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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혁이창 Jun 01. 2024

타협은 없다

2024년 5월

기술을 융합하여, 자연을 언제 어디서나 마주할 수 있도록 하겠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가 명료해져 기뻤다. 그보다 더 기뻤던 건, 이 일이 내가 죽기 전까지 완수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었다. 인류 생존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는 일이기에, 내가 죽고 난 후에도 누군가가 이어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생전에 완수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사명은 되려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다. 빨리 해치우고 싶다고 해치워지는 일이 아닌 것을 마주하니 오히려 차분해졌다. 끝이 어디인지 모르는,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는 이 일을 한번 해보겠다는 브랜드의 철학은, 좋은 선수들을 팀으로 불러 모아 주었다.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왜 이 일을 하는지를 적어도 알려고 하는 사람들이라 그런지 본인의 삶을 방치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과 고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고 회고하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다. 어느 순간 나도 더 많은 시간을 이 선수들과 함께 보내는 것이 행복하다는 생각을 하던 즈음에 맨시티의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클럽하우스에 모여 훈련하고 회복하고 밥을 먹고 운동하고 농담하며 경기를 준비했다. 경기에서 승리한 날도 또 패배한 날도 그들은 클럽하우스에 다시 모여 서로를 축하하기도 격려하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우리 선수들과 함께 할 '클럽하우스'(세상 사람들이 쓰는 용어로는 '사옥')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서 나도 선수들과 함께 땀과 눈물을 흘리며 성장하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싶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내가 원하는 클럽하우스의 모습이 있었기에 그것을 만족하려면 일단 그에 걸맞는 매출을 확보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연초에 우리가 올해 달성해야 하는 세 가지 중 하나를 작년보다 4배 성장한 매출로 잡았다. 그 목표를 들고 다섯 번째 달을 보내던 중, 우연히 인스타그램에 우리 브랜드의 광고가 떴다. 바디드라이어가 왜 필요한지를 기능의 우수성으로 설득하는 광고였다. 그 광고를 타고 들어가서 본 제품의 상세페이지는 왜 바디드라이어를 써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으로 구구절절했다.  


순간 무언가 잘못되었구나 싶었다.

익숙하지 않은 바디드라이어를 선택하는 이유는 기능 그 자체가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보다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 욕망이 작용했을 때 설득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고, 그랬기에 바디드라이어를 처음 시장에 알릴 때 시그니엘 호텔을 먼저 설득했었다. 이어서 새로운 제품을 적극적으로 시도해보고자 하는 얼리어답터들에게 우리를 알려야 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시장이 성숙되지도 않았는데 우리는 얼리어답터들을 건너뛰고 팔로워들에게 제품을 알리듯 기능과 이유를 구구절절이 설명하고 있었다.


왜 우리는 이런 선택을 했고 그렇게 마케팅을 했었나.

그 시작에는 내가 작년과 비교해 4배의 매출에 달하는 숫자를 정했고 나와 팀이 그 숫자에 압도되었다. 그 정도 숫자를 만들어내려면 얼리어답터가 아닌 누구나 에게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생각이 쏠렸고, 그 방향에 맞는 방식을 택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얼리어답터들로도 충분히 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고, 얼리어답터들을 만족시킬만한 방식으로 우리를 알렸어야 했다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어쩐지 편안했다.

남들이 이미 닦아놓은 길에 올라서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남들처럼 가는 일은 참 편안했다. 메타 광고를 하고, 유튜브 광고를 하고, 그렇게 뭐라도 하고 있으니 불안감이 덜했다. 인간 본연에 대한 이해를 해보려는 고민도 없었다. 어떻게 사람들이 우리 같은 익숙하지 않은 제품을 사게 되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기계적으로 타겟을 설정하고 광고소재를 만들고 광고비를 넣었다. 어쩐지 편안했다. 클럽하우스를 가지고 싶은 마음에, 빨리 매출을 내고 싶은 마음에 질문과 고민은 사라지고 요행만이 남았다.


그러던 하루는 성수동에서 열린 앤더슨씨의 가구페어에 들렀다.

그곳에서 ㅇㅈㅇ대표님을 찾아가 회사 인수를 제안했던 일 년 전 내 이야기를 만났다.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일을 해보려고 하니 두렵고 무섭다고 했었다. 과감히 스윙하다가 매번 삼진을 당해도 나를 다시 타석에 세워달라고 했었다. 그 약속만 지켜주신다면 나는 결국 장르를 만들어 낼 것이라 했었다.



안 그래도 요즘 나는 두렵고 무서울 정도의 상황에 나를 두고 있는지를 묻는 중이었다. 과감하게 스윙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중이었다. 어중간히 점수를 내기 위해 배트를 짧게 쥐고 있는 건 아닌가, 누가 시키지도 않은 번트를 대고 있는 건 아닌가, 공에 맞을까 봐 엉덩이를 슬쩍 뒤로 빼고 있는 건 아닌가를 수 없이 묻는 중이었다. 헛스윙에 삼진을 당해도 다시 타석에 세워주겠다는 그 사람은 변함이 없는데 나는 어떠한가를 묻는 중이었다. 이 타이밍에 이렇게 만나다니. 일 년 전 내 이야기. 후하.


진행하고 있던 광고들을 모두 중지하자고 했다.

어설프게 남겨두면 불안함도 두려움도 어설프게 다가올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팀멤버들과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해서는 안되는지를 다시 명확히 하기로 했다. 우리가 가진 섬세이의 자산 중에서 우리다웠던 것과 그렇지 않았던 것들을 나눠보기로 했다. 좋은 게 좋은 건 없다고, 절대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던 나의 각오도 그 사이 많이 흐릿해졌구나 싶었다. 나는 모든 선수들을 회의실에 모아, 왜 모든 광고를 중지했는지 - 내가 어떤 부분들을 타협해 왔었는지 - 그래서 우리 브랜드는 얼마나 흐릿해졌는지 - 앞으로 나는 어떻게 이끌어 나가겠는지를 밝혔다.



3년 뒤가 아니라 100년 뒤를 보자고 했다. 역사에 남을 클래식이 되어보자고 했다. 애매한 성공을 꿈꾸느니 차라리 우리답게 하다가 실패하기를 각오하자고 했다. 우리 맨날 압도만 당하지 말고 압도해 보자고 했다. 타협하지 말자고 했다.


기본학교에서 배우며 이렇게 종속되어 고만고만하게 사는 게 이젠 지겹다고 난리를 치면서 ㅇㅈㅇ 대표님을 찾아갔던 이유도, 자유롭게! 나답게! 살아보려니 이렇게 두렵고 무섭고 쫄릴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 어른을 설득해 그런 환경을 만들어두고도 또다시 제 발로 그물틈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안락함 따위를 바라고 있는 구린 나를 내가 발견했다.


용기를 내야 한다.

용기를 낸 사람이 쟁취하는 이익이, 보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보는 사람이 쟁취하는 이익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모두가 경험하여 우리 선수들도 자신의 삶에서 용기를 잃지 않고 자기답게 살 수 있게 만들어야 한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잖아 하는 마음으로 한 번뿐인 우리의 인생을 흘려보내고 싶지 않다.


아니.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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