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지 않는 자 먹지도 마라

WWOOF in 이탈리아 농장일기 3편

by Hyuk


이곳에 오기 전까지는 집에 남는 좁은 방 하나를 나누어 쓰고, 샤워실도 공용으로 사용해 불편함을 겪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아니,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해 그 이외의 조건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또 당연히 호스트는 그저 농부이기에 요리를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 와서 받은 것은 신선하고 맛있는 음식과 주방과 욕실, 킹사이즈 침대가 있는 개인실이었다. 이는 이탈리아에서 먹은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고, 유럽에 있으며 묵은 어떤 숙소보다 좋았다. 그렇다 보니 나는 일이 얼마나 고되길래 이런 것을 주려나 걱정이 되었고, 동시에 얼마나 일이 고되든 간에 군말 없이 따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방으로 돌아가기 전, 나는 조심스럽게 마리아에게 내일 몇 시에 일어나는게 좋겠냐고 물었다. 내가 받은 서비스로 보아 아침 일찍부터 시작해 오후까지 일을 계속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리아는 내가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면 된다며, 당연한 것을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농사 짓는 어머니의 고향집에 잠시 놀러 온 아들이라고 착각했던 것일까,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이번엔 언제부터 일을 시작하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신은 보통 8시 반부터 일을 시작하지만, 오늘 도착해 피곤할테니 내일은 편한 시간에 일어나도 된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의 친절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실컷 자고 일어나 고생하고 온 사람에게 밥이나 얻어먹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었다. 나는 7시 반에 일어날테니 같이 아침을 먹자고 말했다. 그렇게 농장의 첫 날 밤이 끝났다.


DSC03258.JPG 숙소 주방의 모습. 참 예쁘다




오전 7시 반, 농장에서의 첫째 날이 시작되었다. 낯선 천장을 마주하며 눈을 뜬다. 오늘부터 제대로 일과가 시작되는 날이다. 보통은 머리 맡에 충전기를 꼽아 놓아둔 휴대폰을 먼저 들여다보지만, 나는 그보다 몸을 일으켜 창문을 열어 바람을 맞는다. 아침의 찬바람에 정신이 깨어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서둘러 준비를 하고 아침 식사를 하러 마리아의 집에 찾아간다.


이탈리아에서는 아침 식사로 'Dolce'라고 부르는 달콤한 디저트류와 함께 에스프레소를 마신다고 한다. 그래서 주로 이탈리아인들이 아침식사를 하는 바(bar)에 가면 'Dolce + cafe'라는 세트 메뉴를 볼 수 있다. 가장 일반적인 Dolce는 크로와상에 각종 잼을 넣어 만든 코르네토(Cornetto)다. 하지만 이는 빵을 매일 굽거나 살 수 있는 마을에서나 가능한 아침 식사다. 가장 가까운 바도 차로 20분이나 걸리는 이곳에서 매일 신선한 빵을 먹기는 불가능하다. 마리아는 주로 달콤한 쿠키에 잼을 발라 아침 식사를 해결한다고 한다.


커피와 함께 잼을 바른 쿠키를 먹으며 나는 이런 간식으로 어떻게 아침을 버티는지 생각했다. 달콤한 쿠키나 빵은 그 달달함 탓에 배가 부를 때까지 먹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아침을 정말 간단하게만 해결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8시 반까지 아침식사를 마치고 일을 하러 나간다. 업무의 시작은 주변 정원을 둘러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곳에는 포도밭과 올리브밭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게스트실 4개에 파티용 집 하나, 넓은 마당 등 일이 벌어질 곳은 차고 넘친다.


가장 먼저 멈춘 곳은 집 앞에 심어져 있는 오렌지 나무였다. 수북히 자라 있는 잎을 잘라 영양분을 잘 받을 수 있게 자르고, 올리브 나무 밭 한 가운데에 버리는 일을 했다.


마리아는 시간이 조금 지나면 흰색 오렌지 꽃이 피어 향을 맡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그리고 오렌지 잎도 향이 좋아 향신료로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는 오렌지를 열매로만 접해 보았기에 꽃이 있다는 것도 몰랐고, 잎의 향이 있다는 것도 몰랐다. 잎에서는 약하지만 상큼한 향이 났다. 오렌지 나무는 단 하나였기에 잎 정리가 금방 끝마칠 수 있었다. 그러던 와중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도착했다고 해 합류하러 갔다.


마리아는 올리브 나무 가지치기가 앞으로 이곳에 지내는 동안 할 주된 일이라고 했다. 올리브는 사실 꽃 안에 들어 있는 씨앗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꽃은 올리브 나무의 잎 중 2퍼센트에서만 피는데, 그렇기 때문에 올리브 농사에서 중요한 것은 꽃이 잘 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라고 한다. 마리아는 가지치기를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알려 주었다.


올리브 나무 가지치기


1) 올리브 가지가 안쪽을 향하면 자르기

2) 올리브 가지가 위로 곧게 뻗으면 자르기


1번의 가지는 어차피 햇빛을 잘 받지 못해 꽃이 피지 못하며, 2번 가지는 꽃이 피더라도 수확이 어렵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내가 잘못 잘라 농사를 망칠까봐 겁이 났지만, 가지를 치다 보니 익숙해져 집중할 수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무와의 싸움을 했다. 가지가 하나 잘릴 때마다 나는 똑딱이는 소리만 들릴 뿐이었다. 취업으로 인한 불안에 시달리며 일을 참 하고 싶었는데, 무언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치유받는 느낌이 들었다. 따뜻한 햇빛이 내리쬐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곳에서 몸을 움직이는 것은 참 기분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첫날 일과는 끝이 났다. 발밑에 꽤나 쌓인 가지들이 내 노력이 의미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주는 것 같았다. 간단하게 점심을 먹고 나서 오후는 일주일 동안 먹을 식재료를 사러 장을 보러 갔다. 이렇게 마리아가 어디론가 가는 때는 같이 동행하는 것 같았다. 비록 일은 3시간 정도로 짧게 했지만, 그래도 이제 밥을 먹을 자격 있는 사람이 됐다는 느낌이 들었다.


가지치기가 끝나고 쌓인 나무들!




다음 화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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