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농장생활기 #0
우리가 서울을 설명할 때 흔히 ‘콘크리트 정글’이라는 말을 한다. 말 그대로 빽빽하게 들어선 고층 빌딩들은 흡사 영화 속 정글에 있는 나무처럼 굳센 위용으로 하늘을 가리고 있다. 우리는 이 콘크리트 덩어리들로 인해 눈앞이 가려지고, 하늘이 가려져 결국 자연을 잊게 된다.
나는 인천에서 나고 자랐다. 인천은 서울 바로 옆에 있는 도시로, 인천국제공항의 위용 덕분에 세계 사람들도 왕왕 알고 있는 도시다. 한국에서는 도시를 지칭하는 ‘시’ 외에 ‘특별시’ 및 ‘광역시’가 있다. 그 도시의 규모로 다른 도시와 차별점을 두고자 이름을 달리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천은 그 중 광역시에 해당된다.
이 말은 즉, 도시로서 인천의 발전 정도가 남다르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도시의 발전이라 함은, 콘크리트가 자연을 가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비롯되었단 사실을 충분히 잊게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어릴 적 우리 아파트 단지 내에는 주민들이 공용으로 이용할 수 있는, 햇볕이 잘 드는 야외의 작은 공간이 있었다. 사람들은 보통 그곳에 고추나 과일 등을 말리곤 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공용 공간을 텃밭으로 이용하자는 주민들의 의견이 나왔다. 그렇게 그 주위엔 울타리가 쳐지고, 화단처럼 작은 벽돌로 주위가 꾸며졌으며, 비옥한 흙과 채소들이 그 안을 채웠다.
내가 기억하는 텃밭의 풍경은 그저 초록색이었다. 당시의 나는 편식이 심해 “초록색은 맛없어!”라며, 모든 채소들을 똑같이 맛없는 것으로만 분류했었다. 그렇기에 어떤 종류의 채소가 있었는지는 모른다. 그저 한 달에 두어 번, 특별식으로 삼겹살을 먹을 때면 어머니는 텃밭에 가서 상추를 가져오겠다고 하셨기에 상추가 있었음을 알 뿐이었다.
그 때가 아마 처음으로 자연에서 온 재료에 대한 위화감을 느꼈을 때였던 것 같다. 내가 아는 야채들이란 분명 마트의 ‘신선 식품’ 코너에 있어야만 했다. 사계절 내내 냉장고의 연기와 함께 프레온 가스의 냄새를 풍기는 그 코너에서, 작은 스티로폼 접시에 담겨 랩으로 감싸져 있어야만 했다. 그런데 매일 걸어다니는 흙바닥 주위에 있는, 그저 똑같이 생겼을 뿐인 그것들을 가져와 먹는다니. 나에게는 적잖은 충격이었다.
어머니는 갓 따온 상추를 물에 씻으며, 텃밭이 있어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하셨다. 나는 싱크대에서부터 옮기는 동안 물을 뚝뚝 상추를 보며, 마치 독이 있는 식물이 자신의 독을 내뿜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접시 위에 놓인 상추는 시들은 끼가 없이 파릇파릇하고 신선해 보였지만, 그 신선함이 오히려 더 큰 위화감으로 다가왔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마침 그 때가 아직까지도 내 머릿속에 깊이 박혀 있는 한국의 산성비에 대해 배울 때였기 때문이다. 공장이 가득한 한국의 구름은 공장에서부터 나온 화학 성분들로 가득해 비가 산성을 띤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에 맞으면 머리카락이 빠지고, 마시면 몸에 좋지 않으니 호기심에라도 비를 맞으면 안 된다고 했다.
선생님께선 그와 동시에 저기 먼 어느 나라의 녹이 슨 동상 사진을 보여주셨다. 이 나라에서도 산성 비가 내린다고, 그리고 그 산성비가 아름다운 동상을 이렇게 망쳐버렸다고 말하셨다. 나는 나도 그렇게 될까 겁이 났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공장 단지가 있었는데, 공장 굴뚝에서 매일같이 나오는 저 허연 연기가 구름을 이루고, 또 내 머리 위로 내린다는 것이 참으로 무서웠다. 그래서 난 텃밭의 식물에도 분명 영향을 주었을거라고, 그래서 분명 독이 들었을거라고 생각했다. 상추에서 흐르는 저 물방울들이 독처럼 보였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하던가, 이러한 내 의심은 이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 있으며 ‘텃밭에서 키운 작물로 요리했다’는 식당들을 보면 왜인지 찝찝한 느낌이 든다. 분명 마트 신선식품 코너에 있는 야채들도 어딘가에서 자란 것이 분명한데도, 직접 키운 작물에 대한 이 기분은 전혀 사라지지 않고 있다.
나는 이 불쾌한 감각을 없애고 싶다. 자연에서 온 것들을 거부하는 이 마음이 자연과 하나됨을 막고 있는 것만 같다. 내가 지금까지 얻었던 깨달음들은 모두 어릴 적부터 갖고 있던 도시의 전설들을 깨부수면서 나타났기에, 그리고 내가 갖고 있는 이 찝찝함 역시 그러한 도시 전설 중 하나라고 생각하기에 이를 없애고 싶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던 중, WWOOF라는 단체를 알게 되었다.
WWOOF는 World Wide Opportunities on Organic Farms라는 단체로, 유기농 농부들의 집에서 봉사를 하며 숙식을 제공받는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농부들과 사람들을 연결해주고 있다. 이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산수유 꽃의 만개를 보기 위해 ‘구례’라는 한국의 도시를 방문할 때였다.
내가 묵었던 곳은 두 강아지와 함께 황토집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을 하는 김씨의 집이었다. 김씨의 집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져 한 시간에 한 대씩 다니는 버스를 타고, 또 이십분 정도 산을 올라야 도착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한 김씨네의 마당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뛰어놀고, 집 뒤의 산에는 감나무가 여럿 심어져 있었다. 김씨는 감나무 농사를 지으며 생계를 유지한다고 했다.
강아지가 뛰어 놀고, 푸릇푸릇한 식물들이 주위에 넘치고, 기분 좋은 흙의 냄새가 나는 것 같은 그 집에서 지내는 하루는 말 그대로 꿈 같았다. 하지만 당시에는 농사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조차 못했기에 그가 지나가는 말로 했던 WOOFF는 그대로 머릿속을 스쳐갔다.
그렇게 4년의 시간이 흐르고, WOOFF라는 이름은 교환학생을 마치고 홀로 유럽여행을 하던 도중 다시 나에게 나타났다. 베니스에서 만난, 이탈리아에서 사는 것이 어릴 적부터 꿈이었다던 그 사람은 WOOFF를 통해 농삿일을 도우며 숙식을 제공받고 있다고 했다. 농부의 집에서 자고, 키운 작물을 이용해서 음식을 만들어 먹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언어가 달라 말로 완벽히 표현할 수는 없지만, 농부의 곁에서 삶을 지켜보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또 이 활동 덕분에 자기가 꿈에 그리던 이탈리아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었다고, 그래서 어릴 적 꿈도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았다고 말했다.
WOOFF를 통해 한다는 활동도, 그 사람의 소감도 모두 나에게 감동을 주었다. 어릴적 꿈을 지금까지도 간직하게 한 이탈리아도 궁금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농사를 지으며 밭의 작물들이 식탁으로 오는 것을 본다면, 내가 갖고 있는 하나의 도시 전설을 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난 지금 이탈리아의 토스카나 지역에 와 있다. 3월 5일인 내일부터 이주 동안 올리브 농장에 가 올리브가 향기로운 기름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고, 또 그것들을 먹게 될 것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일까, 그것은 잘 모르겟지만 너무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주의 시간이 지나면 어떤 삶이 나에게 찾아올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