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인터뷰> 265회, 박성광 인터뷰 편 中
Q.공부를 계속하겠다고 결심한 계기가 있나요?
학부 3학년 때부터 공부에 대한 재미가 커졌어요. 처음엔 철학을 할까 고민도 했는데 학문의 영역이 더 넓고 제게 익숙한 국문학을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삶이라는 것 자체가 특별한 계기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연들이 모여 필연으로 보이는 것 같아요. 큰 틀에서 본다면 사회 변혁은 필연적일 수 있지만,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수많은 사건은 다분히 우연적인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아, 제 생각은 아니고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얘기한 것이에요.
실제 현장에서 인터뷰에 참여하면 준비된 질문지 이외에 즉석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이런 질문은 애매한 답변에 구체성을 더해주고 개인적으로 생기는 궁금증을 해소하는 역할을 한다. 흥미롭게도 즉석 질문에서 기대하지 못한 인상 깊은 답변이 나오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답변은 내 기억 속에 깊히 간직된다. 이날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 전공 박성광 교수 인터뷰였다.
이 질문은 같이 참여한 팀원이 현장에서 물어본 질문이었다. 그가 묻지 않았으면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이었다. 단순히 재미만으로 학문을 지속하기란 쉽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반드시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을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계기가 있기를 기대했다. 뭔가 운명적인 계기. 그러나 그의 입에서 나온 답변은 다소 힘이 빠진 솔직한 답변이었다. 결국은 재미로 시작한 공부였지만, 그 과정에서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은 특별한 계기가 아닌 우연의 내 행동들이 모여 지금의 '나'가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가 한 행동이란, 그저 본인이 선택한 시간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내가 작성한 질문지를 한참을 들여다보면, 막연하게 어떤 계기를 찾고 어떤 선택의 주된 이유를 묻는 질문이 많다. 그리고 혼자서 어떤 멋진 답변을 기대하곤 한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반추하면 우연의 계기가 내 삶을 바꾸어 놓았다. 그런 내가 남들에게 어떤 계기를 묻고 필연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의 꾸밈없고 솔직한 답변을 통해서 내 질문지 작성 습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앞으로는 좀 더 힘을 빼고 상대방의 생각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이 되는 질문지를 작성할 수 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