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사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Mar 25. 2024

나는 왜 사는가

나만의 WHY

최근 몇 주 동안 섬세이의 WHY를 정리하기 위해 멤버들과 많은 시간을 쏟았다. 그 시작은 '자연을 늘 마주할 수 있도록 (Nature, Anytime Anywhere)'이라고 정한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를 드러낸 WHY가, WHY가 아니라 HOW가 아니냐는 한 멤버의 물음으로 시작됐다. 그 물음을 따라가 보니 그 멤버의 말대로 이것은 어떻게 그 WHY를 실현하겠다는 HOW가 맞다는 생각에 닿았다. 그럼에도 내가 만들고 모든 순간들을 결정해 온 섬세이의 WHY는 내 안에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고, 멤버들과 WHY를 찾기 위한 작업을 이어갔다.


나는 왜 자연을 늘 마주하게 하고 싶었을까를 묻기 시작했다. 내가 맨발로 잔디를 밟았을 때 느꼈던 감정, 따스히 내리쬐는 햇빛을 맞으며 들었던 감정, 한 번도 같은 모양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파도의 형태와 소리를 감각하며 마주한 감정들이 무엇이었길래, 나는 왜 그 자연을 사람들이 늘 마주할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는지를 물었다. 그때마다 깊은 곳에서 느껴졌던 감정은 인간다움의 회복이었다. 일상에서 굳어져가던 신체도, 정신도 자연을 마주할 때마다 다시금 자연스러워짐을 느꼈다. 그 자연스러움으로의 회복을 가장 효과적으로 돕는 것이 자연을 마주하는 것이라 나는 믿고 있었고, 그렇게 살고 있었구나 싶었다. 그렇게 정리한 섬세이의 WHY는


'누구나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어야 한다 (Everyone should be able to live in the most human way possible)' 였다.


이 믿음 안에서 우리는 발전하는 기술을 융합하여,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자연을 늘 마주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것을 통해 자연스러움을 회복하고, 이를 통해 누구나 가장 인간답게 살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것이었다.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의 본질인 WHY를 정리하고 멤버들과 나눴다. 보다 확고한 우리의 WHY를 품고 나니, 지난 5년간의 결정들과 앞으로 우리가 해야 할 일들이 명확히 보인다고 멤버들도 말했다.


이렇게 브랜드의 WHY, HOW, WHAT 이 드러나니 다시금 궁금해지는 것은 나의 WHY였다.

결국 최진석 교수님이 말씀하신 '나는 누구인가', 구본형 선생님이 말씀하신 '나의 욕망', 그리고 Simon Sinek이 말하는 'WHY'는 같은 본질이었다. 결국 나는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떻게 살고 싶은지를 명확히 하기 위한 나만의 '왜'가 필요했다. 2020년부터 시작된 나만의 '왜'를 향한 간절한 나날들 덕분에, 많은 조각들을 모아 왔지만 여전히 명확한 한 문장으로 내게 오진 못했다. 우리 브랜드의 WHY를 찾아낸 김에 나의 WHY를 찾는 것도 박차를 가해 보기로 했다.


Simon Sinek이 제안한 파트너 세션을 방법으로 택했다. 내가 준비해야 하는 건 지금의 나를 만든 나의 결정들과 사건들, 그리고 그때 내가 느꼈던 감정들을 구체적이고 솔직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파트너는 내가 수치스러운 감정에 대해서도 숨기지 않고 이야기할 수 있는 상대로 정하라고 했고, 그 파트너는 객관적으로 내가 그 이야기 안에서 계속해서 반복하는 단어들과 감정들을 노트에 적어내면 된다고 했다. 노트에 고스란히 남겨진 그 단어와 감정들을 가지고 나만의 WHY를 한 문장으로 만들어보는 세션이었다. 세션은 보통 4시간 정도가 필요하다고 했다. 나는 Simon Sinek이 말한 파트너의 조건을 보자마자 기본학교 동지인 ㅊㄱ를 떠올렸다. 그 자리에서 바로 ㅊㄱ에게 연락하여 WHY 세션을 도와달라 요청했다.



그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ㅊㄱ가 우리 집으로 왔다. 나는 그동안 나를 만들어 낸 모든 결정과 사건들, 그리고 그때 나의 감정들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파트너의 질문들도 나의 감정들을 더 구체적으로 드러내는데 중요한 역할이었는데, 좋은 질문들을 중간중간 던져줘서 나는 더 깊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세 시간 정도를 쏟아낸 후에야 반복되는 키워드들이 정리됐다. 주로 내가 반복했던 단어들은 이러했다.


부러움, 인사이트, 주체적, 우월감, 인정, 수준 높은, 본질, 장르, 유쾌한



Simon Sinek은 이 단어들 중 WHY로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_____ 함으로써, _____ 한다'로 만들어보라고 했다. 앞 빈칸에는 세상에 대한 '기여'가, 뒷 빈칸에는 '영향력'이 들어간다고 했다. 세션 파트너였던 ㅊㄱ는 '주체적인 삶을 통해 (기여) 사람들을 본질에 가까워지게 한다 (영향력)'로 그 빈칸을 채웠다. Simon Sienk은 특히나 '기여' 부분에 들어가는 문장은 그 자체로 내 가슴이 뛰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트너가 제안해 준 문장으로는 그렇지 못했다. 그다음으로 제안해 준 문장은 '수준 높은 장르를 만들어 사람들을 가장 인간답게 살게 한다'였다. 두 개의 WHY 문장 모두 내 근본의 WHY와 가깝다고는 느껴졌지만 아침에 눈을 떠서 이 문장을 떠올린다고 했을 때 벅차지 않을 것 같았다.


순간 내가 뱉어낸 단어 목록 중에 '색깔'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바로 나의 WHY 문장이 떠올랐고, 문장을 파트너에게 읊어주는 동시에 바로 설레이는 감정이 가슴속 깊은 곳에서 느껴졌다.


나만의 또렷한 색을 드러내, 사람들이 자기만의 색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어린 시절부터 바로 지금의 현재까지를 관통하는 나의 WHY가 분명했다. 다른 운동부가 아닌 조정부가 끌렸던 이유도, 해군을 가서는 갑자기 헌병을 자원했던 것도, 대학을 졸업하면서 취업이 아닌 사업을 택했던 것도, 머리를 기르고 남들이 잘 입지 않는 옷들에 손이 선뜻 갔던것도, 티비광고가 아니라 테라리움을 선택했던 것도, 성수동에 머물지 않고 판교로 이사해 고독의 집으로 만들었던 것도 모두 나만의 색을 드러내고자 하는 강한 욕망이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시에 색이 드러난 나를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자기만의 색을 조금씩 드러내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늘 그곳에는 기쁨과 벅참이 있었다. 이미 마음속 깊이 감정으로는 느끼고 있었으나, 언어로 표현하니 더 명확하게 내 삶을 나 자신에게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부터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무엇을 할 것인지도 더 또렷하고 선명하게 그려졌다.


ㅊㄱ가 나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색. 단풍 주황! 반딧불 초록!


2020년 1월부터 시작해 꼬박 4년을 채우고 3개월이 지나고나서야 나는 나만의 WHY를 언어로 끄집어내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는 누구인지를 알고, 나의 욕망을 알고, 나의 WHY를 매일 아침 되뇌이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한 일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