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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Apr 26. 2017

보러 가지 말걸

문재인 뒤에 나 있다


[지극히 개인적인 토론 관전평]


1. 토론 전


JTBC 대선후보 토론 방청객은 한국정치학회 소속 교수, JTBC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신청자, 각 정당 지지자, 대학교 토론 동아리 회원 등으로 구성됐다. 방청객은 6시까지 일산 빛마루 방송지원센터에 집결해 팔찌를 찬 후 대기실에 모였다. 기다리는 동안 물 한 병과 소보루빵이 제공됐다. 소보루빵.


7시 40분 즈음 스튜디오로 이동했다. 대선후보들도 곧 입장했다. 가장 먼저 온 홍준표 후보는 방청객에게 인사 없이 바로 자리에 앉았다. 이경규를 많이 닮은 사람이었다. 그는 다른 데 신경 쓰지 않고 토론 준비에만 집중했다. 민경욱 의원의 도움을 받아 본인 카메라 위치를 확인하고 제스처 조언을 받았다. 홍준표 후보는 끊임없이 농담을 던졌다. 진행을 맡은 손석희 앵커에게 “몇 시까지 하느냐.”, “체력장 테스트 같다.”, “광고 완판 했냐.”, “출연료 주냐.” 말했다. 손 앵커는 홍 후보가 무섭다고 대답했다.


유승민 후보는 토론장에 들어서자마자 방청객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노란색 셔츠를 입은 심상정 후보는 곧바로 의자에 앉아 토론 관련 사항을 점검했다. 의자 높이가 별로인지 자리에서 일어서자 옆에 있던 박원석 의원이 곧바로 높이를 조정했다. 그동안 심 후보는 본인 뒤편에 자리한 지지자들에게 인사했다. 안철수 후보도 별다른 인사 없이 자리에 앉아 토론을 준비했다. 이후 문재인 후보가 자리하자 잠깐잠깐 고개를 들어 그를 쳐다봤다. 다른 후보는 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마지막에 등장한 문재인 후보는 가장 많은 인원을 대동했다. 수행원과 기자 등이 문 후보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누가 봐도 유력주자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먼저 후보자들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방청객에겐 김경수 의원이 대신 인사했다.


방송 직전엔 토론을 관전해도 되느냐는 문제로 바른 정당 지상욱 의원이 JTBC 직원과 잠깐 대화를 나눴다. 그 물음은 원형 구조 탓에 카메라에 걸릴 위험이 있다는 이유로 거절됐다. 전의 토론에선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3층으로 구성된 방청석이 벽의 역할을 하고, 빈틈을 카메라로 메운 원탁토론은 후보가 실시간 피드백을 받지 못하게 하는 효과도 있는 듯했다.


2. 시간 총량제 자유토론

2-1. 경제 양극화 심화의 원인 및 해법


모두발언 후 이어진 자유토론에서 홍 후보는 문 후보에게 말했다. “공공일자리 확대는 그리스의 전철을 밟는 것이다. 민간투자를 확대해 기업 일자리를 늘리는 것이 맞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그는 이어 “문 후보는 민주노총의 지지를 받으니 공공일자리 운운하는 것 아니냐.” 덧붙였다. 경제, 정치 분야를 막론하고 홍 후보의 발언은 ‘기→승→전→종북세력/좌파/강성귀족노조=이들 모두 적폐’라는 구조를 띄었다. 단순하고 명쾌해서 홍 후보의 논리를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이 같은 만능 논리는 쓸수록 밑천이 드러난다는 게 문제다. 홍 후보는 “민간 투자 활성화하겠다고 했는데 추진하겠다는 뉴딜 정책은 공공일자리 110만 개 늘리는 것이다. 상충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게 아이고.. 실무진에스 늘린다고 해쓰요.” 수준의 답이 전부였다.


문재인 후보는 실망스러웠다. 유승민 후보가 문 후보의 공공일자리 81만 개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 질문한 것은 이전 토론부터 계속되어왔다. 캠프에선 여기에 분명히 답할 준비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문 후보의 대답은 유 후보 질문의 사실관계를 바로잡는 것에 그칠 뿐, 직접적인 해답이 되진 못했다. 정책본부장과 얘기하란 말까지 나왔다. 좋은 답변태도는 아니었다.


유승민 후보는 영악하게 토론했다. 그는 문 후보에게 “81만 개 전부 공무원으로 만드시면 어떻게 감당하려 합니까.” 물었다. 문 후보가 “공무원이 17만 개고 나머지는 공공부문이지요~.”라 답하자 반문 없이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사실을 교묘히 과장하거나, 제한된 선택지를 제공해 상대의 답변을 특정하게 유도하려는 질문을 잘한다고 생각했다. 심상정 후보는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하는 안철수 후보가 안랩의 포괄임금제 십 수년 지속을 묵과해왔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안 후보는 “경영에서 손 뗀 지 오래됐습니다.” 답해 질문을 피했다.


열띤 토론이었다. 이와 별개로 방청객은 이미 홍 후보의 뇌구조에 진절머리가 난 듯했다. 후반부 홍 후보의 발언이 나올 때마다 방청객들은 조소하거나, 한숨을 쉬거나, 하늘을 쳐다보고 눈을 질끈 감았다.


2-2. 외교·안보 이슈


안철수 후보의 취약점이 드러나는 토론이었다. 그는 첫 발언에서 미세먼지도 안보 이슈라고 주장했다. 대부분 미세먼지는 중국에서 오므로 안보, 경제와 환경을 세 개 축으로 삼아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선 후보들의 동의를 구했다. 반대하는 후보들은 없었다. 중요한 문제지만 외교·안보 정책 토론의 전면에 나설 주제는 아니었다.


군대 문제에서도 안철수 후보는 군내에 직업학교를 설립하겠다는 식의 얘기를 했다. 다른 후보들은 국방비 인상과 북한 문제를 얘기할 때였다. 그는 해당 순서 마지막에도 미세먼지 문제를 재차 꺼냈다. 토론에서 안철수 후보의 외교·안보 시각을 엿볼 순 없었다.


문재인 후보의 동성애 답변은 충격적이었다. 표를 잃을 수 없는 입장임을 이해하지만 동성애를 반대하냐는 홍 후보의 질문에 너무 단호하고 분명하게 “반대하죠.”, 동성애 합법화 질문에 “합법화에 찬성하지 않습니다.”라고 답했다. SNS와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홍 후보 발화의 모순을 지적하고 과거 문 후보 저서를 인용해서 문 후보의 동성애 발언을 옹호하려는 듯하다. 하지만 토론에서 드러난 사실은 분명 “문재인=동성애 반대”였다.


순서가 끝나고 2분간 광고가 나갔다. 문재인 후보와 심상정 후보가 화장실에서 늦게 돌아오는 탓에 토론이 지연됐다. 문 후보가 늦은 이유는 동성애 관련 발언 보완을 위해서였다고 생각한다. 그는 토론 말미에 ‘동성애 반대한다.’ 던 기존 답변을 ‘동성혼 합법화 반대, 동성애 차별 반대’로 수정했다. 짐작대로라면 조언에 의해 답변의 맥이 크게 달라진 것이다. 성소수자 인권에 대한 후보자 본인의 뚜렷한 의견이 있었다면 상황은 달랐을 테다. 지난 2월 문 후보의 페미니스트 대통령 연설 도중 터져 나온 성소수자 발언이 “나중에! 나중에!”란 외침에 묻힌 장면이 겹쳐 보였다.


3. 주도권 토론 (피곤했는지 필기 내용이 적다)

3-1. 정책검증


홍준표 후보는 토론이 시작하자마자 노무현 대통령의 640만 달러 수수 문제를 꺼내 들었다. 홍 후보와 문 후보의 논쟁이 이어지자 손석희 앵커가 개입했다. 지금 시간은 정책검증을 위한 것이란 말에 홍 후보는 “사법정책 얘기하려 그런다.”라고 답했다. 손 앵커가 인정했고 발언이 계속됐다. 사법정책 얘기는 들을 수 없었다.


3-2. 자질 검증


당일의 가장 큰 뉴스는 국민의 당, 바른 정당, 자유 한국당의 3당 단일화였다. 문재인 후보 역시 같은 질문을 세 후보에게 했다. 단일화가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연장이 될 수단임을 드러내면서 본인의 도덕적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후보들의 답변이 부정적이었다. 더군다나 홍 후보의 발언에 청중이 웃음을 터뜨려 문 후보가 3당 단일화의 부정성을 제대로 어필할 수 없었다. 답변이 어땠든 단일화로 관계된 3당을 구태로 엮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했다. 마무리발언이 아닌 본 토론에서 이를 ‘적폐 연대’로 규정했어야 했다. 하지만 질문이 허술했고, 답변이 방어적이었다. 결과적으론 질문 시간만 날린 셈이 됐다.


4. 토론 후


토론이 끝나자 각 후보들은 방청객에게 인사했다. 난 누구와 인사하든 고개를 굽히지 않겠다 다짐했었다. 유승민 후보가 내게 손을 뻗었다. 곧바로 허리를 굽혀 인사를 받았다. “고생하셨습니다.”란 말을 덧붙였다. 권력은 세다.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엔 함께 토론을 본 친구 넷과 기사 아저씨가 함께 대선주자 얘기를 나눴다. 친구들 의견도 나와 비슷했다. ‘홍 아웃, 문 실망, 유·심 잘해, 안 4차 산업혁명왕.’ 기사 아저씨는 김기춘과 우병우를 욕했고, 이번 대선을 계기로 한국에 희망이 보이길 바란다고 말씀하셨다.


나도 마찬가지 바람이었으나 토론에선 딱히 희망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토론 후 지지후보가 더 불분명해졌다. 마땅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어 나의 지향에 반하는 후보를 하나 둘 소거하는 방법을 택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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