이 된 조가 삶을 되돌아 보았을 때 어떤 평가를 내릴 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