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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혁수 Oct 17. 2017

5000원에 지인을 합성해드립니다

폭력적인 인터넷 문화와 성범죄의 보편화


“이게 사진이고, 밑에는 이름이랑 학교예요. 신상이 다 나오는 거예요 정말..”


어머니가 종이를 내밀었다. A4용지 가운데엔 학생의 얼굴이 엉성하게 합성된 사진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그 밑으론 그녀의 이름과 나이, 다니는 학교가 차례로 보였다.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학생은 몇 발짝 떨어져 빤히 우리를 쳐다봤다.


사회부 소속으로 ‘마와리’를 돌 때면 몇 시간 간격으로 선배에게 보고를 해야 한다. 마와리 보고를 빈칸으로 둘 순 없었다. “죄송한데 무슨 일로 오셨는지 알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민원실과 형사 당직실을 드나들 때마다 조심스레 물었다. 때문에 학생과 어머니에게서도 민원내용을 얻어내는 것으로 충분했다. 하지만 둘과 나눈 얘기는 생각보다 한참 길어졌다.


출처: 일요신문 캡쳐


학생은 얼마 전 친구에게서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 그녀의 얼굴을 음란한 이미지와 합성한 사진이 인터넷에 돌아다닌다는 소식이었다. ‘지인’, ‘능욕’, ‘합성’, ‘아헤가오(쾌감에 젖은 표정을 뜻하는 일본 속어)’ 따위의 제목으로 운영되는 SNS 서비스 tumblr 계정에는 그녀를 비롯해 수많은 여성들의 합성사진이 게재되어 있었다. 계정 운영자에게 원하는 인물의 사진을 전송하고 5000원만 입금하면 합성사진 제작이 가능했다. 거래내역을 남기지 않으려 PIN 번호만 있으면 사용할 수 있는 문화상품권을 받기도 했다. 해당 계정에선 같은 학교에 재학 중인 여학생 3~4명의 합성사진이 추가로 발견됐다. 어머니는 같은 학교 남학생들이 합성사진 제작을 의뢰했다고 말했다. 합성사진을 갖고 놀린 남학생도 있었다. 그들은 엄연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닫지 못했다. 학생은 고소를 위해 어머니와 함께 경찰서를 찾았다.


인터넷은 성범죄의 판도를 바꿨다. 데이트 폭력과 몰래카메라를 넘어, 여성들은 몇천 원에 합성된 제 얼굴이 인터넷에 떠돌 위기에 놓였다. 대부분의 커뮤니티 사이트가 남초인 현실에서 그들은 집단 내부의 여성비하 성향을 인터넷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스포츠 뉴스에 등장하는 여성 운동선수, 치어리더는 언제나 품평의 대상이 되고 연애 고민 글을 게재한 여성은 곧 ‘김치’로 치환된다. 수많은 '지인 능욕' 계정은 이와 맥락을 같이 한다. 성희롱과 성폭력을 범죄의식 없이 행하게 하는 인터넷 환경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출처: 아프리카 TV IR book


1인 방송 플랫폼은 현시점의 폭력적 인터넷 문화를 설명하는 주된 요인이다. 유튜브를 보지 않고선 청소년과 대화조차 힘들다. 10・20대에게 인터넷 방송은 지배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미 모바일 동영상 이용률은 TV를 넘어섰다. 지난 2월 닐슨 코리안클릭은 유튜브와 아프리카 TV의 동영상 모바일 앱 월평균 이용시간이 각각 767.4분, 626.3분으로 1,2위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한국 언론진흥재단은 청소년 4명 중 1명이 인터넷 방송을 시청한다는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진 영향력에 비해 플랫폼 관리는 미흡하다. 영상 조회수가 곧 수익으로 이어지는 구조는 플랫폼 업체의 자율규제를 지지부진하게 만들었다. 선정적 콘텐츠의 대표 격인 신태일은 유튜브의 ‘영구 정지’ 처분을 받기 전까지 아프리카 TV와 페이스북, 유튜브를 거치며 수년간 여성 혐오를 일삼았다. 랜덤채팅 애플리케이션인 ‘아자르’를 이용해 미성년자 여성에게 성경험 여부 등을 물으며 ‘여자들이 가랑이를 벌리면 xx 한다’ 등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철구, 김윤태, 푸워, 남순 등이 이와 비슷하게 여성을 성적 유희의 대상으로 삼아 이슈가 됐다.

플랫폼 속 여성은 남성이 형성한 위계에 갇혀 버린다.


아프리카 TV에는 단순 ‘선정성’을 능가한 콘텐츠인 ‘BJ 탐방’이 유행한다. BJ 탐방은 대개 방송을 진행하는 남성 BJ가 여성 BJ의 실시간 방송에 접속, 시청자 유입을 원한다면 내 요구를 따르라’는 식으로 이뤄진다. 이런 주문을 하는 남성 BJ들은 1~2만 명이 넘는 실시간 시청자를 보유하고 있어 힘이 세다. 요구를 따르지 않을 경우 방송에 유입한 시청자들이 ‘폭동’, ‘해명하라’등의 채팅으로 대화창을 도배해 정상적인 방송을 힘들게 한다. 여성 BJ들이 섹시 댄스, 노래 등의 요구를 거절하기 어려운 이유다. 플랫폼 속 여성은 남성이 형성한 위계에 갇혀 버린다. 사람들은 여기에 열광했다. 재밌다는 이유로 조회수가 크게 늘었다. 광고효과를 노린 업체들이 여기에 붙어 그들을 금전적으로 지원했다. ’ 돈이 되는 여성 혐오’는 인터넷에서 폭발적으로 확대 재생산됐다.


출처: 유튜브 캡쳐


처벌도 필요하고 가이드라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임의식이다. 인터넷은 현실에서 용납되지 않는 욕망을 무제한으로 펼치는 곳이 아니다. 집단 내에서 같은 의식을 공유하는 남성을 ‘정상’으로 규정하고 이성을 향한 희롱을 당연히 여기는 행태를 ‘자유’로 보긴 어렵다. 현실의 한계를 넘어 형성된 인터넷의 자아 또한 타인에 대한 존중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용자들의 책임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인터넷은 충동을 위한 탈출구 이상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 현실과 마찬가지로 인터넷도 ‘규범’으로 작동하는 세계다.


인터넷에서 행한 범죄의 피해는 인터넷에 그치지 않는다. 엄마 뒤에 숨은 여학생은 힘들어했다. 계정을 신고해도 이미 공유된 그녀의 사진이 이곳 저곳으로 퍼질 게 뻔했다. 남학생들은 그들의 행위가 한 사람의 삶을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을까. 범죄행위에 대한 자각 없이 저지른 행동 탓에 그녀는 평생 사진이 유출될 것을 두려워하며 살게 됐다. 


• 참고: 이우창, 남초 커뮤니티의 '포르노 공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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