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모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Jun 25. 2024

그때 나는 거기까지만 볼 수 있었다

2024년 6월

상반기 워크숍을 다녀왔다.


종속적인 태도로 진행해 오던 광고들도 5월 말 모두 오프했고 새로 합류한 선수도 있어, 다시금 전열을 정비하고 남은 하반기를 후련하게 뛰어보기에 적절한 시기였다. 섬세이의 시작인 5년 반 전부터 지금까지 팀을 이끌고 있는 주장 ㅅㅇ부터 워크숍 가는 주 월요일에 입사한 새로운 선수 ㅊㅂ까지, 선수 모두가 섬세이에 대해 다른 정보와 이해를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에 더더욱 필요했다. 우리 팀에 중요한 워크숍이라는 생각에 준비할 세션들이 적지 않았지만, 준비하는 내내 즐거웠고 또 기대가 되었다.


너무 기대를 한 탓인지(?) 아침 9시에 성수동의 사무실 앞에서 모이기로 한 당일날, 5시에 눈이 떠졌다. 마침 지각을 하면 탕후루 챌린지를 찍어서 본인 인스타에 게시하자고 한 멤버가 벌칙을 제안했고, 농담반이었겠지만 우리 팀이라면 그 일을 쉬이 넘기지 않을 수 있기에, 눈뜬 김에 사무실로 향했고 도착해 보니 6시 18분이었다.



탕후루 챌린지 덕분인지 모두가 9시 전에 모였고 우리는 가평으로 향했다. 워크숍 장소는 구단주 ㅇㅈㅇ 형님 이 아난티코드를 잡아주셨다. 한 시간 정도 걸려 도착한 카페에서 우리는 첫 번째 세션을 시작했다. 첫 번째 세션은 내가 먼저 경험해 본 나만의 WHY 문장 만들기 세션이었다. 한 시간 동안 파트너에게 지금의 자신을 만든 결정들과 사건들을 당시에 느낀 구체적인 감정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들어주는 파트너는 그 안에서 반복되는 키워드들을 캐치해서 정리해 주는 세션이다. 그렇게 뽑아낸 키워드를 활용해서 '나는 왜 사는가'를 표현하는 나만의 WHY 문장을 만들어 보는 세션이다. 다음 한 시간은 역할을 바꿔서 진행했다.


이를 통해 나는 왜 사는가 를 한 문장으로 정리해서 매일 아침 그 문장으로 벅차게 하루를 시작할 수 있기를 바랬다. 동시에 함께 뛰는 선수의 삶을, 그리고 가치관을 들여다 봄으로서 서로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기를 바랬다. 총 3시간을 주었고 세션을 마치기로 한 시간이 다 되었음에도 자기 자신과 서로를 들여다보느라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얘기하니 멤버들은 10분만 더! 를 외쳤다.



점심을 먹고 아난티코드에 체크인했다. 3시간은 각자에게 주어진 자유시간이었다. 몇몇은 수영장을, 몇몇은 헬스장을, 몇몇은 산책과 반신욕을 즐겼다. 날씨가 너무나도 좋았고, 눈빛이 건강한 사람들과 함께라 더 좋았다.



저녁 시간에 맞춰 레스토랑에 모였다. 어느덧 함께하는 선수들이 나를 포함해 13명이 되어 한 테이블에 모여 모두가 함께 이야기 나누기는 어려운 인원이 되었다. 자리는 제비 뽑기를 통해 배정했다. 지난 워크숍은 제주도의 포도호텔에 우리 에어샤워와 캔들워머가 전 객실에 배치되면서, 그것을 기념할 겸 멤버들과 함께 숙박했었다. 나는 가까이 앉은 멤버들에게 포도호텔과 아난티코드에서 느낀 수준과 감정들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자 했다. 예민하게 그 느낌들을 받아들이고 그 느낌들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어야, 우리는 다시금 그 이상의 것들을 뱉어낼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코스 요리의 플레이트들이 천천히 서빙되는 것이 고마운 마음이 들 정도로 이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에 나는 푹 빠져 있었다.

 


그러면서 나는 아는 만큼 보이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했다. 해상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지나고 보니 극단적으로 말하자면 나는 흑백으로 세상을 보며 살아왔던 것 같다고. 전에 ㅅㅇ가 공유해 준 파인만 교수가 꽃을 보는 예술가와 물리학자의 관점에 대한 영상을 보면서도 느꼈다. 누군가는 같은 꽃을 보면서도 다르게 이해하고 다르게 느끼고 다르게 감동할 수 있음을. 멀리 파인만 교수까지 가지 않아도 나는 최진석 교수님과 여준영 대표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사실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이 세상을 보는 해상도는 높았다는 것을. 마치 4K로 보듯.  


시선의 높이가 높은 해상도를 가져다준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단순 높이보다는 두터움이 해상도를 만든다는 것을 이내 알 수 있었다. 저 아래서부터 저 위까지 꽉 찬 두터움이 진정한 해상도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그 두터움을 갖춘다면, 그 해상도를 갖는다면 이제는 공간을 경험할 때도, 제품을 구매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사람을 만날 때도 이전과는 다른 감동으로 세상을 만끽하며 살아갈 수 있을 거라고 말했다. 그러니 두터워지는 것에 게을러지지 말자고.


https://www.youtube.com/watch?v=Prt5X7QCywM


이야기를 듣던 ㅅㅇ가 갑자기 궁금한 게 하나 있다고 말했다. 그는 5년 반을 함께 해오면서 내가 대표로서 잘못된 방향을 잡았다가 적지 않은 손해를 보았던 적도, 이미 내렸던 결정을 번복하여 시간을 허비했던 적도 곁에서 볼 수 있었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내가 무언가를 알고 강하게 믿고 이야기할 때 나오는 진심의 눈빛이 그때마다 있었다고 했다. 진심의 눈빛과 좋은 결과는 동의어가 아닌 것 같다는 뉘앙스의 질문이었다. 두터움과 해상도를 이야기하는 지금도 그 눈빛이 보였고, 과거의 나의 눈빛과 겹쳐졌기 때문에 궁금하지 않았을까.


대답을 하기 전에 잠시 생각해 봤다. 나는 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이유는 단순했다.


그때 나는 거기까지만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솔직하게 그대로 답했다. 그때 나는 거기까지만 볼 수 있었다고. 그러니 진심이었고, 그러나 낮은 해상도로 내린 결정들의 결과는 좋지 않았던 것 같다고. 이전보다 많은 깨달음이 생긴 것 같다고 느끼는 지금마저도 아직 턱없이 낮은 해상도를 갖춘 상태이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지점에서 좌절하거나 슬퍼하지 말고 높은 해상도를 갖추기 위한 욕망을 잃지 말자고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실수와 실패에 대해 서로 이해하고 기다려주자고 했다.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모여 앉았다. 첫 번째 세션에서 만들어 본 나만의 WHY 문장을 공유했다. 나는 어떤 기여를 함으로써 세상에 어떤 영향력을 주며, 매일같이 기뻐하며 살아갈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눴다. 지문과 같이 누구 하나도 같은 WHY 문장을 가진 사람은 없었다. 서로 다름이 기본이고 그 다름을 이해해야 함을 다시 한번 새겼다.



내가 준비한 '우리는 왜 이 일을 하는가' 키노트를 화면에 띄우니, 그때가 이미 밤 11시였다. 한 시간 안에 끊겠다고 약속하고 나는 키노트를 이어갔다. 흑백의 해상도를 가졌던 우리의 첫 시작을 공유했다. 바디드라이어로 생존하기 위해 내렸던, 지금 보면 부끄러운 흑역사도 모두 펼쳤다. 해상도가 조금 더 높아진 후, 섬세이로 리뉴얼을 하고 서울숲에 테라리움을 만들기로 한 과정을 공유했다. 기본학교에서 교수님과 함께한 6개월, 여준영 대표님을 찾아가 더 대담한 모험을 위해 브랜드를 매각하는 과정을 공유했다. 프레인빌라와 카메라타에서 열었던 전시와 CES2024에서 나무를 심었던 과정을 공유했다. 여기까지 왔는데도 여전히 종속되어 있던 나를 반성하며 모든 광고를 오프한 지금을 공유했다.


최진석 교수님의 '탁월한 사유의 시선' 중


바로 지금, 6월부터는 우리는 피아노 연주자도 아닌 음악가도 아닌 예술가의 시대를 시작해야 함을 공유했다.



그리고 이곳이 가장 나다운 내가 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행처임을 공유했다. 섬세이는 브랜드이기도 하지만 진짜 나로 살아보겠다는 사람들이 모인 하나의 커뮤니티이자 하나의 정신임을 공유했다. 우리 각자의 삶도 연주자로 살 것인지, 음악가로 살 것인지, 예술가로 살 것인지를 이곳에서 정해보자고 했다. 평생 소비자로만 살 것인지, 생산자로도 살아볼 것인지 정해보자고 했다. 만년 압도만 당하며 살 것인지, 압도하여 세상에 영감을 주며 살아볼 것인지 정해보자고 했다. 해상도를 높여 각자의 삶에서도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볼 수 있는 수준을 갖춰보자고 했다. 그리하여 각자의 삶에서도 가장 큰 이익을 쟁취해 보자고 했다. 우리 각자의 삶도 예술로 살아보자고 했다.



마지막 슬라이드에 교수님의 메세지를 남기고, 우리도 증명해 보자고 했다. 준비했던 총 113장의 슬라이드를 닫으니 12시 정각이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뒤풀이는 새벽 4시에 마무리됐다. 나는 정확히 23시간을 깨어있었던 채로 상반기 워크숍을 마무리했다.



'잊지 못할'이 아닌 '잊고 싶지 않을' 워크숍이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타협은 없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