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의 대담 중에서
12월 11일 대전 엑스포 공원 인근에 위치한 기초과학연구원(IBS) 과학문화센터에서 <칼의 노래>, <자전거 여행>, <라면을 끓이며>를 집필한 김훈 작가 대담 행사가 진행됐다. 함께 배석한 사회자 겸 패널로는 장석복 IBS 분자활성 촉매반응 연구단장이 참여했다. 잘은 모르지만 ‘2019 최고과학기술인상’을 수상하셨다고.
한 시간 반가량 진행된 대담은 재밌는 경험이었다. 처음에는 동문서답하시는 김훈 작가님의 화법에 다들 얼이 빠져서 헛웃음을 짓는 청중도 있었지만 대담이 끝나갈 즈음에는 작가님의 대화가 몇 가지 주제로 수렴하는 듯했다. 인간과 자연, 인간의 유한성, 죽음, 그리고 글쓰기. 생각해보면 작가님이 늘 씨름하시던 바로 그 주제들이 아니었나 싶다.
이날 대담은 작가님과 연구단장님에게 공통된 주제가 주어졌고 각자의 생각을 답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편의상 각 질문의 순서는 임의로 배치했다.
장석복 연구단장(이하 장석복) 작가님을 평소 존경해왔다. 특히, <자전거 풍경>의 구절들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다.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 ‘차가운 머리에서 따뜻한 가슴으로 가는 게 가장 긴 여정이다’라는 말이 생각난다. 어떻게 그런 글을 쓸 수 있었나.
김훈 작가(이하 김훈) 나는 머릿속이 뒤죽박죽인 사람이고 머릿속에 시스템이 있는 사람을 신뢰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보편적 진리를 말하려는 허영심이 없다.
자전거 여행을 쓸 당시 자전거를 타고 인제에서 양양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이 일 년에 며칠 안 된다. 너무 추워도 너무 더워도 안 되고 날이 맑아야 한다.
그렇게 산을 넘으면 산간마을을 만난다. 아직까지 한글을 못 읽는 사람이 많았다. 책을 전혀 읽을 수 없고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세상의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 이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인간과 자연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자신의 마소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런 걸 아는 사람들이었다. 책이나 대학에서 배운 게 아니다. 오랫동안 자연과 더불어 한 노동에서 배운 것이다.
그때 인간은 아름답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생각했다. 인간의 아름다움을 의심하면 안 되겠구나, 하고. 인간의 고귀함을 증명하는 것만이 글 쓰는 자로서의 사명이고 다른 사명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장석복 여행하면서 느낀 행복에 대해 알고 싶다.
김훈 자전거로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자신감을 가졌다. 그런데 산을 넘어서 하천을 가만히 보니 연어가 있었다. 연어는 4년 동안 태평양을 돌아서 다시 돌아온다고 한다. 내가 산맥을 넘은 것은 아무것도 아니구나 하고 부끄러웠던 기억이 난다.
장석복 ‘석과불식(碩果不食)’이라는 말과 관련된 일화가 있다. 어린 시절 집에 작은 감나무가 있었는데 많은 감을 맺었다. 그럼에도 몇 개는 남겨뒀다. 까치밥이었다. 까치가 남은 감을 먹고, 새로운 감나무가 만들어지고, 나무가 숲이 되는 그런. 신영복 선생께서도 ‘씨앗은 숲으로 가는 여정이다’이라고 말씀하신 바가 있다. 선생님의 여정에서도 그런 지향점이 있는지 궁금하다.
김훈 자전거 여행에서 일관되게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나의 몸이었다. 자전거를 굴려서 가는 나의 몸. 삶의 충만감. 그것이 없으면 나는 일을 할 수 없다. 때로는 매우 비논리적인 것일 수 있지만 내가 살아있다는 것, 그 육체의 힘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놀라운 것이고 그래서 신났다.
요즘도 연필을 깎아서 그걸로 글을 쓴다. 이를 테면 나의 몸으로 글을 밀고 나간다는, 육체의 확실성이다. 이게 없으면 글을 쓸 수 없다, 살아있는 나의 몸, 이것이 나의 마지막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장석복 <자전거 여행>에 나오는 글을 잠깐 언급하고 싶다. ‘갈 때의 오르막이 올 때는 내리막이다.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의 길에서 정확하게 비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비기면서,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 그래서 자전거는 내리막을 그리워하지 않으면서도 오르막을 오를 수 있다.’
김훈 꼭대기를 그리워하는 마음으로는 꼭대기에 갈 수 없다. 꾸역꾸역 이게 삶이구나 하고 가야 한다. 태백산맥을 넘으면 내리막에서는 페달을 한 번도 안 밟고 간다. 5월에 몇 시간 동안 내리막을 갈 때면 혼자 기뻐서 소리를 지르면서 간다. 그때 알았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결국 없구나 하고. 반대로 가면 거꾸로다. 꼭대기를 생각하니까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는 것이다.
장석복 어려운 상황에 있는 젊은이들에게 말을 부탁한다.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무슨 생각을 해야 하고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김훈 인생은 고해다. 고통의 바다. 고해가 끝없이 전개되는 것이다. 고해가 인간의 신바람이라고 생각해야 한다고 본다.
나는 따스함이나 편안함을 생각하기가 어렵다. 일부 40대는 자기가 낀 세대라고 말하는데 그건 해소하거나 해결되는 게 아니다. 고생스럽고 힘들다. 삶은 본래 스스로 이뤄야 하는 것이다. 떨치고 가벼워지려 하면 짐이 더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요즘 젊은이들과는 생각이 다를 것이다.(웃음) 그러나 나는 그런 사고가 더 건강하다고 생각한다. 그게 난관을 돌파하는 힘이다. 나이가 들면 무질서를 받아들일 능력이 생긴다. 고난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이 고난을 피하는 길이고 고난을 올라타는 길이다.
장석복 ‘창작’, ‘언어’ 타고난다는 말도 있고 연습의 결과라는 말도 있다. 선생의 언어 훈련 비결이 궁금하다.
김훈 나에게 재능이 있다는 생각은 안 해봤다. 젊어서 소설가를 꿈꾼 적도 없다. 66년 대학교 입학했는데 당시 연 국민소득이 130달러였다. 그전에 중학생 때는 80달러였다. 그때가 다 기억난다. 삶의 기억들이 나이테처럼 나에게 감겨있다.
80달러면 밥을 못 먹는다는 얘기다. 굶는 거다. 그러니 대학생 때는 낭만적이고 그런 환상적인 청년이 아니었다. 나의 꿈은 밥을 먹는 것이었다. 나의 친구들도 그랬다. 당시 꿀 수 있는 정당하고 건강한 꿈이었다고 생각하고 지금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우리 세대는 자랑으로 여긴다. 밥을 못 먹는 사회를 밥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었으니. 그러나 그때부터 차별, 부조리, 악이 우리 사회에 깔려 있다.
나는 나를 표현하다 보니까 소설가가 됐다. 사실 나는 언어를 불신하는 사람이다. 법전을 보라. 법전은 대부분 개념어로 되어있다. 거의 다 한자로. 실체가 없고 개념만 있는 것들이다. 껍데기다. 나는 그런 말은 일절 사용하지 않는다.
나는 언어들의 개념을 맹신하는 자들의 글을 안 읽는다. 아주 게으른 인간들이다.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갖다 쓰는 자들. 게으른 자들은 글을 잘 쓴다. 온갖 성현의 사상과 저술을 가져와서 인용한다. 찬란한 말들이다. 그리고 아무도 자신의 글을 공격할 수 없도록 허점을 없앤다. 나는 그런 글을 못 쓴다, 나는 남이 공격할 수 있는, 허점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글을 쓴다. 내 글을 보고 이건 글도 아니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는 내가 검증할 수 없는 단어는 쓸 수 없다. 그래서 내가 쓸 수 있는 단어가 점점 줄어서 지금은 얼마 안 된다, 젊었을 때는 사전에 있는 말들은 다 써도 되는 줄 알았다. 언어를 다루는 자들은 행복한 성취감 속에서 일하는 게 아니라 (언어를) 의심하고 혐의를 두고 한 줄 한 줄 써가는 것이다.
(‘작가’와 ‘과학자’라는 서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장석복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과학자가 있다. 짧으면서 재치 있게 표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현상은 복잡하다 법칙은 단순하다.’ 버려야 할 게 뭔지 아는 게 좋은 작업이라는 뜻이다. 일관되게, 그 발견 안에서 이어지는 선들을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게 과학자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로는 과학이라는 건 가치중립적인 학문이고 자신의 생각과 상관없이 사실을 밝히는 직업이다. 그런 관점에서 작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표현하는, 가치지향적인 직업이 아닌가 생각한다.
김훈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자들이 말하는 사실의 세계도 무질서하고 종잡을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세상은 뭔가 싶다. 학창 시절 유클리드 기하학을 배울 때, 이런 게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하고 놀란 기억이 있다. 그런 관념이 존재할 수 있고 사유의 거점이 될 수도 있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그런 명징한 사고에 어떻게 도달할 수 있을까 하고 말이다.
일견 공리(公理)적인 것들이 인간에게 어떤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일까 하고 회의가 들기도 한다. 그런 생각을 자꾸만 하다 보면 거울을 마주 보고 있는 것 같다. 그 딜레마에 나 같은 사람이 빠져있는 것 같다. 그리고 거기서 빠져나오는 것이 과학자, 소설가가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개념과 실체의 사이를 어떻게 빠져나올지, 같은 고뇌를 소유한 부류다.
장석복 선생의 글에는 ‘진화’에 대한 얘기가 나온다. 새를 관찰하면서 ‘진화는 모든 혁명보다 혁명적이다’라고 언급한 구절이 있다.
김훈 새를 보면 가슴이 뛴다. 고귀한 존재라고 생각한다. 개나 말을 들여다봐도 그런데 그 얼굴이 사람과 대동소이하다. 같은 족속이구나, 하고 놀란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읽어봐도 잘 모르겠다. 종의 기원이 무엇인가. 결국 다윈도 말하지 못했다. 진화란 알 수 없는 무언가로부터 전개되어 가는 과정이라는 것만 적었다. 그렇지만 백만 년을 단어로 해서 생각했다는 것, 젊었을 때 만든 가설을 증명해나갔다는 건 위대한 일이다. 인류의 눈앞에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 것이고 인간의 역사를 뒤집어버린 것이다.
다만, 그게 완성된 이론인지는 모르겠다. 도덕적, 윤리적으로 진화의 목적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못했다. 그 부분에는 회의를 가지고 있다. 진화에는 목적이 없다. 그렇다면 가치가 우월한 세계로 간다고도 말 못 하지 않나.
우리가 모르는 게 많구나 하고 생각이 들면 신바람이 난다.
이어진 2부 순서는 청중들로부터 사전에 받은 질문에 두 패널이 답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두 분에게는 이루지 못한 꿈이 있나요. 다시 중학생이 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장석복 내가 학생일 당시에는 별생각 없이 공부만 해야 되는 그런 분위기였다. 세상을 전혀 모르고 살았다. 서울도 대학을 입학하면서 처음 알았다. 중학생 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돌아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고 싶다.
김훈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학생들을 너무 때려서. 그래서 친구들과 산에 올라서 자라면 혁명가가 돼서 학교를 없애버리자, 하고 다짐했다. 내세가 없으면 제일 좋은데, 만약 있다면 책이나 글이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명왕성 같은 데서 노래하고, 한대수처럼 기타 치고 노래하면서 살고 싶다.
역경이나 고난은 인간을 풍부하게 만든다고들 합니다. 두 분이 살아가면서 겪으셨던 고난은 무엇이 있고 어떻게 극복했는지 궁금합니다
김훈 매일매일이 역경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은 뭐라고 쓰나 싶어서 괴롭다. 눈 앞에 하얀 종이가 있다. 나는 아무것도 안 쓰인 종이가 제일 무섭다. 근데 인생이란 이런 것이다. 역경을 떠날 수는 없고 불완전하고 불만에 찬 그날그날을 지낼 뿐이다.
장석복 비슷하다. 매일이 역경이다. 학생들을 대할 때 마땅히 제안해 줄 아이디어가 없다. 스스로를 많이 채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아이디어나 영감을 길어 올릴 수 있는 우물이 되고 싶은데. 희망이나 당위성은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게 역경이다.
본인이 과학자 또는 소설가가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장석복 과를 선택하고 학부, 대학원을 자연스레 진학했다. 지나고 보면 제일 중요한 계기나 모멘텀은 사람을 만나는 거였다.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서 인간적인 면모나 학문을 배울 수 있었다.
김훈 사람을 통해서 배운다는 건 중요하다. 책을 통해서 배우는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요즘은 애들을 책을 읽을 수 없게 만들어놓고 안 읽는다고 또 혼낸다. 독서를 강조하는 나라치고 이렇게 책 안 읽는 나라도 없다.
나는 책 많이 읽은 걸 자랑으로 여긴 적이 없다. 책 속에는 별다른 게 있는 게 아니라 글자만 있다. 사람, 사물, 사건, 사태를 통해서 더 큰 걸 배울 수 있다. 꼭 책을 들여다봐야만 길이 있는 건 아니다. 책을 읽지 말라는 게 아니라(웃음) 그거만 들여다봐서는 안 된다. 옛날에 공자가 공부하라는 것은 국영수, 전공 공부하라는 게 아니라 니 맘보를 똑바로 하고 환경, 인간사와 관계를 똑바로 하라는 얘기였다.
나는 좋은 스승, 좋은 선배를 만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거다. 혼자 외롭게 살아갈 뿐이다.
삶에서 어떤 가치를 우선시하는지, 주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김훈 죽음에 대해서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늘 보던 게 새롭게 보인다.
얼마 전에 수능이었는데 나는 수능 치는 날이면 학교 앞에서 하루 종일을 보낸다. 수능, 그거 애들 반 죽여 놓는 거다. 하루 종일 다른 종류의 시험을 치면 사람이 진이 빠진다. 도대체 우리가 애들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건가 싶다. 고3 애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 같다. 그렇게 줄 서서 들어간다. 근데 또 고2 애들은(웃음) 뭐가 그리 좋은지 선배님, 하면서 깔깔대면서 응원해준다. 그걸 보고 생각한다. 인간은 지옥문 앞에서도 웃을 수 있는 존재구나, 하고.(웃음)
그날 시험이 다 끝나고 학교 운동장을 한 바퀴 돌고 있었는데 어떤 여자애가 벤치에 앉아서 쭈그려 울고 있었다. 시험을 치르고 나온 학생 같았다. 그게 마음이 미어졌다. 그 절망감. 집에 가서 저녁을 먹고 다시 그 자리로 갔는데 아무도 없었다. 집에 잘 들어갔을까 걱정이 됐다.
지옥문, 애들의 아름다움, 우는 여학생의 절망감, 그런 것들. 더 많이 보였으면 좋겠다.
작가님의 작품 다시 볼 때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김훈 다시 열어보지 않는다. 다시 보면 슬프다. 쓰려던 게 이게 아닌데. 아닌 건 알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칼의 노래도 그렇다. 충무공이 병졸들에게 옥수수를 먹이는 장면이 나오는데 나중에 어떤 사람이 지적했다. 옥수수는 임진왜란 이후에 들어온 것이라 당시와 맞지 않는 장면이라고. 근데 안 고쳤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런 불완전 속에서 하루하루 살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