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모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Oct 27. 2024

성수기에 광고를 포기한 이유

2024년 10월

6월의 첫날부터 모든 광고를 중단했으니 그렇게 지낸 지 다섯 달이 다 되어간다.


하필이면 그 마음을 먹었던 때가 우리 메인 제품의 최대 성수기였지만 이미 마음을 먹은 바 돌릴 수 없었다. 결국 무더웠던 여름시즌 내내 광고를 하지 않고 지냈다. 무언가 또렷한 계획이 있어서 광고를 하지 않았다기보다는 무언가 또렷한 계획이 없으니 하지 말자였다. 모두가 하니 우리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하는 마음에 누군가 떠밀어 허우적대듯 광고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보다 정확한 이유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히 생존이 가능했던 이유는 지난 5년간 쌓아 온 자산으로 다져진 기초체력이 만들어 내는 매출 덕분이었다. 꾸준히 쌓아온 호텔, 운동시설, 수영장 등의 제휴처에서 사용해 본 경험자들의 구매 덕분이었다. 이제는 8,000개가 넘게 쌓인 후기가 낯선 제품을 바라보는 구매자들의 망설임을 허물어 준 덕분이었다. 두 개 세 개를 더 구매해서 가족과 주변 친구들에게 기구매자들이 선물하기 시작한 덕분이었다. 그랬기에 넘칠 정도로 넉넉한 매출은 아니었지만 허우적대지 않고 가만히 멈춰 생각이라는 것을 해 볼 수 있었다. 감사하게도.


재밌게도 나는 우리나라 SNS마케팅의 시조새로 일컬어지는 팀에 있었다. 돼지코팩을 시작으로 미팩토리를 매각하는 4년의 시간 동안 하루도 광고를 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새로운 광고방법을 찾고 광고효율을 높이고 광고소재를 개발하는 일이 우리의 일이었다. 강연이나 인터뷰를 요청받으면 대부분의 질문은 당연하게도 어떻게 광고하는지였다. 그 후로 제품은 화장품이 아닌 소형가전이 되었지만 다를 것은 없었다. 에어샤워를 판매하는 5년 동안도 해오던 대로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광고를 했다. 해온 것이 광고고 그나마 할 줄 아는 것이 광고인 내가 광고를 하지 않겠다 하는 이 상황이, 참 묘하다.


광고를 하지 않은 다섯 달은 참 귀했다.

한 번 굴리기 시작하면 관성적으로 계속 굴리게 되는 광고라는 쳇바퀴에서 내려오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나에게 노출되는 다양한 브랜드들의 광고들을 마주할 때마다 우리는 이대로 괜찮은 것인가 하는 물음이 매번 떠올랐고, 아직은 아니라고 답했지만 불안한 마음은 쉽게 잠재워지지 않았다. 이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를 떠나서 광고비를 집행하면 적어도 마음만은 편할 듯했다. 뭐라도 하고 있는 느낌이 들 테니까. 허나 그것은 과거의 나에서 한 발짝도 나아질 수 없게 나를 주저앉히는 안락함이란 놈이란 걸 모른 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두 달을, 그렇게 세 달을 견디며 지내보니 조금씩 나의 관심과 시선이 다른 곳으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내가 하는 일의 진짜 모습은 무엇이고, 내가 하는 일에서 진짜 중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들여다보고 싶어 지기 시작했다.


먼저 궁금했다.

어떤 브랜드는 반짝하고 사라지지만 어떤 브랜드는 지속되는지. 어떤 브랜드는 엄청나게 큰 기업가치와 매출을 만들어내는데 어떤 브랜드는 그렇지 못하는지. 왜 애플의 아이폰은 선진국 사람들뿐 아니라 개발도상국의 사람들도 몇 달치의 월급을 모아가며 구매하는지. 왜 3만 원 정도의 헤어드라이기도 있는데 왜 사람들은 50만 원에 가까운 다이슨 드라이기를 굳이 사는지. 왜 비슷한 가격대에 좋은 디자인을 갖춘 발뮤다의 매출은 다이슨과 그렇게 큰 차이가 나는 것인지. 취향이 아닌 수준과 같이, 모든 것은 우연이 아닌 정확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묻고 또 물었다.


그러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에게 필요할 무언가를 만들어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얼마큼 바꾸어 놓을 수 있느냐가 내가 하는 일의 본질이겠구나 싶었다. 그 무언가가 없었던 때로 사람들이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은, 그 크기만큼 매출과 기업의 가치가 되어 눈에 보여지게 되는 게 아닐까 싶었다. 정확히 그 힘의 크기만큼. 적어도 나의 경험 안에서, 다이슨 드라이기를 한번 사용한 이후로 제품이 고장 나면 나는 별 수 없이 다이슨 드라이기를 다시 구매했다. 다른 드라이기를 쓰거나 다이슨이 없었던 시절로 나는 돌아갈 수 있냐면 나는 그럴 수 없었다. 수영장에서 수영을 마치고 파우더룸에서 다이슨 드라이기가 놓인 자리만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영장 회원들의 눈치게임을 보면서도 이는 나에게만 특별히 해당되는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그랬다. 나는 그러한 성격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서 세상에 대체되지 않는 가치를 얼마만큼 주고 있느냐를 정확히 보는 것이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관점에서 에어샤워의 후기를 다시 살펴보니, 구매한 고객들은 우리의 제품을 흔히 3대 이모라 부르는 식기세척기, 로봇청소기, 건조기 수준으로 보고 있었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없으면 안 되는 그 힘의 크기가 아이폰이나 다이슨 헤어드라이기가 가지는 힘의 수준이 아니라는 것도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전에 내 아이템이었던 스포츠크림이나 돼지코팩에 비하면 큰 크기의 힘을 가지고 있구나도 동시에 느껴졌다.  


그 힘의 크기들을 감각하게 되니 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그러한 성질을 가진 제품을 선택하고 탁월하게 만들어 세상 사람들의 생활 수준을 높이는 데 기여한 만큼 매출과 기업가치로 보상받는다는 관점을 가지니 그런 안정감이 들었다. 우연에 기대는 것이 아닌 구체적으로 기여해야 할 것들이 그려지니 차라리 든 안정감이랄까. 충분히 기여하게 된다면 세상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그 필요함을 느끼게 될 것이니, 내가 나서서 알리지 않아도 세상 사람들이 알아서 우리를 알리는 때가 올 것인데 이때 어려운 점은 그때가 언제인지 그 시기를 누구도 특정 지을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 더더욱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 해야하는 일은 본질적인 그 일을 그저 하고 그 일을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또 하루하루를 음미하며 지내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언제일지는 모르나 그 시기가 어차피 올 것임을 알고 있으니. 그러다 다수의 세상 사람들마저 그 힘의 크기를 자연스레 감각하는 때가 오면, 지금이 그때이구나 를 단박에 알고 그 기회를 잡아챌 수 있는 예민함이 나에게 있느냐가 또 하나의 승부처가 아닐까 싶었다. 혼자서 수면 위로 올라가려 허우적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함께 우리를 수면 위로 밀어 올리는 타이밍이, 바로 광고를 해야 하는 그때가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나의 이 생각들이 진리도 아니고 정답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주체적으로 나를 멈추고 나에게 질문하고 내가 정리한 나의 생각이다. 생각한 대로 행해보고 싶고 이 과정을 오롯이 내가 경험해보고 싶다. 그리고 드러난 결과에 대해서 피하지 않고 책임을 지고 싶다. 이렇게 해야만 어떤 결과 앞에서도 나의 삶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삶의 양식을 바꿀만한 제품을 나는 만들고 있는가가 본질이지 않을까


삶의 양식을 바꾸어 낼 수 있는 그 힘이 있다면 어떻게든 알려지게 되지 않을까


언젠가는 세상이 참지 못하고 우리를 수면 위로 밀어올리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그때 나는 거기까지만 볼 수 있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