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모험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혁이창 Mar 09. 2024

자연을 늘 마주할 수 있도록

2024년 1월

오늘은 인류 문명의 진화는 “신으로부터 벗어난 인간이 스스로 신이 되어가는 과정이자, 자연으로부터 벗어난 인공이 자연화 혹은 스스로 자연을 만드는 과정“임을 확인.


융합의 밤에 모셨던 최진석 교수님이 행사 후에 본인의 인스타그램에 남기신 한 문장이었다. 행사에서 내가 발표한 '우리는 어떻게 장르가 될 것인가'를 들으시고, 교수님은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으니 조만간 함평으로 한번 내려오라는 말씀을 남기셨다.  


나는 12월 31일, 새해 일출을 고산봉에서 교수님과 맞고자 함평으로 향했다. 내려가기 며칠 전, 교수님께서는 기본학교 동지들에게도 융합의 밤에 발표했던 나의 모험과 섬세이의 철학에 대해 공유해 달라고 말씀 주셨다. 내 발표가 끝나자 교수님은 화이트보드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하셨고, 섬세이가 포착한 시대의 급소에 대한 교수님의 생각을 말씀 주셨다. 섬세이라는 하나의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철학과 높은 수준의 시선이 생존의 질과 양을 어떻게 증가시키는지를 보편적인 개념으로 설명 주셨다.



하지만 나는 알 수 있었다.

일부러 교수님은 섬세이라는 구체적인 사례 안에서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시고자 내게 발표를 요청 주셨다는 것을. 내가 그동안 더듬더듬 모아 와 되는대로 붙여놓아 엉성하고 어렴풋했던 섬세이의 철학을 선명하게 그려주시려 했음을. 섬세이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려고 하는 것이었는지를, 지금 섬세이는 어디에 있는지를.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으로 살아온 인간이, 모든 것을 신에 의지하지 않고 직접 생각을 해보겠다며 그 울타리를 뛰쳐나온 사건이 철학의 시작이라고. 그렇게 신에게서 인간이 이탈해서 신이 되어가는 과정이 인류 문명의 진화라고. 황우석 박사가 양을 복제하고, 인류는 인공지능을 만들어 정말 신이 되어보려는 발버둥의 역사, 그 흐름이 바로 인류가 삶의 질과 양을 증가시키려는 방향이라고.


이와 같이 외경스럽고 신비롭기만 했던 자연에서 벗어난 인공물들이 이제는 감히 자연이 되고자 하는 그 시대에 우리가 있다고 보시는 것이었다. 자연을 찾아가야만 하는 시대에서 이제는 인공물을 통해 자연을 구성해 버려 우리가 있는 그곳이 자연이 되는 시대의 초입에 섬세이가 있다고 보신 것이었다. 기술융합의 시대가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하셨다. 인공으로 자연을 만드는 그 시대의 초입에 이창혁이 있다고 힘주어 말씀하셨다.


인공으로 자연을 만들어보려는 그 시도의 초입에 내가 있다는 말씀에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감히 한낱 인간인 내가 자연을 만들어보겠다고 덤비는 것은 웅장함을 넘어 황당하게 다가왔다. 내가 살아오며 조각조각 붙여왔던 이 이야기가 교수님을 통해 제 순서를 찾자 선명히 드러난 '왜 나는 이 일을 하는가'는 너무 크고 거대해, 순간 그 크기에 내가 압도되어 온몸에 힘이 들어갔던 것 같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느 때보다 정확하고 명료했고, 내가 그동안 해왔던 일들과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이 선명히 보였다.


자연이 좋아

맨발로 서울숲을 밟던 나는, 강릉 바다를 찾던 나는, 사려니숲을 찾던 나는

하늘을 보며 샤워하고 싶다며 샤워실 천장을 투명한 유리로 만들었던 나는

그렇게나 좋아하는 자연을 내가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나 느끼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것을 어설프게나마 만들어 세상에 내놓았던 것이 에어샤워였고, 실버라이닝워머였던 것이었다.

CES에 참여해 세상의 기술들을 만난 경험은 나에게 인공물이 자연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작은 희망을 마음속에 품게 했고

지금은 기술을 가진 업체들을 만나 그들의 힘을 빌려 나무를 재현하려 산소발생기를 만들고 있고, 일출을 재현하려 선라이즈 조명을 만들고 있다. 단순히 자연을 닮은 형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제 자연이 만들어내는 기능을 기술로 재현하는 기술융합의 시대의 초입에 내가 서있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되었다.


그 모든 과정이 화이트보드의 몇 자의 글자로 설명되었다. 나에겐 그저 점이었던 사건들을 철학자는 모두 이어내 선으로 그려냈다.


2019년 바디드라이어 제품을 기획하기 시작했던 그때부터 바로 지금 이 순간까지 5년을 꽉 채우고 나서야, 그동안 찍어왔던 점들이 이제야 모두 연결되어 '나는 왜 이 일을 하는지'가 명료해졌다.


우리는 기술을 융합하여, 자연을 늘 마주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원한다면 언제 어디서든.

매거진의 이전글 CES 2024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